“보수와 진보 싸우지만 말고 힘 합쳐라”
  • 감명국 기자 (kham@sisapress.com)
  • 승인 2014.06.18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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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정치인 이만섭 전 국회의장의 일갈

“보수와 진보 힘을 합쳐 나라 살려야.”

한 원로 정치인의 간절한 당부의 목소리가 국정 난맥상에 빠진 우리 정치권에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최근 펴낸 자서전 <정치는 가슴으로>에서 유독 보수와 진보 양 진영의 화합을 역설했다. 그는 ‘모든 정당이나 정치인을 보수와 진보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들 각자가 제안하는 정책에 따라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정치는 보수가 진보적 정책을 내세울 수도 있고, 진보가 오히려 보수적 정책을 추구할 수도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보수와 진보가 연립내각을 구성할 수도 있는 것이다’라고 책에서 밝혔다.

실제 이 전 의장 자신도 8선 의원을 역임하면서 보수 정당과 진보 정당을 오간 바 있다. 1963년 박정희 정권의 여당인 공화당 의원으로 시작해, 1985년 국민당 총재에 취임하는 등 보수 정당을 이끌다가 1999년 김대중 대통령이 이끄는 새정치국민회의 총재 권한대행을 맡았다. 이후 새롭게 창당되는 새천년민주당 창당준비위원장을 맡아 오늘날 민주당과 새정치민주연합으로 이어지는 민주·진보 정당의 맥을 잇는 산파 역할을 담당했다.

ⓒ 시사저널 이종현
‘국회 날치기 통과’ 주문한 YS·DJ와 맞서

이 전 의장은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에서 두 차례 국회의장을 지냈다. 보수 정권과 진보 정권에서 모두 국회의장을 지낸 그는 대통령과 법안 처리 과정을 둘러싸고 맞서기도 했다. 보수 정권에서는 진보의 편에서, 진보 정권에서는 보수의 편에서 대통령과 대립한 셈이다. <정치는 가슴으로>에서는 당시를 알 수 있는 몇 가지 비화가 소개되고 있다.

[나는 13대 국회 일을 손가락까지 꼽아가며 구체적으로 설명했으나 김영삼 대통령은 계속 요지부동이었다. 안 되겠다 싶어서 아픈 곳을 찔렀다. “대통령께서는 과거 야당 총재 시절 그렇게도 날치기를 반대하셨는데 지금은 왜 강행 통과시키려 하십니까?” “과거는 군사정부였지만 지금은 문민정부인 만큼 법은 꼭 지켜야지요.” 김 대통령은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나도 물러서지 않았다. “물론입니다. 법정 기일 내 통과가 가장 바람직합니다. 그렇지만 무리하게 강행 통과를 하려다 국회가 파행이 되어선 곤란합니다. 차라리 며칠 늦더라도 야당을 설득하여 협상을 통해 원만하게 통과시키는 것이 좋습니다.” 평행선이었다. 나는 기일을 넘기더라도 되도록 ‘원만한 통과’를 원하고 있었고, 대통령은 ‘법정 기일 준수’를 강조할 뿐이었다.]

[국회법 개정안이 여야의 격돌과 ‘날치기는 절대 할 수 없다’는 나의 소신에 따라 처리되지 못한 며칠 후 아침 의장 공관에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이 의장, 날치기를 안 하는 것도 좋으나 법대로 표결해서 다수결 원칙을 지켜야 되지 않습니까?” “그것은 원칙적으로 당연한 말씀입니다. 국회가 정상적으로 운영될 때는 문제가 없으나 국회법 개정은 국민 정서가 반대쪽이고 야당이 결사적으로 막고 있으니 시간이 걸리더라도 타협해서 문제를 풀어야죠.” “그래도 다수결 원칙에 따라 결정해야죠.” “그러나 운영위에서 날치기한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것은 좀 성급했지만….” “날치기는 절대 안 됩니다. 국회 문제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이 전 의장은 6월12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지금 나라가 많이 어렵다. 이런 때는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싸우기만 할 게 아니라 서로 힘을 합쳐 나라를 살려야 한다”며 “이 땅의 정치를 하는 후배들이 명심해주기를 바라는 심정에서 책을 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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