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몽둥이’ 안 들고 보살처럼 관대했다”
  • 김지영 기자 (abc@sisapress.com)
  • 승인 2014.06.18 12:0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혁신학교 졸업생 유동우씨가 말하는 ‘나의 고교 생활’

등교 시간을 빼면 반 친구들을 볼 수 없었다. 모든 수업은 성적순대로 따로 듣는다. 고1이지만 공통과학과 공통사회 대신 수능 과목인 물리와 사회문화를 들었다. 시험 성적이 나오면 교실 벽에 어김없이 성적표가 붙었다. 1등부터 꼴등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동아리는 공부와 관련된 것만 허락됐다. 하고 싶었던 밴드부는 개설조차 되지 않았다. 선생님과의 상담 시간은 “왜 점수가 떨어졌니?”라는 말로 채워진다.

수업 시간에 용기를 내 질문하려면 ‘몽둥이’의 공포를 이겨내야만 했다. 혹시라도 선생님에게 모른다고 고백했다간 바로 ‘몽둥이’가 날아오기 때문이다. 몽둥이는 그래도 양반이다. 한 친구의 경우 ‘야자(야간 자율 학습) 시간’에 옆 사람에게 말 걸었다고 그 자리에서 선생님의 주먹이 배에 꽂혔다. 월~금요일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 15시간 동안 학교에 ‘갇혀’ 있는 것도 모자라 토요일에도 오후 5시까지 학교에 있어야 했다. 모든 명분은 자율이었다. 그런데 실상은 강제였다.

숨이 턱턱 막혔다. 명문대 직행 코스라는 자율형 사립고를 한 학기 만에 때려치우고 ‘날라리 학교’에 제 발로 전학 갔다. 애써 유지한 내신 1등급이라는 성적은 아깝지 않았다. 서울 성북구에 있는 자사고인 ㅇ고 대신 선택한 삼각산고등학교는 이른바 ‘혁신학교’였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유동우씨(19)는 “자율형 사립고의 ‘자율’은 학생의 자율이 아닌 사립학교의 자율을 존중한다는 의미였어요. 진정한 자유를 느끼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 시사저널 구윤성
자사고 내신 1등급인데도 혁신학교 전학

하지만 처음 맛본 ‘자유’는 어색했다. 일단 학생들이 수업에 집중하지 않았다. 연예인·여자친구 얘기를 하느라 수업 시간은 시끄러웠다. 더 놀라운 것은 선생님이었다. 이전 학교였다면 당장 ‘몽둥이’가 날아왔을 텐데 선생님은 ‘보살’처럼 관대했다. 0교시, 야자, 보충학습 등이 막상 없어지자 자유롭기보다는 왠지 불안했다. “처음엔 과연 내가 여기서 대학을 잘 갈수 있을까? 아무것도 안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오히려 학교가 너무 재밌었어요. 다른 학교 친구들이 억지로 문제집을 풀 때 전 제가 하고 싶은 공부를 했어요.”

유씨의 생활기록부는 A4용지로 모두 21장이나 된다. 자율 활동 215시간, 동아리 활동 69시간, 진로 활동 42시간이다. 이색 활동도 많다. 새터민을 돕기 위해 직접 삶은 계란을 팔아 그 수익금을 기부하고 새터민 아이들과 함께 통일축전에서 어린이 부스를 운영했다. 청소년 및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일자리 연결 서비스를 만드는 창업 기획안을 제안해 교내 1등상을 받기도 했다. 학생자치회 활동을 했던 2학년 때는 교내 흡연 학생 처벌 규정에 대해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지를 돌려 5회 이상 적발 시 징계 조치를 취한다는 규정을 만들었다. 특히 유씨가 3년 동안 한 봉사 활동만 536시간이다. 독거노인들에게 도시락을 나눠주는 봉사는 대학에 온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유씨는 삼각산고를 졸업하고, 올 2월에 입학사정관제로 당당히 중앙대 경영학과에 합격했다. 그 흔한 토익·토플 점수도 없다. “자사고에서 저와 성적이 비슷했던 친구는 서울대를 갔어요. 어쩌면 그 친구가 졸업하고 취업할 때 저보다 유리할지도 몰라요. 하지만 자사고에 다녔더라면 수능에 대한 생각만 3년 내내 했을 거잖아요. 전 여기서 공부가 아니라 가치관이 바뀌었어요.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어요.” 사회적 기업 CEO가 되는 것, 유씨의 꿈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TOP STOR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