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싫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4.06.18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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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고 자퇴생 매년 7만명

매년 학교를 떠나는 아이들이 7만명에 육박하고, 누적된 수는 40만명에 이른다. 학교를 떠나지 않았지만 학업에 관심을 잃어 수업 중에 잠만 자는 아이들은 300만명을 헤아린다. 사정이 이런데도 교육부는 돈으로 해결책을 마련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교육 전문가들은 ‘마이크로 학교(작은 학교)’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교사가 학생을 개별적으로 지도할 수 있는 분위기가 교육계에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강민서군(가명)은 2년 전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치러 올해 대학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학업 성적은 중위권이었고, 교우관계나 가정환경도 나쁘지 않았다. 강군은 “(나는) 입시 위주의 학교 교육이 싫었지만 선생님은 시험 성적만 강조했다”며 “시험을 잘 보는 아이에게만 관심을 쏟는 교실 분위기가 싫었다”고 학업을 중단했던 이유를 설명했다.

ⓒ 시사저널 포토
교육부에 따르면 스스로 학교를 떠나는 아이들이 한 해 7만명에 육박한다. 학생 100명 중 1명은 자퇴를 하는 셈이다. 이 비율은 미국 7.4%, 독일 6.5%, 일본 1.3%보다는 낮다. 정부가 자퇴 학생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이유다. 또 공부하려는 학생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학교는 자퇴 의사를 밝힌 아이를 품어 안는 데 적극적이지 않았다. 윤철경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학교에 다녀야 할 나이에 학교 울타리를 벗어난 아이들이 40만명에 이르고, 이들 가운데 이민·유학·소년원·취업 등 어떤 방식으로든 행방이 확인된 수를 제외한 28만명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밝혔다.

일선 교사들은 ‘잠재적 학업 중단’을 더 심각하게 본다. 쉽게 말해 수업 시간에 잠을 자거나 아무 생각 없이 교실에 앉아 있는 아이들은 학교에 적을 두고 있지만 사실상 학업 중단 학생이다. 전국 초·중·고교 학생 640만명 가운데 300만명 이상이 잠재적 학업 중단 상태라는 것이다. 인천에 있는 중학교의 정 아무개 교사는 “한 반 40명 가운데 수업을 듣는 아이는 10명 남짓이고 나머지는 학업에 흥미가 없다”며 “최소한 한 반의 절반 이상은 자퇴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공교육 부적응이 가장 큰 원인

개인적인 관심사 외에는 흥미를 갖지 않으려는 학생이 일부 있지만, 공교육에 대한 부적응이 학교를 등지는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교육부 통계 자료를 보면, 고등학생의 경우 학교를 떠나는 사유로 ‘부적응’(50%)을 가장 많이 꼽았다. 가정 문제로 자퇴한 비율은 6.7%에 불과했다. 가정환경이나 문제 행동 등으로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학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과거와 비교되는 대목이다. 경기도 파주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요즘 자퇴생은 비행 청소년이거나 공부를 아주 못하는 아이가 아니라, 단지 현재의 교육 제도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개혁 정책을 내놓고 학교 분위기가 개선돼도 이와 같은 탈학교 현상이 줄어들지 않는 배경은 무엇일까. 1800년대 생긴 통제와 관리 중심의 학교 시스템이 21세기를 사는 아이들에게 맞지 않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입시 외에 다른 교육이 없는 현실에서 아이들은 학업에 흥미를 잃는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공교육에서도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는 교육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윤철경 선임연구위원은 “공룡처럼 큰 현재의 공교육 생태계에서는 각 학생에게 맞는 교육을 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교사가 학생들을 일일이 보살피기도 어렵다”며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학생 수가 적은 ‘마이크로 학교’가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대안학교 60곳 불과

학부모와 학생들도 마이크로 학교에 긍정적이다. 마이크로 학교를 당장 만들 수는 없지만, 기존의 대안학교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주부는 “우리 아이는 한 학년 인원이 200~300명이고 한 반이 30명이던 중학교를 자퇴하고 대안학교에 갔다. 그 학교 전교생은 200명이고 한 학년 학생이 60명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 학교에서도 적응하지 못해 옮긴 학교는 전교생이 60명이었다. 학 학년에 한 개 반이 있는데 학생 수는 10명이었다. 아이는 그 학교에서 교사의 관심과 격려를 받아가며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했고 지금은 대학생이 됐다”고 말했다.

전국에 있는 대안학교는 200여 곳으로 추산되지만 교육부가 학력을 인정한 대안학교는 60곳에 불과하다. 고등학생 아들을 둔 임배욱씨는 “기존 학교가 당장 대안학교처럼 될 수 없다면 대안학교라도 많이 만들어줘야 하는데, 교육부 인가를 받은 대안학교는 60곳에 불과하다”며 “그나마 대안학교다운 학교는 20곳 남짓이고 나머지 학교는 ‘특성화’라는 간판을 달고 있어 일반 학교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강조했다. 일부 대안학교는 한 달 학비만 200만원이 넘어 귀족학교라는 불명예를 달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대안학교는 학생 개개인의 진로를 찾아주려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한빛대안학교 교장 최연수 목사는 “대안학교는 학생들이 도보 여행, 한계 도전, 직업 교육 등 입시 교육 외에 다양한 체험을 하면서 자신의 진로를 스스로 찾도록 유도한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대안학교를 늘릴 의지가 없어 보인다. 박수성 교육부 학생복지정책과장은 “대안학교는 시·도교육청이 인가하는 것이지, 교육부가 얼마나 늘릴지 계획을 세운 바 없다”며 “인가받은 대안학교에 교육부는 적은 금액이나마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지난 4월 학업 중단 학생을 위해 예산 340억원을 편성하겠다고 밝히고 대책을 발표했다. 숙려제 의무화와 기존 학교 내에 대안교실 마련이 골자다. 숙려제는 자퇴 의사를 밝힌 학생이 2주일 동안 상담센터에서 심리상담 등을 받도록 한 제도다.

그러나 숙려제로 자퇴율을 낮추려는 정책은 학생이 왜 학교를 떠나려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처방이 아니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또 공교육 본질의 문제를 짚지 않은 채 학업 중단 이유를 학생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면 곤란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학교를 떠난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더니 전체의 57%는 숙려제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지난해 고등학교를 자퇴한 김 아무개군(18)은 “상담센터는 졸업장을 받을 때까지 조금만 참으라고만 했다”며 “이미 내가 관심을 둔 방향은 학교 수업으로는 해결되지 않아 자퇴하려는 것인데 이에 대한 해법을 알려주지는 않고 나를 문제아 취급했다”고 밝혔다. 또 “대안교실에서 수업을 받은 친구들에게 얘기를 들어보니 명상·체조 등 우리의 관심과 동떨어진 분야여서 그냥 놀면서 시간만 때웠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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