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 임직원 올여름은 ‘옷 벗는 계절’
  • 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4.06.18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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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200명 무더기 징계 통보…KB금융 회장·행장까지 중징계

금융 당국이 금융권에 예리한 칼을 빼들었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각종 금융 사고를 일으킨 은행과 카드사의 전·현직 임직원 200여 명에게 무더기 징계를 사전 통보했다. 중징계 대상만 50여 명이 넘고 전·현직 최고경영자(CEO) 10명도 징계 대상에 포함됐다. 제재 대상자 수로 역대 최대 규모인 데다 제재 수위 또한 높아 6월 말 제재 수위가 최종 확정되면 금융권에 거대한 ‘인사 태풍’이 몰아칠 것으로 보인다.

금융감독원은 6월10일 KB금융·국민은행·신한은행·우리은행·국민카드·농협은행·롯데카드·한국스탠다드차타드(SC)은행·한국씨티은행 등의 전·현직 임직원 200여 명에게 징계를 사전 통보했다. 이들 중 50여 명은 중징계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현직 최고경영자도 칼날을 피해가지 못했다.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 민병덕 전 국민은행장, 리처드 힐 전 한국SC은행장, 신충식 전 농협은행장, 최기의 전 국민카드 사장, 박상훈 전 롯데카드 사장, 손경익 전 NH농협카드 분사장 등 8명이 중징계 대상에 올랐고 어윤대 전 KB금융지주 회장과 하영구 한국씨티은행장은 경징계 대상이었다.

ⓒ 연합뉴스
금감원의 사전 통보는 세부 제재 수위를 표시하지 않고 중징계나 경징계로만 분류한다. 금융사 임원에 대한 중징계는 해임권고·직무정지·문책경고로 구분되는데 중징계를 받게 되면 금융기관 임원 선임에 제한을 받게 된다. 금감원은 오는 6월26일 제재심의위원회를 열어 금융회사와 관련 임직원들에 대한 징계를 확정할 방침인데, 심의 결과에 따라 금융권 고위층의 대규모 물갈이가 예상된다.

이번에 징계 통보를 받은 금융사 가운데 가장 크게 타격을 입은 곳은 KB금융그룹(KB금융)이다. KB금융의 경우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 사태 외에 도쿄 지점 불법 대출 사건, KB국민은행 직원들의 국민주택채권 횡령 사건 등 각종 금융 사고에 이어 최근에는 국민은행 전산 시스템 교체를 둘러싸고 내분까지 겹쳐 징계 대상자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KB금융은 징계 대상자가 120여 명에 달한다. 

게다가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이 동시에 중징계 대상에 오르는 굴욕까지 맛봤다. 6월1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최근 국민은행 전산 시스템 교체를 둘러싼 내분(본지 2014년 5월28일자 “낙하산끼리 집안싸움 ‘국민’은 못 말려” 기사 참조)과 관련해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 모두에게 중과실이 있다고 결론을 내려 이들 모두에게 중징계에 해당하는 ‘문책 경고’를 내리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은 임 회장이 KB금융지주 회장 산하 전산담당책임자(CIO)가 국민은행 경영협의회와 이사회 안건을 임의로 고쳤음에도 이를 제대로 감독하지 못했다고 보고 있다. 이 행장의 경우 국민은행 전산 시스템을 IBM에서 유닉스로 교체하는 것과 관련해 국민은행 본부장들이 수차례 왜곡 보고를 하고 이사회 자료를 사실과 다르게 작성한 점에 대한 관리·감독 부실 책임을 물었다.

KB금융지주와 국민은행은 6월26일 열리는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에서 소명 절차를 거칠 예정이나 임 회장과 이 행장 모두 중징계를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임 회장은 카드사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서도 중징계를 사전 통보받았고, 이 행장 역시 KB국민은행 도쿄 지점의 부당대출(당시 리스크 담당 부행장)과 관련해 중징계를 통보받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금융권에서는 금융 당국의 중징계를 ‘자리에서 물러나라’는 경고로 보고 있어 두 사람의 중징계가 확정되면 퇴진 압박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KB금융, 최고경영진 동반 사퇴하나

금융 당국이 금융지주사 회장과 은행장에게 동시에 중징계를 통보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KB금융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KB금융지주의 한 관계자는 “임 회장의 경우 전산 시스템 교체 건 외에 카드사 정보 유출 책임이 징계의 중요한 이유가 됐다”며 “내분이 일어난 것은 죄송스러운 부분이다. 그 부분에 대한 ‘괘씸죄’가 적용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정보 유출 사고의 책임을 과도하게 묻는 인상”이라고 밝혔다.

2011년 3월 KB국민카드가 국민은행에서 분사하면서 관련 절차를 위반하며 국민은행 고객 정보를 가져갔다. 올 초 국민카드에서 약 4320만건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사실이 적발됐고 이 가운데 약 1157만건이 국민은행 고객정보였는데, 분사 시 위규 행위 때문에 은행 고객 정보까지 유출된 것이다.

금융 당국은 당시 임 회장이 지주 사장으로서 국민카드 분사를 총괄한 만큼 카드사 정보 유출 및 은행 고객 정보 유출에 책임져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KB금융 측은 국민카드 분사 시 발생한 문제 관련 책임은 당시 회장인 어윤대 전 회장과 분사 태스크포스(TF)팀 기획단장을 맡았던 최기의 전 KB국민카드 사장에게 물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게다가 정보 유출과 관련해 최기의 전 KB국민카드 사장에 대해 최고 수위의 징계가 예고된 상황에서 임 회장에게까지 중징계를 내린다는 것은 과도한 제재란 것이 KB금융 내부 관계자의 주장이다.

국민은행 관계자 역시 “전산 시스템 교체로 인한 내분과 도쿄 지점 불법 대출과 같은 금융 사고는 성격이 다른 사안인데 이를 묶어 징계하고 행장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금감원의 제재 방침을 두고 울상을 짓고 있는 곳은 또 있다. 은행장에 대한 중징계 이후 예상 밖의 시나리오를 보여줬던 하나은행이 이에 해당된다. 금감원은 4월17일 열린 제재심의위원회에서 중징계를 받아 사퇴 압박을 받았던 김종준 하나은행장에 대한 추가 제재를 검토하고 있다. 금감원은 7월에 제재심의위원회를 열어 하나은행 종합검사와 KT ENS 관련 부실 대출 및 불완전 판매에 대해 제재하면서 김 행장에게도 책임을 물을 방침이다. 하나은행은 KT의 자회사인 KT ENS의 협력업체에 1600억원이 넘는 돈을 빌려줬다가 사기를 당했다. 금감원은 확인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고 거액의 대출을 진행한 것에 대해 경영진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앞서 김 행장은 하나캐피탈 사장 시절인 2011년 당시 퇴출을 앞둔 미래저축은행에 145억원을 투자해 60여 억원의 손실을 입힌 혐의로 4월17일 중징계에 해당하는 ‘문책경고’를 받았다. 금감원은 김 행장에 대한 징계 내용을 조기에 공개하는 등 사퇴 압박에 나섰지만 김 행장은 “CEO의 공백은 조직의 피해와 직결될 수 있다. 내년 3월까지 남은 임기를 마칠 것”이라며 버텼다. 김 행장이 이번에 추가 제재를 받게 될 경우 더 이상의 자리보전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 손보기식 처벌에 그쳐”

KB금융이나 하나은행 사례를 볼 때, 금융권에 대한 금감원의 제재 의지가 남달라 보이지만 이를 다르게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금감원의 제재 내용이 “형평성에 어긋난 부분이 상당해 일부에 대한 ‘손보기식’ 처벌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가령 하영구 씨티은행장의 경우 10만건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과 관련해 경징계를 통보받은 반면,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은 유사한 사안에서 중징계를 받았으나 그 사유가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KB금융그룹에 대한 금감원의 징계를 두고 금융권 안팎에서 ‘임영록 몰아내기’라는 말이 나오고 있는 이유를 살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 교수는 “엄밀히 카드 분사 시 임 회장은 최종 의사결정자는 아니었기 때문에 금감원의 이번 징계는 형평성에 어긋난 점이 있다”며 “도덕적 책임을 의식한 것이었다면 금감원부터 각종 금융 사고에 대한 부실 감독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나은행장에 대한 징계를 두고도 구설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 4월 금융감독원은 김종준 행장에게는 하나캐피탈의 미래저축은행 부당 지원 문제로 문책경고를 내린 반면, 이를 김 행장에게 지시했던 김승유 전 회장에 대한 징계는 경징계에 해당하는 ‘주의적 경고 상당’에 그쳤기 때문이다. 전 교수는 “때려야 할 것을 때리지 않고 애꿎은 부분만 자꾸 꼬집고 있는 것 아니냐. 금감원이 애초 ‘정공법’으로 나섰다면 (김종준 행장에 대한) 추가 제재에 나설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KB금융 내 파워게임은 이건호 행장의 압승으로 끝났다.” 이번 KB금융그룹의 내분 사태를 지켜본 금융권 핵심 관계자의 분석이다.

박근혜정부 들어 금융권에서 한국금융연구원과 KDI(한국개발연구원) 등 연구기관 출신의 활약상이 두드러지는데, 이 때문에 ‘연피아(연구원+마피아)’라는 표현이 새롭게 등장할 정도였다. 이 행장은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장 출신으로 대표적 연피아로 꼽힌다. 이 행장이 박근혜 정권에서 뜨는 연피아 인맥을 활용해 KB금융을 장악했다는 게 금융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금융권의 한 소식통은 “이 행장 이외에 또 다른 ‘연피아’로 정찬우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을 꼽을 수 있는데 정 부원장 역시 금융연구원 부원장 출신이다. 이번 내분에서 이 행장과 같은 편에 섰던 정병기 국민은행 상임감사는 과거 금융연구원 감사를 맡던 시절 정 부위원장과 ‘특별한 인연’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 소식통에 따르면 ‘정찬우-정병기-이건호’가 막강 라인을 구축해 KB금융그룹 내에서 이 행장의 힘이 임 회장을 앞서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KB금융그룹에서 임 회장과 이 행장 간 ‘파워게임’은 양측 모두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이를 두고 금융권의 한 고위 간부는 “KB금융의 경우 그동안 대형 사고가 많았는데 그 와중에 집안싸움까지 벌여 ‘죄질’이 나빴다. 이를 (금융 당국에서) 괘씸하게 보고 이번에 전산 시스템 교체로 인한 내분을 계기로 양쪽 모두에게 철퇴를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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