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위험하지만 한번 질러보지
  • 조재길│한국경제신문 기자 ()
  • 승인 2014.06.18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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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우량 채권에 눈 돌리는 큰손들…거래 가격 급등세

“1년에 6%씩 이자를 꼬박꼬박 받을 수 있다는데 아시아나항공 회사채 2억원어치만 구해줘요.”  “작년에 브라질 채권에 투자했다 손해 봤지만 지금은 괜찮을 것 같네요. 5000만원어치만 사고 싶은데….”

요즘 은행·증권사·보험사 등의 프라이빗뱅킹(PB) 센터엔 고객들의 이런 요청이 심심찮게 들어온다고 한다. 저금리·저수익 금융상품에 지친 고객들이 비우량 채권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거액 자산가들은 전체 자산의 5~10% 이내, 일반 직장인들은 여윳돈을 이 같은 고위험 상품에 넣고 있다는 게 금융권의 설명이다.

연리 5% 넘는 채권은 고위험

관심이 커지고 있는 채권은 연금리 3~6%짜리 중·고위험 회사채다. 이보다 금리가 낮더라도 만기가 충분히 짧다면 뭉칫돈이 몰리기도 한다. 대표적인 상품이 지방자치단체들이 발행하는 공사채다. 인천시 관계 회사인 인천도시공사의 1년물 공채 금리는 연환산 3.88%(2015년 5월 만기)다. 신용등급은 ‘AA+’로 우량채에 속한다. 이 채권을 판매하는 우리투자증권 관계자는 “인천도시공사가 1년 내 부도 날 확률이 낮다고 보고 몇 억원씩 들고 오는 고객이 종종 있다”며 “채권 구입자는 영업점에 직접 들러 투자설명서에 서명한 후에야 매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만기가 1년 남짓 남은 DGB금융지주 산하 DGB캐피탈(연리 3.2%)도 거래량이 많은 채권 중 하나다.

ⓒ 일러스트 김세중
하지만 인천도시공사와 비슷한 신용등급이라도 신한카드(연 2.19%)·현대캐피탈(1.92%)처럼 수익률이 너무 낮다고 판단되면 개인투자자들은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다.

신용등급이 ‘BBB+’인 아시아나항공 회사채 역시 매입 수요가 늘어났다. 가장 거래량이 많은 아시아나항공 74-2 회사채(만기 2018년 4월30일) 금리는 현재 6.0% 정도다. 신용등급이 낮아 금리가 연 8~9%에 달하는 동부건설 회사채의 경우 건설업에 밝은 큰손들이 포트폴리오(자산 배분) 전략 차원에서 접근한다고 PB들은 설명했다.

대우증권·삼성증권 등이 판매하는 환매조건부채권(RP)은 없어서 못 팔 정도다. 대우증권이 개인투자자들을 대상으로 매주 100억원 한도로 파는 RP의 경우 입찰을 시작한 지 1~2분 만에 동나기 일쑤다. 이 채권은 위험이 거의 없으면서도 연 3.3~4.0%(만기 3개월)의 높은 이자를 준다. 다만 이 증권사의 신규 고객이거나 타 증권사 금융상품을 해지하고 찾아온 사람에 한해서다. 1인당 1억(신규 고객)~5억원(타 증권사에서 계좌를 옮긴 고객)까지 매입 제한도 있다.

신용등급이 낮은 채권 거래가 살아나면서 일부 회사채 가격이 단기간에 급등했다. 수요가 몰리자 가격이 뛴 것이다. 예컨대 신용등급이 ‘CCC’에 불과한 웅진에너지 3회(액면가 1만원)의 채권 가격은 5월 말 평균 8840원으로 집계됐다. 웅진에너지는 업황이 부진한 태양광 사업을 시작하면서 자금난에 시달려왔다. 이 회사 채권 값은 올 4월 초만 해도 1좌당 7710원꼴이었는데 두 달여 만에 14%가량 비싸졌다. 가격과 반대로 움직이는 수익률은 연 21.5%에서 14.5% 수준으로 급락했다. 이 채권 만기는 내년 12월이다. 1년에 액면 금액의 2%에 해당하는 이자를 지급한다.

현대상선 176-2회 채권(신용등급 BB+)도 마찬가지다. 이 회사채 가격은 지난 4월 초 7700원 안팎이었지만 5월 말 평균 9090원에 거래됐다. 두 달 새 가격이 15% 이상 뛴 것이다. 이 채권 만기는 2016년 4월이다. 액면가의 6.05%를 매년 이자로 지급한다.

후순위채(발행사 파산 때 변제 순위가 맨 뒤로 밀리지만 이자율이 높은 채권) 기준의 신용등급이 ‘BB+’인 동양증권 회사채 가격은 9개월 만에 액면가를 회복했다. 동양증권 78회 후순위채는 지난해 가을 ‘동양 사태’ 직후(9월23일) 7099원으로 최저점을 찍었다. 그런데 올해 5월22일 처음 1만원을 돌파했고 5월 말엔 평균 1만200원까지 치솟았다. 지난해 최저가에 동양증권 회사채를 매입했다면 연간 7.7%의 고정 이자에다 그동안의 투자 차익(약 44%)까지 챙길 수 있게 된 셈이다.

‘애물단지’ 브라질 채권에 다시 관심

비우량채 시장에 온기가 도는 것은 경기 회복에 대한 낙관론이 확대되고 있어서다. 올해 5월 채권을 발행하거나 발행 계획을 발표한 15개 기업 중 신용등급 ‘A’ 이하가 7개로, 썩 우량하지 않은 채권의 발행 비중이 10개월 만에 최고치를 경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해에만 투자 손실액이 20~30%에 달했던 브라질 채권(보통 만기 10년)이 개인투자자들의 ‘쇼핑 리스트’에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브라질 채권은 헤알화 폭락의 영향으로 올 초까지만 해도 애물단지 신세였다. 삼성증권이 개인 대상으로 이 채권 판매를 일시 중단했을 정도다. 브라질 채권이 다시 조명을 받는 데 ‘월드컵 개최지’의 영향이 있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월드컵을 맞아 주식과 채권, 통화 가치가 오르는 트리플 강세 현상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올 3월 4만4900선에서 움직였던 브라질 보베스파 지수는 6월 5만4400을 넘나드는 등 3개월 만에 20% 넘게 상승했다.

헤알화 가치가 ‘바닥’이란 공감대도 채권 투자자에겐 좋은 신호다. 지난해 브라질 통화 당국이 물가 안정을 이유로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투자 손실이 컸지만 추가 인상 가능성은 작다는 분석이다. 때문에 헤알화는 지난해 8월 이후 지금까지 약 9% 절상됐다.

비과세 혜택에다 높은 표면금리는 여전히 매력이다. 브라질 채권은 한국과 브라질 간 조세 협약에 따라 15.4%의 이자소득세가 면제되는 상품이다. 올해 토빈세마저 폐지되면서 기대 수익이 더욱 높아졌다. 금리는 연 10%선이다.

일부 보수적인 투자자들은 ‘채권 금리+α’가 가능한 펀드로 눈을 돌리고 있다. 수수료 부담이 있지만 채권 전문가들이 대신 투자하면서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특히 공모주 프리미엄을 누릴 수 있는 분리과세형 하이일드(고위험 채권) 펀드나 공모주 펀드를 많이 찾는다.

일반적으로 공모주 펀드는 채권 혼합형 펀드다. 평소 국공채 등 안정적인 채권으로 굴리다 기업 공개(IPO)가 있을 때 일부 자산을 투입해 추가 수익을 얻는 구조다. 대표적인 공모주 펀드인 ‘IBK공모주채움1’ ‘KTB밸런스30 1’ ‘트러스톤공모주알파A’ 등의 1년 수익률은 4~5% 수준이다.

올해 처음 출시된 분리과세 하이일드 펀드는 좀 더 공격적인 수익을 추구한다. 이 펀드는 전체 자산의 60% 이상을 국내 채권에 투자하는 동시에 30% 이상을 투기등급(BBB+ 이하) 채권이나 코넥스 주식에 투자해야 한다. 개인들은 5000만원 내에서 분리과세를 받을 수 있다. 올해 말까지 가입하고 펀드 계약 기간을 1~3년으로 설정하는 조건이다. 특히 공모주 물량의 10%를 우선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어 기대 수익이 높다. 올 4월21일 출시된 유일한 공모 펀드 ‘흥국 분리과세 하이일드 펀드’에 500억원 넘는 개인 자금이 몰린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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