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이 밥 먹여주나
  • 강성운│독일 통신원 ()
  • 승인 2014.06.18 14:4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페인 국왕 퇴위 발표 후 확산되는 왕정 폐지 운동

회색 양복에 연한 노란색 넥타이를 맨 노신사는 카메라 앞에 섰다. 그는 침착하고 단호한 말투로 자신의 퇴위를 알렸다. 6월2일 스페인 국왕 후안 카를로스 1세의 퇴위는 녹화방송이었지만 방송이 나갈 때까지 극비에 붙여진 깜짝 뉴스였다. 그의 아내 소피아 왕비가 전기 작가에게 “왕께서는 왕위를 내려놓지 않으실 것이다. 그는 왕으로서 임종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한 것이 불과 몇 년 전이었기 때문이다. 카를로스 1세는 “새로운 세대가 맨 앞자리에 서고자 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자신의 후계자로 아들 아스투리아스 공 필리페 왕자를 지목했다. 새로운 에너지가 있는 젊은 세대가 경제난을 겪고 있는 스페인을 이끌어야 하며, 필리페 왕세자는 이러한 변화를 추동해낼 만반의 준비를 해놓았다는 것이다.

호화 여행과 막대한 재산 비난 받아

이튿날 스페인 시민들은 거리로 뛰쳐나왔다. 새로운 왕의 탄생을 축하하는 경외의 물결이 아니라, 새로운 왕을 용납하지 못하는 무리들이었다. 광장에는 왕실 문장이 박힌 스페인 국기 대신 1931년 세워진 제2공화국의 삼색기가 넘실거렸고,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국을 세우자”는 함성이 울려퍼졌다. 수도 마드리드에서만 2만여 명의 시민이 시위에 참가했다. 왕실 폐지론자들은 펠리페 왕자를 두고 “직업 경력도 없는 46세 남자가 취직을 하는 걸 보니 스페인 경기가 정말 좋아졌나 보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왕실 폐지 운동은 온라인에서도 활발히 전개되었다. 카를로스 1세의 발표 직후 “국민투표로 왕실 폐지 여부를 정하자”며 시작된 온라인 서명에는 불과 열흘 만에 35만6000여 명(6월11일 현재)이 동참했다. 특히 왕세자비인 레티시아의 이모도 트위터로 “이제는 시민들이 말할 때다”라며 온라인 청원운동을 지지하고 나서 세간의 화제가 됐다. 정치권에서도 제3당인 좌파연합(IU)이 “왕실 존속 여부를 국민투표로 결정하자”고 나섰지만, 실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보수당(PP)과 사회당(PSOE)이 의석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들은 친(親)왕실 성향을 갖고 있다. 국왕 퇴위 및 왕위 계승법은 의회에서 무난하게 통과될 것으로 예상된다.

카를로스 1세는 원래 스페인 국민에게 큰 존경을 받아왔다. 현실 정치를 바라만보는 무기력한 다른 왕족과는 달랐다. 스페인이 현대 민주주의를 확립하는 과정에서 지대한 공을 세웠다.

1931년 스페인에 공화주의가 도입되면서 스페인 왕가 일족은 이탈리아 로마로 망명했다. 카를로스 1세는 그래서 이탈리아에서 태어났다. 1948년 당시 군사독재자인 프란시스코 프랑코 총통의 설득으로 스페인으로 돌아왔다. 1969년 프랑코는 카를로스 1세를 자신의 후계자로 지명했고, 1975년 프랑코가 사망하자 그의 유언에 따라 국왕에 오른다. 그는 이후 정치·사회의 민주화를 급속도로 실행한다. 1977년 여름 41년 만에 총선거를 실시해 의회를 구성했는데, 이에 불만을 품은 일부 군 세력이 1981년 의회를 장악하고 쿠데타를 시도했다. 하지만 카를로스 1세가 독재로의 회귀를 단호히 거부하면서 쿠데타는 실패로 돌아갔다. 공화주의자에게조차 존경을 받는 왕, ‘민주주의의 왕’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런 카를로스 1세도 먹고사는 문제는 피해갈 수 없었다. 2010년 그리스에서 시작된 유로존 위기가 스페인으로 번졌고, ‘민주주의의 왕’과 시민들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간극이 생겼다. 특히 2011년 11월 왕의 둘째 사위인 이냐키 우르단가린 공작이 재단을 이용해 수백만 유로의 공금을 횡령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국민은 스페인 왕가에 싸늘한 시선을 보내기 시작했다. 당시 스페인은 긴축정책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고, 실업률은 26%에 육박하는 상황이었다.

분리독립 움직임도 왕실 권위 손상시켜

시민의 분노가 쉽게 가라앉지 않자 2011년 12월 스페인 왕실은 재정을 공개하는 방법으로 국민에게 다가서려고 했다. 카를로스 국왕의 연봉은 29만 유로(약 4억원)로 유럽 최저 수준이었다. 그러나 국왕과 왕실에 편성된 예산은 6000만 유로(약 825억원) 이상으로 추산되었고, 왕가 사람들이 사적인 용도로 국영 이베리아 항공을 무료로 이용하는 등 특혜를 누리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거리 좁히기 전략은 실패했다.

왕가에 대한 여론을 결정적으로 악화시킨 사람은 의외로 존경받는 카를로스 1세였다. 2012년 4월 그가 엉덩이뼈 골절로 수술을 받은 사실이 알려졌는데, 그 이유가 아프리카 보츠와나에서 애인과 코끼리를 사냥하다가 넘어져서라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국민을 뒤로한 왕의 행태는 맹비난거리였다. 설상가상으로 같은 해 9월에는 미국의 뉴욕타임스가 스페인 왕가의 자산을 23억 유로로 추산하면서 스페인의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입헌군주제 폐지 여론이 들끓었다. 이렇게 쌓인 불만이 오늘날 “왕실을 없애라”는 외침으로 터져나온 것이다.

‘왕은 하늘이 내려보냈다’는 믿음은 깨진 지 오래고, 왕실은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그 기능을 대체할 것이 많아졌다. 그래서 유럽 각국의 왕실은 저마다 ‘존재의 이유’를 설득력 있게 제시해야 한다.

세계 각국에 열성팬을 거느린 영국 왕실도 예외는 아니다. 영국 왕실은 그동안 지출 규모를 꾸준히 줄여왔고 왕실이 영국의 관광 수입에 막대한 기여를 한다고 주장한다. 영국 관광청도 왕실이 연간 5억 파운드의 관광 수입에 기여한다면서 이를 뒷받침했다. 영국 왕실은 2012~13년 회계연도에 총 3330만 파운드(약 570억원)를 지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국민 1인당 1년에 53펜스, 우리 돈으로 1000원만 내면 왕실을 유지할 수 있다는 얘기인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남는 장사’라는 게 왕실의 주장이다.

그런데 여기에도 맹점이 있다. 예를 들어 경호 비용 등 잡히지 않는 비용이 있다. 또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에서 알 수 있듯이 왕궁을 방문하는 관광객은 그곳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유적 그 자체에 집중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아무리 경제성이 있다 한들 왕가에서 태어났거나 왕실 사람과 결혼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극소수의 사람이 특혜를 누리는 것은 현대의 평등 이념과 맞지 않는다.

왕실이 국가의 상징으로 국민에게 공통된 정체성을 부여해준다는 주장도 현실을 살펴보면 머쓱해진다. 오는 9월18일 스코틀랜드에서는 영국으로부터의 분리독립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실시된다. 스페인 카탈루냐에서도 올해 11월 스코틀랜드와 마찬가지로 분리독립 여부를 두고 국민투표가 진행된다. 스페인 북동부의 바스크 지역에서는 학교 수업에서 인종주의를 가르칠 정도로 극단적인 분리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국왕은 국가적 단일성의 상징이자 보증인”이라고 규정한 스페인 헌법이 무색할 정도로, 스페인 국왕은 통합에 뚜렷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