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안정환-이영표 맞짱 뜬다
  • 서호정│축구 칼럼니스트 ()
  • 승인 2014.06.18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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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3사 월드컵 중계 대전…2002 레전드들 안방으로 출격

2010년 남아공월드컵은 한국 스포츠 중계 지형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국민의 ‘보편적 시청권’을 보장하던 스포츠 이벤트에 속하는 올림픽·아시안게임·월드컵을 지상파 3사가 아닌 특정 방송사가 처음으로 단독 중계를 한 것이다. SBS와 KBS·MBC 간의 치열한 신경전이 펼쳐졌지만 결국 승자는 단독 중계권을 지녔던 SBS였다. SBS가 남아공월드컵을 기점으로 스포츠 중계의 선두라는 타이틀을 뺏어오는 데 성공했다. 그 후 KBS와 MBC가 노조 파업 등으로 자중지란을 겪는 사이 2012년 런던 하계올림픽과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까지 SBS가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 이번 브라질월드컵은 지상파 3사가 스포츠 중계의 패권을 놓고 다시 경쟁하는 대회다. 3사 모두 물량과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각각 수성과 탈환을 외치고 있다.

SBS, 차범근 부자에 박지성까지 가세

SBS는 과거 KBS가 갖고 있던 스포츠 중계의 모범답안이라는 이미지를 차지한 새로운 강자다. 비결은 투자다. 스포츠 전문 케이블 채널인 SBS스포츠와 지속적으로 인력을 공유하며 경험치를 높였다. 남아공월드컵, 김연아 경기(국제빙상연맹) 중계권 확보에도 거액을 쏟아 부었다. 지상파 간의 신사협정을 깰 때만 해도 맹비난을 받았지만 스포츠 중계에서 1위로 치고 나가며 그 같은 판단이 옳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연합뉴스
브라질월드컵에서 SBS의 간판은 역시 한국 축구의 레전드인 차범근 해설위원이다. 축구를 보는 뛰어난 감각, 차분한 말솜씨와 애정 어린 시선, 글로벌한 인맥을 앞세운 차범근 위원의 해설은 국민의 시선에 가장 부합하는 눈높이를 지녔다. MBC 소속으로 해설계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2002년 한·일월드컵부터 SBS로 이적해 치른 2010년 남아공월드컵까지 월드컵 시청률 1위는 모두 차범근 위원을 잡은 쪽이 가져갔다는 점에서 시청률을 보장하는 카드다. 차범근 위원은 이번 브라질월드컵이 해설가로서 참가하는 마지막 대회라고 일찌감치 선언한 상태다. 대신 앞선 두 대회처럼 아들이자 현역 선수인 차두리를 가세시키며 승계에도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축구를 다룰 간판 스포츠 캐스터가 없다는 약점이 있던 SBS는 지난 4년간 배성재라는 젊은 인력에 집중 투자하며 이번 월드컵을 준비했다. 남아공월드컵을 통해 본격적으로 스포츠 캐스터 이미지를 쌓은 배성재 아나운서는 국내외 축구와 올림픽 중계를 통해 많은 팬을 거느린 영향력 있는 캐스터로 발돋움했다. MBC와 KBS가 해설진에 2002년 한·일월드컵 영웅을 추가하자 SBS는 월드컵 직전에 박지성 카드를 내놓으며 기세를 완전히 꺾어놓았다. 박지성의 역할은 해설위원이 아닌, 사전 제작된 영상물을 통해 경기 전 방송에 나서는 경기위원이다. 지난 6월 현역에서 은퇴했지만 박지성의 영향력은 차범근 위원, 현재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홍명보 감독 이상이다. 김민지 전 SBS 아나운서와 결혼을 앞두고 있는 데다 자신의 이름을 건 자선경기를 꾸준히 지원해온 데 대한 의리를 지킨 것이다. 방송 관계자들 사이에는 박지성 카드까지 추가된 SBS가 이번 월드컵에서 1위를 수성할 것이라는 데 별다른 이견이 없다.

ⓒ 연합뉴스
MBC,  김성주·송종국·안정환 3인 체제

MBC는 2002년과 2006년에 차범근 해설위원을 앞세워 월드컵 시청률 1위를 차지했던 ‘월드컵 채널’이었다. 그 이전에는 1997년 프랑스월드컵 예선 중 벌어진 ‘도쿄대첩’ 등을 통해 화제를 선점했다. 특히 대중이 선호하는 예능 프로그램과의 하모니로 시너지를 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2006년 이후 8년 만에 월드컵으로 돌아온 MBC는 이번에도 그러한 전통을 이어간다. MBC 월드컵 중계의 핵심은 ‘아빠’들이다. <아빠! 어디가?>를 통해 ‘예능 스타’가 된 김성주·송종국·안정환 3인이 고스란히 월드컵 중계진으로 자리 잡았다.

 런던과 소치 두 차례 올림픽에 이어 이번 브라질월드컵에도 MBC는 방송인 김성주를 불러들였다. 2006년 독일월드컵 당시 캐스터로서 차범근 해설위원을 보좌하며 ‘국민 캐스터’로 올라섰던 그는 2007년 프리랜서를 선언하며 MBC를 떠났다. 한때는 MBC 방송 출연까지 금지됐지만 올림픽을 계기로 친정으로 돌아왔다.

신문선과 결별하고 차범근이 떠난 뒤 간판 축구해설자가 없던 MBC는 ‘젊은 피’ 안정환과 송종국을 영입했다. 현역에서 은퇴한 지 2년밖에 되지 않아 현장감이 뛰어나고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이라는 점이 크게 어필했다. 게다가 <아빠! 어디가?>에 출연하며 대중적 호감도도 키워놓은 상태다. 안정환은 거침없는 호통 해설로, 송종국은 섬세한 배려의 해설로 조화를 맞추고 있다. MBC는 월드컵 중계전의 사활이 걸린 한국 경기에 일찌감치 3인 중계 체제로 갈 계획을 잡았다. 이런 방향성을 SBS와 KBS도 따라오며 이번 월드컵은 기존의 2인 체제가 아닌 파격적인 3인 체제로 가는 모습이다. 다만 MBC의 경우 대중성이라는 이유로 스포츠 중계를 지나치게 쇼로 만드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는다. 간판 예능인 <무한도전>과 <아빠! 어디가?> 팀을 브라질로 보내 경기 외적인 흥미를 집중시키지만 스포츠 자체에 대한 진중함은 떨어진다는 평이다.

김남일(왼쪽)과 이영표가 한국 대 가나의 평가전을 하루 앞둔 6월9일 오전(한국 시간) 미국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 선라이프 스타디움을 찾아 대화하고 있다. 김남일과 이영표는 KBS의 브라질월드컵 해설위원을 맡았다. ⓒ 연합뉴스
KBS 이영표의 분석, 스포츠 왕국 재건할까

KBS는 오랜 시간 스포츠의 명가로 통했다. 올림픽·월드컵 등 주요 대회와 프로스포츠는 물론 전국체전을 비롯한 아마추어 스포츠에도 꾸준히 관심을 기울여 왔다. 스포츠 중계 인력도 3사 중 가장 많다. 그러나 최근 KBS의 위상은 급격히 추락하고 있다. 특히 지난 소치올림픽에서 KBS는 화제와 시청률 모두를 놓치며 대중의 코드를 읽지 못하는 게 아니냐는 내부 평가를 받았다. 이번 브라질월드컵을 앞두고도 올림픽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배성재·김성주의 대항마로 프리랜서를 선언하고 나간 전현무 모시기를 시도하다가 심각한 내부 저항을 받았다. 프리랜서 선언 후 3년간 출연을 금지한다는 내부 규정까지 어겨가며 전현무를 복귀시키려고 한 것은 KBS가 월드컵 중계에 얼마나 불안감을 느끼는지를 보여준다.

전현무 복귀 무산 이후 KBS는 오히려 스포츠 간판 아나운서의 인사 이동을 단행하는 보복성 인사로 다시 논란이 됐다. 길환영 전 사장의 보도 개입 논란으로 노조 파업이 일어나고, 스포츠국 부장급 간부가 사퇴하며 KBS의 월드컵 준비는 어수선한 분위기다. 이런 상황에서 믿는 카드는 이영표다. 지난해 현역에서 은퇴한 이영표는 무려 5년이라는 장기 계약으로 해설직을 맡았다. KBS는 선수 시절부터 남다른 분석과 지적인 모습을 보인 이영표가 공영방송 이미지와 부합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자연스럽게 해설진의 세대교체가 진행됐다. 기존 KBS 간판이던 이용수 교수는 이번 브라질월드컵에서 3진을 맡는다. KBS는 이영표 해설위원에 비선수 출신으로 큰 인지도를 지닌 한준희 해설위원을 2진에 세우는 파격적인 전략을 선보인다. 현역 선수이자 2002년의 또 다른 영웅인 김남일 역시 브라질로 건너가 지원 사격에 나선다.

문제는 캐스터다. 경험 있는 베테랑 아나운서가 모두 내쳐지며 KBS는 부랴부랴 조우종 아나운서를 브라질월드컵 1진으로 내세웠다. 스포츠 경험이 있는 아나운서 중 그나마 대중 선호도가 높다는 내부 판단에서다. KBS는 그를 예능 프로그램인 <인간의 조건>과 <우리동네 예체능>에 출연시키며 인지도 높이기에 나섰지만 관건은 축구 중계 그 자체다. 월드컵을 앞두고 지상파와 케이블에서 몇 차례 중계에 나섰지만 본질적인 부분을 놓치고 있다는 반응이 많았다. 진지한 분석이 주인 이영표 해설위원과 과연 궁합이 맞겠느냐는 의문을 안은 채 월드컵 중계에 돌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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