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보다 남자가 벗을 때 시청률 ‘쑤~욱'
  • 하재근│대중문화평론가 ()
  • 승인 2014.06.18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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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주 소비층인 여성 시청자 욕망 영향

연예 매체 ‘디스패치’에서 최근 주요 드라마 1회의 시간대별 시청률 추이를 보도했는데 그 내용이 흥미롭다. 이종석이 탈북자 의사로 등장하는 <닥터 이방인> 1회에선 이종석이 샤워하는 순간 시청률이 상승했다. 동방신기를 거쳐 현재 JYJ 멤버로 활동하는 아이돌 스타인 김재중이 출연하는 <트라이앵글>에선 김재중의 러브신에서 시청률이 올랐고, <별에서 온 그대>에선 김수현의 샤워신에서 급등했다. 반면 다른 드라마들의 여배우 노출신에선 시청률이 상대적으로 작게 올랐다.

주요 드라마에서 남자 주인공의 액션 장면이 펼쳐질 때는 시청률이 오른 반면, 여주인공이 열연을 펼칠 땐 오히려 하락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특히 <별에서 온 그대>에서 전지현이 크게 노래를 부르며 망가지는 장면은 매체의 주목을 받을 만큼 호평을 받았음에도 시청률이 하락한 것으로 나와 눈길을 끈다.

의 이종석. ⓒ SBS 캡처
한마디로 남자 주인공의 성적 매력이나 남성성이 강하게 부각되는 순간 시청률이 올랐다는 이야기다. 드라마는 그동안 관습적으로 시청률 상승을 위해 방영 초반에 여배우의 샤워신을 배치하곤 했는데 그게 허사였을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이 같은 시청률 추이는 무얼 말해줄까.

여배우 노출신 시청률 상대적으로 덜 올라

과거에 사극 <김수로>는 여신관이 단체로 노출하고 여사제를 형틀에 묶어 물볼기를 때린 신으로 큰 논란을 일으켰다. 얇은 천으로 된 치마와 저고리만 입은 여자에게 물을 뿌리고 그 살결을 클로즈업으로 훑어 가히 성인영화를 방불케 하는 탐미적(?) 영상미를 자랑하며 이름을 알렸으나 시청률 면에선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했다. 반면에 같은 시기 탄탄한 복근을 자랑하는 남성들이 함께 목욕하는 장면을 제공한 <추노>는 승승장구했다.

이것은 드라마 시청률이 남자가 아닌 여자의 욕망에 더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말해주는 에피소드다. 그런 경향을 업계 관계자라면 누구나 상식적으로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여자의 섹시미를 시청률을 위한 ‘보약’으로 동원하는 관습이 사라지지 않았다. 불과 얼마 전에도 <미스코리아>가 여자들의 수영복 포즈를 수시로 보여주며 시청률 몰이를 한 바 있다. 반면 남자의 섹시미는 그렇게 노골적으로 강조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과거엔 아무리 드라마의 주 시청층이 여자라 하더라도 그 여자들이 오로지 남성미에만 탐닉할 것이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 경향이 점점 바뀌어 여자 시청자가 남성미에만 노골적으로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반면, 여배우에 대한 관심은 과거보다 덜 보이고 있다. 그렇게 변화한 시청자의 태도가 이번에 주요 드라마의 1회 시간대별 시청률 추이 보도를 통해 실증적으로 확인된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의 흐름을 되짚어보면 그런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선덕여왕>에선 비담·김유신·김춘추·알천 등 꽃미남 화랑이 인기를 얻었다. <성균관 스캔들>에선 박유천·송중기·유아인 등 꽃미남 선비가 인기를 모았다. <옥탑방 왕세자>에서도 왕자인 박유천과 꽃미남 신하가 인기를 끌었다. <추노> <뿌리 깊은 나무> 등에선 야성적인 장혁과 꽃미남 송중기가 인기를 끌었다.

반면에 <장옥정, 사랑에 살다>처럼 미녀를 내세운 작품은 성공하지 못했고, <추노>에 등장한 미녀인 이다해는 엄청난 비난을 들었으며 그 외 드라마 속 여주인공도 민폐 논란에 시달렸다. 남성미에 유독 호의적인 반면, 여성미엔 냉담하거나 심지어 적대적이기까지 한 것이다. 아무리 여자 시청자층이 많았다 해도 과거엔 이렇게까지 심하진 않았다.

 여자가 남자의 성적인 매력까지 노골적으로 소비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주말드라마를 보면 알 수 있다. 과거엔 없던 관습이 최근 몇 년 사이에 생겼는데 그것은 바로 남자의 샤워신이다.

과거엔 여배우가 샤워하는 모습을 아슬아슬하게, 그리고 탐미적으로 담아낸 반면 남배우의 샤워신을 그런 앵글로 잡진 않았다. 그랬던 것이 요사이 마치 과거 여배우 샤워신을 보여줬던 것 같은 느낌으로 남배우 샤워신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그런 장면이 시청률에 크게 도움이 된다는 점이 앞에서 소개된 시간대별 시청률 추이에서 수치로 증명된 것이다.

의 김수현. ⓒ SBS 캡처
여배우 기근은 여자가 만들었다

최근 들어 여배우 기근이라는 말이 영화계와 드라마계에서 나온다. 2~3년 사이에 벌어진 현상이다. 워낙 여배우가 주목받지 못하다 보니 어쩌다 여배우들이 작품 속에서 조금 도드라지면 ‘드디어 여배우 부흥이 시작됐다’는 식의 기획기사가 나왔다가 별다른 반향이 없자 이내 시들해지며 다시 여배우 기근을 한탄하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사실은 부흥했다가 침체하는 것이 아니라 몇몇 여배우가 잠시 주목받는 건 예외적 현상이고, 큰 틀에서 보면 경향적으로 여배우 하향 국면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영화계에선 <변호인> <설국열차> <관상> <신세계> <아저씨> <감시자> <더 테러 라이브> <베를린> <범죄와의 전쟁> 등 최근 한국 영화 전성기를 주도한 대다수 작품에서 여배우의 존재감을 찾을 수 없다. 철저하게 ‘남자의, 남자에 의한, 남자를 위한’ 세계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도 남성미의 부각이 흥행 요인이 된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이런 흐름의 귀결은 결국 여자의 위상 저하, 여자의 입지 축소다. 대중문화 흥행의 주도권을 쥔 여자들이 남배우에게만 열광하기 때문에 제작자 입장에선 여배우에게 공을 들일 필요가 없다. 여배우에게 문제가 있어서 여배우 기근이 온 것이 아니라 대중문화 주 소비자인 여자가 여배우를 축출해버린 것이다.

또 여자 시청자들이 여자를 구해주는 남자, 여자를 보호해주는 남자에게 열광하기 때문에 작품 속에서 여배우는 철저하게 구함을 당하는, 그리고 보호를 당하는 수동적 역할에 머무른다. 이것이 바로 여배우 민폐 논란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유다. 이렇게 보호나 받으며 주도적으로 하는 일이 없는데도 화사한 화장을 하고 예쁜 얼굴로 나오기 때문에 결국 자기 외모만 챙긴다는 비난을 받게 된다. 이것이 이다해가 <추노>에서 맹비난을 받은 이유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오랜 경구가 있는데 이 말이야말로 최근 대중문화계 동향을 정확하게 표현해준다. 여자 시청자의 선택에 의해 남자 캐릭터는 점점 멋있어지고 여자 캐릭터는 무의미해진다. 이것은 단순히 여배우 입지 축소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여성관마저 부정적으로 만들어 여자들의 사회적 입지를 축소시킬 것이다. 외모만 챙긴다는 비난도 여배우에게만이 아닌 여성 일반을 향한 편견으로 확산될 것이다. 여자 시청자의 자살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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