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산들의 결투
  • 윤길주 | 편집국장 ()
  • 승인 2014.06.25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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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국민은행은 우리나라 최대 은행입니다. 자산 388조원에 고객은 2800만명에 달합니다. 가정마다 국민은행 통장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요즘 국민은행 고객 중에 불안해하는 분이 많습니다. 하도 사고가 자주 터져 거래를 계속해도 되는지 의구심을 갖는 것입니다. 신뢰가 밑천인 은행에서 믿기지 않을 일들이 자꾸 벌어지니 돈을 맡긴 사람들로서는 걱정이 될 수밖에 없는 겁니다. KB금융은 2008년 카자흐스탄에 투자했다가 9000억원을 날렸습니다. 일본 도쿄 지점에서 5000억원을 불법 대출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국민카드에서 1000만명의 고객 정보가 유출돼 전 국민이 기겁을 했습니다. 

최근에는 집안에서 서로 총질하기 바쁩니다. 표면적으로는 전산 시스템 교체를 두고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이 다투는 걸로 보입니다. 국민은행 이사회는 지난 4월 전산 시스템을 IBM에서 유닉스 시스템으로 바꾸기로 의결했습니다. 하지만 이건호 행장과 정병기 감사가 문제를 제기합니다. 이들은 이사회 결정에 대해 법원에 효력 정지 가처분신청을 내고, 금융감독원에 조사를 요청합니다. 잔뜩 벼르고 있던 금감원이 발 빠르게 특별감사에 착수했습니다. 이와 함께 KB금융지주와 국민은행 경영진에 대한 계좌 추적에 나섰습니다. 이들이 혹시 전산 시스템 교체와 관련해 업체로부터 리베이트를 받았는지 의심하는 것입니다. 감독 당국이 KB금융 고위 경영진을 잡범 취급하고 있는 겁니다.

KB금융의 꼴사나운 집안싸움엔 우리나라 금융의 난맥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두 ‘결투자’는 전형적인 낙하산입니다. 회장은 재정경제부 차관 출신으로 ‘모피아’입니다. 은행장은 한국금융연구원 출신으로 박근혜정부에서 잘나가는 ‘연피아’입니다. 과거 같으면 은행장은 금융지주 회장의 ‘꼬붕’이었습니다. 이명박 정부 때 4천왕의 기세는 하늘을 찔렀습니다. 어디 감히 은행장이 회장에게 덤빕니까. 시대가 변한 탓인지 이번에 KB금융에서는 항명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금융계에서는 정권 실세와 가까운 행장이 ‘빽’이 변변치 못한 회장을 깔아뭉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국민은행은 주인이 없습니다. 10% 이상 지분을 가진 대주주가 없고, 외국인이 60% 넘는 주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정권을 잡은 쪽이 제멋대로 낙하산을 내려보냅니다. 낙하산 경영진이 정권에 줄

서기 바쁘다 보니 경영은 형편없고, 직원들은 모럴해저드에 빠져 고객 돈으로 장난을 치는 것입니다. 정권이 KB금융을 전리품으로 여기고 계속 낙하산을 내려보내면 국민은행은 3류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최근 런던에서 열린 ‘포용적 자본주의’ 컨퍼런스에서 은행 부패에 따른 자본주의 신뢰 훼손을 지적했습니다. KB금융에 던지는 경고 같습니다. 김연아·이상화 등 스포츠 스타를 내세워 이미지 세탁을 한들 소용이 없습니다. 신뢰에 금이 가면 고객 이탈을 막을 수 없습니다. KB금융지주가 지금처럼 덩치가 커진 것은 정부 정책과 1997년 외환위기 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들이 잘해서 ‘슈퍼 뱅크’가 됐다고 생각하면 착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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