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억 쓰면 공천 받고, 6억이면 떨어진다”
  • 안성모 기자 ()
  • 승인 2014.06.25 10:3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금배지와 돈의 은밀한 관계 출판기념회·후원금 쪼개기 등 수법 갈수록 진화

흔히 정치와 돈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한다. 정치를 하려면 돈이 필요하고, 돈이 있으면 정치를 하려 든다. 둘 사이에 이해가 맞아떨어질 경우 거래가 성사된다. 물론 법의 테두리 내에서 투명하게 이뤄지는 거래라면 문제될 게 없다. 시대가 바뀌면서 예전처럼 대놓고 돈을 달라는 정치인이나 무작정 이권을 챙기는 재력가를 보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얼굴을 맞대던 정치와 돈이 서로 등을 돌렸다고 보기도 힘들다. 공식적인 거래뿐만 아니라 비공식적인 거래가 여전히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다.

대의민주주의에서 정치의 꽃은 국회의원이다. 국민의 손에 뽑혀 국민의 뜻을 대변하는 자리다. 책임이 막중한 만큼 권한도 막강하다. 의원 개개인이 입법권을 가진 헌법기관으로서 사회 전반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갖가지 특권도 주어진다. 면책특권이나 불체포특권과 같이 알려진 것 외에도 200여 가지나 된다. 그렇다 보니 국회를 떠난 전직 의원들은 일종의 금단현상을 느끼기도 한다. 3선을 지낸 야당의 한 전직 의원은 “국회에서 한 발짝 떨어져 살펴보니 의원에게 주어진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다시 보게 됐다”며 “특권을 하나씩 포기하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 일러스트 오상민
“7억에 공천 받을 수 있다면 줄 서 기다릴 것”

특권 속에 주어진 권한은 ‘검은돈’의 유혹을 불러온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게 공천 대가로 금품이 오가는 이른바 ‘공천 헌금’이다. 전국 단위의 선거가 치러지고 나면 여의도에는 한바탕 후폭풍이 몰아친다. 공천을 둘러싼 돈 거래 의혹이 검찰 수사로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번 6·4 지방선거뿐 아니라 2012년 총선 때도 마찬가지였다. 선거가 치러지기 몇 달 전부터 잡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당시 여권의 한 유력 인사는 기자에게 ‘돈 공천’으로 인해 부산 지역이 시끄러워질 거라고 귀띔했다. ‘새누리당에 공천을 신청한 ㅎ씨가 당의 핵심 인사에게 거액을 건넸는데 원하는 지역구 공천은 못 받았지만 대신 비례대표 명단에 이름이 올랐다’는 내용이었다. ㅈ씨가 중간에서 돈 전달을 맡았다는 구체적인 정황까지 제시했다. 지역 정치인들이 공천 결과에 불만을 제기하던 중 나온 얘기였다고 한다.

ㅎ씨는 실제 ‘금배지’를 달았다. 하지만 국회가 출범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공천 헌금’을 제공한 혐의로 검찰의 수사 대상에 올랐다. ㅎ씨는 비례대표 23번으로 당선된 현영희 전 의원이다. 현 전 의원은 지난 1월16일 대법원으로부터 당선무효형인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반면 수사 초기 돈을 받은 것으로 의심받은 친박(親박근혜)계 현기환 전 의원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당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여권 인사는 “ㅈ씨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며 공천 과정에 실세로 통하는 전·현직 국회의원이 관여했을 것으로 봤다.

‘공천 헌금’은 여야 정당 모두 골머리를 앓는 문제다. 올해 초 정치권에서 ‘7당(當) 6락(落)’이라는 말이 회자됐다. ‘7억원을 쓰면 공천을 받고, 6억원을 쓰면 떨어진다’는 뜻인데, 김효석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이 전남 목포에서 열린 한 토론회 자리에서 한 말이다. 민주당 전남도당위원장을 지낸 3선 의원 출신의 김 최고위원은 당시 안철수 의원의 신당 창당 준비기구인 새정치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국회 주요 법안 문구 하나에 이해관계 첨예

여야 정치권이 발끈했다. 새누리당은 “허위사실 유포로 구태정치의 답습”이라고 비난했고, 민주당은 “근거 없는 말로 친정을 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양당이 ‘7당 6락’이라는 표현에 못마땅하다는 반응을 보인 것은 ‘돈 공천’ 문제가 그만큼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새 정치’를 기치로 내건 안철수 진영이 기존 정당을 ‘부패 세력’으로 몰아가려 한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하지만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와 다른 반응도 적지 않았다. 출마를 고심하던 한 인사는 “7억원을 주고 텃밭에서 공천을 받을 수 있다면, 아마 줄 서서 기다릴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공천 헌금’이 유력 정치인 몫이라면 ‘입법 청탁’은 의원 모두에게 해당된다. 국회에 올라오는 주요 법안은 문구 하나만 달라져도 관련 산업의 지형이 뒤바뀔 수 있다. 의원은 법안을 직접 발의하기도 하고 다른 법안을 심사하기도 한다. 기업이나 협회, 단체 등이 ‘금배지’에 매달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들에게 국회의원은 ‘관리 대상 1호’라고 할 수 있다.

이권이 걸린 청탁에는 그만한 대가가 따른다. 정치권에 대한 감시가 강화된 만큼 대가를 지불하는 방식도 진화했다. 과거처럼 현금 다발을 차로 실어나르는 일은 흔치 않다. 대부분 외형상으로는 합법의 형태를 띤다. 하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편법과 불법이 난무한다. 한동안 출판기념회가 자금 모집 수단으로 각광을 받았다. 선거 90일 전부터 금지되고, 행사 중 기부 행위를 할 수 없다는 점 등을 제외하면 별다른 규제가 없다. 몇 번을 열든 얼마를 모으든 상관없다.

행사 참석자에게 책값만 받아서는 수익이 1억원을 넘기기 힘들다. 하지만 한번 행사를 열면 수억 원의 수입을 거둘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기업이나 협회, 단체 등이 돈을 풀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경제 관련 상임위 소속 의원들의 출판기념회가 성황을 이루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설명이다. 굳이 행사장에 참석하지 않더라도 대형 서점에서 대량으로 책을 구매해주는 방법도 있다.

몇 해 전부터는 ‘후원금 쪼개기’ 수법이 자주 입길에 오른다. 직원이나 회원이 소액 후원을 하는 것처럼 가장해 거액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실제 신협중앙회 장 아무개 회장과 간부 두 명이 2010년 6~9월 직원들에게 여야 의원 20명의 후원 계좌로 1만~10만원씩 총 1억9129만원의 후원금을 몰아주도록 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단체나 법인 관련 자금으로 정치 후원금을 기부하는 행위는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불법이다. 이들은 당시 정부가 이사들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는 방향으로 신협법 개정을 추진하자 이를 막기 위해 국회 정무위 소속 의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