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지킴이냐, ‘반박’ 선봉장이냐 두 백전노장의 대충돌
  • 감명국 기자·양정대 한국일보 기자 (kham@sisapress.com)
  • 승인 2014.06.25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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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당권 경쟁 나선 ‘서청원-김무성’ 혈전 치달아

“차기 당 대표는 청와대와 수평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청와대가 시키는 대로 다 하는 인물은 곤란하다.” (새누리당 영남 지역 초선 의원)

시사저널은 올해 신년 벽두인 1월1~3일 새누리당 초선 의원 78명을 상대로 전수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시사저널 1264호 1월7일자, ‘박근혜 키즈, 주군에게 위험신호 보내다’ 기사 참조). 당시 초선 의원들은 ‘당의 차기 대표로 어떤 인물이 적합하다고 보는가’란 질문에 구체적 이름을 거명하는 것은 주저하면서도 대부분 청와대에 할 말을 하는 리더십을 최우선 덕목으로 꼽았다. 청와대와 당의 상하 관계에 대한 불만을 드러낸 셈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조심스럽게 김무성 의원이 가장 많이 거론됐고, 서청원 의원이 뒤를 이었다. 한 비례대표 의원은 “청와대에 할 말을 할 수 있고, 당 내부적으로는 다선 의원과 초선 의원들 사이의 간극을 조율할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 당내에서는 김 의원이 여기에 가장 걸맞은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한 비영남권 지역구 초선 의원은 “야당과의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정치인이 와야 하는데, 그렇다면 김무성·서청원 둘 중 한 명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왼쪽)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 ⓒ 시사저널 이종현, (오른쪽) 서청원 새누리당 의원 ⓒ 시사저널 박은숙
5개월여가 지난 지금, 서청원 의원과 김무성 의원의 맞대결이 현실화됐다. 7·14 새누리당 전당대회가 D-30 아래로 막 꺾였던 지난 6월15일 유력 당권 주자인 서 의원과 김 의원이 마침내 한 차례 충돌했다. 비주류인 김 의원은 한 종편 방송에 출연해 “박심(朴心)을 팔지 말라”며 서 의원을 겨냥했고, 서 의원은 기자들과의 오찬 자리에서 ‘후보 매수죄’ 등 김 의원의 과거 전과를 끄집어냈다. 양측 모두 서둘러 진화에 나서면서 전면전으로 확산되진 않았지만 당 안팎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돌았다.

빅매치는 ‘데스 매치’…“둘 중 한 명 재기 불능”

서 의원이나 김 의원, 두 백전노장이 꺼내든 ‘무기’는 크게 논란이 될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닐 수 있다. 기존에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측 모두 발끈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우선 서 의원 측 관계자의 말이다. “마치 우리가 ‘박심 팔이’나 하는 것처럼 비하하고 있다. 서울시장 경선 때 김황식 전 총리와 서 의원을 동급에서 취급하려는 의도가 궁금하다. 서 의원은 누가 뭐래도 박근혜 대통령의 병풍 역할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당 대표 후보다. 박근혜정부의 성공을 위해 모든 걸 버릴 각오가 돼 있다. 마지막 정치 인생을 건 선배에게 최소한의 예의는 갖춰야 하는 것 아닌가.”

김 의원 측도 상대 진영에 대해 불만이 가득하긴 마찬가지다. 김 의원실의 한 보좌관 말이다. “서 의원이 뜬금없이 옛날 얘기를 꺼내든 건 도둑이 제 발 저렸기 때문일 것이다. 솔직히 당내에는 ‘서청원 대표 간판’으로는 다음 총선을 치르기 어렵다는 얘기가 많다. 대표적인 비리 정치인이자 ‘올드보이’의 전형 아닌가. 자신의 약점을 감추려고 물타기에 나선 것이다.”

양측 간 신경전의 단초는 김무성 의원의 캐치프레이즈였다. 지난 6월8일 김 의원의 당 대표 출마 선언 자리에서 선보인 ‘과거냐, 미래냐’라는 다소 도발적인 카피를 두고 서 의원 측은 “우리가 과거란 말이냐”며 격앙된 분위기를 보였다. 김 의원 측은 “‘과거’가 특정인을 가리킨 게 아니라 돈 선거와 공천권 전횡 등 구태 정치를 의미하는 건데, 과민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일축했지만, 서 의원 주변에서는 “만약 우리가 ‘의리냐, 배신이냐’를 전면에 내세우면 (김 의원 측은) 좋겠나”라는 노골적 반발이 터져나왔다.

양측은 ‘줄 세우기’ 논란을 두고도 신경전을 벌였다. 시작은 서 의원이었다. 그는 공식 출마 선언을 6월19일로 미뤄둔 채 김 의원의 출마 선언이 있은 지 이틀 후인 6월10일 국회에서 2000여 명이 참석한 대규모 토론회를 개최했다. 현역 의원만 100여 명이 오갔을 정도다. 언론에서는 이를 ‘출정식’으로 명명했다. 서 의원은 박근혜정부 지킴이를 연신 강조하며 분위기를 달궜다. 내심 불쾌한 표정이던 김 의원 측은 서 의원의 출마 선언을 이틀 앞두고 보란 듯이 현역 의원 70여 명이 참석한 대규모 만찬 회동을 가졌다. 김 의원 측은 “오래전부터 예정된 모임이었다”고 해명했지만, 당 안팎에선 서 의원을 겨냥한 김 의원의 세 과시였다는 해석이 나왔다. 서 의원은 “전형적인 줄 세우기 구태 정치”라고 날을 세웠다.

정치권에서는 친박 주류의 맏형 격인 서청원 의원과 비주류의 좌장으로 통하는 김무성 의원 간 당권 맞대결을 근래 보기 드문 ‘빅매치’로 꼽았다. 하지만 최근 당 안팎에선 “결국 둘 중 한 명은 정치적 재기가 힘든 ‘데스 매치’로 가고 있다”(새누리당 한 수도권 재선의원)는 얘기가 나온다.

앞서던 김무성, 서청원 맹추격으로 혼전

이 같은 전망은 두 사람의 이력과 정치 스타일 때문에 나온다. 서청원 의원과 김무성 의원 모두 김영삼(YS) 전 대통령 밑에서 정치를 시작했다. 상도동계 선후배인 셈이다. 게다가 보스 기질도 닮았다. 새누리당 수도권의 한 중진 의원은 “두 사람 모두 다른 사람 밑에서 최고위원직을 성실히 수행할 성격이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청원-김무성 맞대결 구도에서 김 의원이 다소 앞서 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였다. 김 의원은 지난해 4월 재보선으로 국회에 재입성한 이후 꾸준히 밑바닥 당심을 다져온 반면 서 의원의 당권 플랜은 올해 초에야 가동됐다. 한때 친박계 좌장이었던 김 의원은 계파를 아울러 폭넓은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데 비해 서 의원은 ‘친박계의 맏형’이라는 이미지가 강해 표의 확장성에서 상대적으로 한계가 있었다. 차기 총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초·재선 의원들에게도 김 의원이 더 매력적인 카드일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김 의원 우위 구도에 변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6·4 지방선거가 하나의 계기였고,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의 거취를 둘러싼 논란도 마찬가지다. 지방선거에서 두 사람은 나란히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지만, 서 의원은 결과적으로 수도권 2곳(인천·경기)의 승리를 일궈냄으로써 부산 신승을 이끌어낸 김 의원보다 후한 평가를 받았다. 게다가 이번 지방선거를 ‘박근혜 지키기’로 치러냄에 따라 친박계의 대표 선수로 나선 서 의원이 상대적으로 더 부각됐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특히 문창극 후보자의 거취 논란 과정에서 서 의원이 ‘정치 9단’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여론이 악화일로인데도 박 대통령의 해외 순방으로 여권 전체가 갈피를 못 잡는 와중에 자진 사퇴를 촉구하고 나서면서 난제 해결의 물꼬를 텄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도 문 후보자 인사 청문 요청안의 국회 제출 시점을 순방 이후로 늦추면서 그의 정치력이 빛을 발했다. 어정쩡한 스탠스를 취하던 김 의원도 뒤늦게 자진 사퇴 촉구 대열에 합류했지만, 이미 여권 전체의 무게추가 기운 뒤였다. 앞서 문 후보자 사퇴 촉구 성명에 이름을 올린 한 비주류 초선 의원은 “정치인 서청원을 다시 보게 됐다”고 했다. 서 의원과 그리 가깝지 않은 한 영남권 중진 의원도 “똑같은 얘기라도 김 의원이 했으면 당·청 갈등으로 번졌을 것”이라며 “나도 ‘당이 주도하는 당·청 관계가 이런 것이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 ⓒ 시사저널 임준선
김문수 당권 도전 여부가 최대 변수

예측 가능한 전당대회의 남은 변수도 서 의원에게 다소 유리해 보인다. 일단 친박계의 텃밭이나 마찬가지인 대구·경북(TK)권 후보가 없는 상황이라 전체 대의원의 10%가량을 차지하는 TK 당심이 어느 쪽으로 향할지가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 당초 출마를 준비했던 김태환 의원이 같은 친박계인 홍문종 의원과의 의견 조율 끝에 불출마했다는 점에서 대의원들의 1인 2표가 서청원·홍문종 조합으로 몰릴 가능성이 거론된다. 친박계 후보는 대체로 사전 교통정리가 된 데 비해 비주류는 지역별로 표가 갈린다는 점도 김 의원이 득표력을 끌어올리는 데 다소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친박계 후보는 서 의원과 홍 의원 외에는 여성 몫인 김을동 의원뿐이다. 얼핏 봐서는 최소한 조직표가 분산될 가능성은 작다.

반면 비주류는 이인제(충남)·김영우(수도권)·김태호(경남)·김상민(비례대표) 의원 등 지역별로 나뉘어 있다. 특히 이 의원은 독자 세력화에 방점을 두고 있어 김 의원이 다른 후보들과 주고받기 식 제휴를 맺는 데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어 보인다.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나경원 전 의원 등 스타급 비주류 인사들의 전당대회 출마 여부도 주목된다. 두 사람은 여권 내에서 보기 드문 ‘전국구 스타’로 자체 경쟁력을 검증받은 인사들이다. 그런데 이들 중 누가 출마하더라도 지지층과 지역적 기반 등을 감안하면 직접적인 타격은 서 의원보다 김 의원 쪽이 더 크게 받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김 지사의 핵심 측근으로 알려진 허숭 전 경기도 대변인이 최근 김무성 의원 캠프 대변인으로 들어가면서 “김 지사가 김 의원을 지지한다는 메시지가 아니겠느냐”라는 얘기가 돌기도 했다. 하지만 허 대변인은 “김무성 캠프에서 일을 돕는 것은 내 개인적인 의지일 뿐, 김 지사와는 무관하다”며 선을 그었다. 김 지사는 서울 서대문 을 지역 재보선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이곳에는 서울시의원을 지낸 이은석 새누리당 수석부대변인 외에는 뚜렷하게 출마를 준비하며 활동하는 여당 후보가 없는 상태다.

6월12일 서청원 새누리당 의원(왼쪽)이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러시아 과학원 수여 김영삼 전 대통령 명예박사 학위 전달식’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오른쪽은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 ⓒ 연합뉴스
하지만 김 지사의 한 측근은 “김 지사는 지금 주변으로부터 7·14 전당대회 도전에 나서라는 권유를 많이 받고 있다. 재보선 출마와 당권 도전 사이에서 고심 중”이라고 전했다. 만약 김 지사가 당권 도전으로 방향을 틀 경우, 현재 ‘2강(서청원·김무성) 1중(이인제)’ 구도에 상당한 판도 변화가 예상된다. 그런 면에서 김 의원이 6월19일 “문창극 총리 후보자가 지명되기 직전, 차기 총리 후보에 김문수 지사를 추천했다”고 밝힌 것은 의미심장하다. 문 후보자가 만약 낙마할 경우, 차기 총리 후보자에 김 지사를 세워야 한다는 주문으로 들린다.

 당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이 김무성 의원을 여전이 껄끄러워하고 있다는 점을 주요 변수로 꼽기도 한다. 한 친박계 당직자는 “현실 권력이 누구를 당선시키지는 못하더라도 누구를 떨어뜨리는 건 임기 막바지라도 가능한 일”이라며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여권 내 대표적인 전략통으로 꼽히는 한 재선 의원은 “이달 초까지만 해도 ‘빅매치’라는 외부의 시각과는 달리 김 의원의 무난한 승리가 예상됐지만, 지금은 양측 간 격차가 점차 좁혀지는 추세로 봐야 한다”며 “침묵하고 있는 당심이 박 대통령을 지켜줄 당 대표와 박 대통령 없이도 자립할 수 있는 당 대표 중 누구를 선택할지 현재로선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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