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감한 중거리슛으로 벨기에 깨라
  • 브라질=서호정│축구 칼럼니스트 ()
  • 승인 2014.06.25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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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反轉)!’ 월드컵 직전에 열린 두 번의 평가전에서 국민의 기대치를 낮춰왔던(?) 홍명보호가 예선 1차전에서 확실히 달라진 경기력을 보이면서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응원 열기도 후끈 달아올랐다. 대한민국 팀의 예선 마지막 상대는 H조 최강으로 꼽히는 벨기에. 넘지 못할 산은 없고 건너지 못할 강은 없다. 공은 둥글고 결과는 차봐야 아는 법. 벨기에를 넘어보자.

2002년 한·일월드컵부터 조별리그 2차전이 끝난 후 한국이 직면한 상황은 비슷했다. 16강 진출은 확정되지 않았고 앞선 2경기의 결과는 1승 1무, 혹은 1승 1패. 브라질월드컵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1차전인 러시아와의 경기는 무승부에 그쳤지만 경기 내용에서 앞섰기에 되찾은 자신감과 안정된 수비로 알제리를 넘어 이제 마지막 경기로 향하고 있다. 2002년에는 1승 1무에서 포르투갈을 꺾고 2승 1무로 조 1위를 차지했다. 2006년 역시 1승 1무였지만 마지막에 스위스에 지며 1승 1무 1패로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2010년에는 1승 1패 상황에서 나이지리아와 비기며 조 2위로 16강에 갔다.

6월18일 오전(한국 시간)에 열린 2014 브라질월드컵 조별리그 H조 1차전 한국과 러시아의 경기에서 한국의 이근호가 후반 선제골을 넣은 뒤 이청용과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번 브라질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한국의 마지막 상대는 벨기에다. FIFA(국제축구연맹) 랭킹 11위인 벨기에는 이른바 골든 제너레이션(황금 세대)으로 불리는 역대 최강의 선수진을 앞세워 2002년 이후 12년 만에 월드컵 무대에 나섰다. 객관적인 평가는 H조의 절대강자다. 베스트 11을 구성하는 선수 모두 유럽의 빅클럽에서 뛴다. 벤치에도 뛰어난 재능의 선수들이 대기 중이다. 앞선 두 경기를 통해 확인된 벨기에의 전력은 확실히 강하다. 하지만 한국이 공략할 만한 약점도 노출했다.

알제리가 알려준 벨기에 봉쇄법

조별리그 1차전에서 알제리는 벨기에를 잡을 뻔했다. 유럽식 기술 축구를 구사하는 알제리가 벨기에와 치고받는 승부를 펼칠 것이라던 예상과 달리 전반전의 알제리는 극단적인 수비 축구를 했다. 알제리는 벨기에의 막강한 공격력을 저지하기 위해 자기 진영에 공간을 없앴다. 볼 점유율은 포기하고 잘 준비된 수비 전술로 하프라인 아래 9명의 필드 플레이어를 두고 벨기에의 공격을 저지했다. 대형과 간격을 잘 유지한 알제리의 수비를 벨기에는 뚫지 못했다. 전반에 3개의 슛을 기록하는 데 그쳤는데, 모두 페널티박스 바깥에서 기록한 중거리슛이었다.

알제리는 주장 부게라를 중심으로 센터백 2명과 풀백 중 1명이 최후방 라인으로 가담해 최소한 스리백을 이루며 역습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벨기에의 공격수들을 막아냈다. 측면 미드필더인 베날렙과 타이데르까지 내려오고 수비형 미드필더 메자니가 수비 라인 앞에 서서 7명이 페널티박스 안팎에서 바리케이드를 쳤다. 공간이 없으니 돌파해내기가 힘들고 패스도 어려웠다. 전반에 벨기에 공격이 실패한 것은 이런 알제리의 수비 전술 때문이었다.

작은 틈으로 허물고 들어오는 공격력 폭발적

할리호지치 감독의 전술은 후반 중반까지만 해도 성공하는 듯했다. 전반 23분 알제리는 페널티킥으로 선제골을 넣었다. 왼쪽 측면에서 길게 넘어온 크로스를 차단하기 위해 달리던 베르통언이 페굴리를 뒤에서 넘어뜨렸고 주심은 파울을 선언했다. 페널티킥을 얻어낸 페굴리는 직접 키커로 나섰고, 쿠르투와를 상대로 골을 성공시켰다. 이후 전반전이 끝나고 후반 20분이 지날 때까지도 알제리는 단단한 수비로 벨기에를 막아냈다. 여기까지는 알제리가 벨기에를 어떻게 봉쇄하고 공략해야 하는지를 보여준 좋은 매뉴얼이다.

벨기에의 빌모츠 감독은 1골을 지키겠다는 자세를 보이는 알제리를 상대로 극단적인 공격 전술을 구사했다. 후반 시작과 동시에 메르텐스를, 후반 13분에는 부진한 루카쿠를 대신해 오리지를 투입했다. 벨기에는4-2-3-1에서 4-1-5로 전형에 극단적 변화를 주었다. 수비와 공격 사이에 미드필더인 비첼만을 남겨놓고 공격진을 상대 진영 깊숙이 전진시켰다. 알제리의 역습에 대비해 포백 라인까지 올리진 못했지만 실질적인 플레이메이커인 아자르와 데 브라이너의 개인 전술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벤치에 앉아 있던 다양한 공격 옵션들이 빌모츠 감독이 믿는 구석이었다. 후반 20분 펠라이니의 투입이 결국 알제리 수비를 무너뜨렸다. 펠라이니는 투입된 지 5분 만에 데 브라이너의 크로스를 헤딩골로 연결했다. 수비 라인을 무너뜨리고 들어가는 움직임이 좋았고, 마크맨인 할리체와의 공중 볼 경합에서도 승리했다. 기세가 오른 벨기에는 10분 뒤 역습 상황에서 역전골을 넣었다. 초조해진 알제리가 골을 넣기 위해 라인을 끌어올리자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수비에서 알제리 공격을 막고 넘겨준 패스를 받은 아자르가 돌파를 했고, 오른쪽 측면 공간으로 오는 메르텐스를 보고 찬스를 열어줬다. 페널티박스 안으로 들어간 메르텐스는 호쾌한 슛으로 역전골을 만들었다. 알제리는 뒤늦게야 공격적인 교체를 감행했지만 벨기에의 상승세를 막을 수 없었다. 오히려 펠라이니에게 다시 한 번 헤딩골을 내줄 뻔했다.

펠라이니는 알제리의 약점으로 지목되는 두 명의 센터백과의 경합에서 이기며 알제리 수비진에 균열을 가했다. 월드컵을 앞두고 발목을 다친 여파가 있는 루카쿠는 예상보다 부진했지만 오히려 활동량이 많은 메르텐스와 오리지의 투입이 팀에는 좋은 활력소가 됐다. 아무리 밀집 수비를 하고 있어도 완벽한 완성도를 갖추지 못하면 몇 차례의 찬스는 오기 마련이다. 벨기에는 그 찬스에서의 집중력이 탁월했다.

2014 브라질월드컵 조별리그 한국과 러시아의 경기에서 박주영·구자철 등이 공격하고 있다. ⓒ 연합뉴스
펠라이니의 고공 폭격, 벤치 멤버도 대비해야

한국 입장에서 벨기에의 공격 옵션 중 가장 위협적인 것은 역시 루카쿠와 펠라이니다. 특히 펠라이니를 조심해야 한다. 루카쿠는 부상 여파로 조별리그에서 특별한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있지만 펠라이니는 다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적 후 길었던 슬럼프를 이번 월드컵에서 완전히 날려버렸다. 터프한 플레이로 상대 공격을 끊은 뒤 곧바로 시작되는 역습은 거침이 없다. 미드필더지만 스트라이커에 버금가는 움직임과 결정력을 지녀 침투에 의한 직접 공격을 많이 시도한다.

특히 194cm의 큰 키에서 나오는 고공 폭격은 한국이 전통적으로 약점을 보이는 부분이다. 한국의 두 센터백인 홍정호와 김영권이 각각 186cm, 184cm로 10cm가량 작다. 위치를 선점해 신장 차를 극복하고, 제대로 된 헤딩을 할 수 없게끔 끊임없이 견제를 해야 한다. 코너킥·프리킥과 같은 세트피스 상황에서는 197cm의 판 바이텐, 190cm의 콤파니 같은 수비수도 가세한다. 홍명보 감독으로선 대비 차원에서 과감하게 한국의 필드 플레이어 중 최장신인 196cm의 스트라이커 김신욱을 선발로 내세우거나 조기에 투입할 수도 있다.

펠라이니만 신경 쓴다고 다 해결되는 게 아니다. 메르텐스·오리지·야누자이 등 언제 교체 투입될지 모르는 벤치 멤버의 파괴력도 수준이 높다. 특히 메르텐스는 빌모츠 감독이 가장 신뢰하는 조커다. 중앙과 측면을 가리지 않고 뛰며 우리 수비를 흔들어놓을 가능성이 크다. 오리지 역시 ‘작은 루카쿠’로 통하는, 굉장한 탄력과 운동 능력을 지닌 공격수다. 후반 들어 시작되는 교체 타이밍에 계속 투입되는 선수가 몰고 올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공격을 풀어나가는 데 반드시 거쳐가는 아자르와 데 브라이너에 대한 마크의 중요성은 더 설명할 필요가 없다. 박스 안으로 침투하는 선수를 막아야 하지만 가장 근본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패스 줄기를 끊는 것이다. 드리블·패스·슛 3박자를 모두 갖춘 두 선수를 막는 것이 벨기에전의 승리 요건이다.

벨기에 수비진의 약점은 빠른 공수 전환 시 벌어지는 상황에서 위험한 대처를 한다는 것이다. 알제리전 외에 앞선 평가전에서도 상대가 강하고, 약하고를 떠나 실점하지 않을 법한 상황에서 골을 허용하는 모습을 종종 보였다. 기본적으로 지역 방어를 택한 벨기에는 상대 선수의 침투를 전방에서 끊기보다 뒤에서 기다리며 대응한다. 그럴 때 먹힐 수 있는 건 중거리 슛이다. 한국은 손흥민·기성용·구자철 등 강력한 중거리슛 능력을 갖춘 선수가 많다. 러시아전에서도 경기를 풀어나간 주 방식이었다. 벨기에전의 경우 중거리슛을 아낄 이유가 없다. 공간이 난다면 과감히 시도해야 하고, 러시아전 이근호의 골처럼 적극성이 행운까지 불러올 수 있다.

과감한 중거리슛과 돌파 아끼지 말라

돌파를 통한 세부 공격 전술도 필요하다. 벨기에 수비진이 뒷공간을 내주는 약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공을 가진 상태에서의 드리블 ,그리고 공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의 침투가 중요하다. ‘조커’인 이근호가 벨기에전에서도 후반 투입돼 러시아전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 김신욱·김보경·지동원 등도 투입되면 적극성을 갖고 공격을 펼쳐야 한다. 세트피스 전술 등 패턴 플레이도 도움이 된다. 벨기에가 장신 수비수를 대거 보유하고 있지만 그걸 역이용해 단순히 머리를 노리는 플레이가 아니라 민첩하게 움직여 상대 허를 찔러야 한다. 일반적인 예상을 깨는 플레이가 필요하다. 러시아전에서 기성용이 차는 척하면서 수비수 김영권이 때렸던 강력한 프리킥이 좋은 예다.             


 


홍명보호 ‘서자’들이 펄펄 난다 


러시아전에서 특히 눈에 띈 선수는 홍명보호의 서자라는 평가를 받던 비유럽파다. 이날 선발 라인업 11명 중 7명이 유럽파였는데 4명의 비유럽파는 그 이상의 알토란 같은 활약을 했다. 가장 눈에 띈 것은 선제골을 넣은 ‘조커’ 이근호였다. 그는 후반 11분 투입돼 자신의 장점인 종마 같은 활발한 움직임에 저돌적이고 과감한 공격을 펼쳤다. 결국 후반 23분 역습 상황에서 강력한 중거리슛을 날렸고 러시아의 골키퍼 아킨페프가 공을 놓치는 실수가 더해지며 브라질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의 첫 골을 쐈다.

군인 선수의 골은 미국월드컵 서정원 이후 20년 만

현재 군팀 상주 상무 소속인 그의 신분은 육군체육부대 병장이다. 2012년 12월에 입대했고 오는 9월 전역을 앞두고 있다. 이근호의 월급은 14만9000원, 연봉으로 따지면 178만8000원이다. 입대 전 소속팀인 울산 현대에서 매달 보조금으로 100만원을 지급하고 있지만 그렇게 따져도 1400만원이 채 안 된다. 브라질월드컵 본선 진출 32개국 736명의 선수 중 가장 적은 금액이다. 서정원(1994년)·최용수(1998년)·정경호(2006년)·김정우(2010년)에 이어 군인 신분으로 월드컵에 출전한 역대 다섯 번째 선수다. 군인 선수가 골을 넣은 것은 미국월드컵 스페인전의 서정원 이후 20년 만이다.

지난 4년간 이근호에게 월드컵은 아픔이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예선 과정에서 박주영과 함께 대표팀 공격을 이끌며 허정무 감독의 황태자로 꼽혔지만 유럽 진출을 타진하다 컨디션이 떨어져 결국 최종 엔트리에 들지 못했다. 이후 J리그에서 최고의 외국인 공격수로 활약한 이근호는 2012년 울산 현대로 이적하며 K리그로 복귀하자마자 팀의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일궈냈다. 4년 전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상무에서 군 문제를 해결하며 경기 감각을 지속적으로 유지했다. 그는 “월드컵에 대한 집념과 훈련에서 쌓은 자신감이 슛에 담기다 보니 상대 골키퍼 실수까지 나온 것 같다”는 말로 득점에 대한 기쁨을 표현했다.

불신의 아이콘 ‘갈고리’ 한국영·정성룡도 빛나

러시아전의 숨은 MVP는 수비형 미드필더 한국영이었다. 11.356㎞를 달리며 한국 선수 중 가장 많은 활동량을 보여줬다. 구자철(11.338㎞)·이청용(11.317㎞)·기성용(10.711㎞)보다 앞섰다. 포백 수비라인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았지만 파울은 단 한 번밖에 허용하지 않았다. 지능적이고 정확하게 수비를 했다는 방증이다. 전반에 세 차례 태클로 공을 빼앗아내며 한국이 기록한 5개 중 60%를 차지했다. 클리어 횟수도 12회로 팀 평균인 1.2회를 상회했다. 수비에서 한국영의 역할이 얼마나 절대적이었는지를 보여준다. 한국영도 아픔을 자산으로 삼아 빛나는 성과를 일궜다. 2년 전 런던올림픽 때 일찌감치 기성용의 짝으로 낙점 받았지만 대회 직전 왼발등 골절로 낙마했다. 김태영 코치가 ‘갈고리’라는 별명을 지어줬을 정도로 공만 낚아채는 태클이 일품이다. 2002년 김남일처럼 대표팀 중원을 지키는 제2의 진공청소기로 올라섰다.

골키퍼 정성룡도 많은 조롱과 비난을 딛고 러시아전에서 맹활약했다. 지난해 후반기 부진에 빠진 정성룡은 특히 두바이에서 가졌던 러시아와의 평가전에서 결정적 실수를 범하며 골을 내줘 골키퍼 교체가 필요하다는 여론에 흠씬 두들겨 맞았다. 월드컵을 앞두고 치른 가나전에서도 4실점을 했다. 팬들은 “게으르다” “다이빙도 안 한다”며 강한 불신을 보냈다. 하지만 러시아전에서 안정감 넘치는 플레이와 침착한 방어로 경험의 힘을 보여줬다. 비록 골을 허용하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도 정성룡은 할 것을 다 했다. 실수가 없었고 4개의 중요한 선방을 했다는 점은 최근 평가를 뒤집기에 충분했다. 반면, 러시아 아킨페프는 어이없는 실수를 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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