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설송은 백두혈통의 ‘그림자 권력’
  • 이승열│이화여대 통일학연구소 선임연구위원 ()
  • 승인 2014.06.25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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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이복누나로 정보 통로 장악…권력 핵심 엘리트 숙청과 교체에 영향력

평양 주석궁 내의 숨겨진 여인 김설송의 역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의 북한 전문가 켄 고스 미 해군 분석연구소 연구국장은 6월10일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에서 “김설송이 북한 정권 내부의 모든 정보를 간직하고, 정보의 흐름을 통제하는 조직의 정점에 있다”며 “북한 권력 내에서 김정은과 권력을 양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백두혈통으로서 김설송을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설송에 대한 정보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만큼 베일에 가려져 있다는 얘기다. 김설송은 1974년 김정일과 그의 둘째 부인 김영숙 사이에서 태어난 장녀로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정치경제학을 전공했으며, 아버지 김정일과의 관계가 돈독해 1990년대 말부터 김정일에 대한 경호 업무와 일정 관리를 총괄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또한 김설송은 2005년까지 당 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선전선동부, 서기실 등 북한 권력의 핵심 부서에서 권력의 작동 기제를 학습할 기회를 가졌으며, 그만큼 북한 권력 흐름에 정통한 인물이다. 

평양 주석궁을 배경으로 왼쪽부터 김여정·리설주·김정은. 김설송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 조선중앙통신
만약 김정일이 김설송을 20대 중반부터 지근거리에 두었다면 ‘고난의 행군’ 이후 1998년 김정일 정권 출범과 함께 김설송도 권력의 이너서클에서 김정일의 통치 행위를 보좌한 매우 중요한 인물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김설송은 컴퓨터와 IT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고 전해진다. 김정일도 김설송으로 인해 컴퓨터에 눈을 떴고, 2000년대 이후 ‘실리주의’를 주창하면서 IT 기술과 북한의 컴퓨터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

IT 분야 총괄, 북한 내 모든 정보 통제

현재 김설송은 부광무역회사를 소유하고 있는데, 이 회사의 주된 역할은 북한의 IT 분야를 총괄하는 것이라고 한다. 북한의 IT 기술이 주목받고 있는 주된 이유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해커부대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설송은 북한 권력 내부의 전산망과 인트라넷을 관리하고 이를 통해 북한 정권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정보를 통제하고 있다. 지난 2013년 1월 구글의 에릭 슈미트 회장의 평양 방문과 북한에 대한 소프트웨어 생산 공장 건설 타진은 북한의 IT 분야를 총괄하고 있는 김설송의 노력 덕분이라는 점을 방증하고 있다. 

북한 권력 내에서 김설송의 역할을 가늠하기 위해서는 김정은 이복형제들의 역할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북한 내에서 후계자가 정해지면 다른 백두혈통 3세대는 곁가지로 철저한 감시의 대상이 된다. 1974년 김정일이 후계자로 내정된 이후 김정일의 이복동생 김평일은 곁가지 청산 작업 대상으로 군복을 벗고 폴란드 대사로 사실상 추방돼 평생을 해외에서 생활했다. 그러나 일찌감치 권력 투쟁에서 밀려난 김정남을 제외하고 김정은의 또 다른 백두혈통 3세대는 김정은의 권력 기반 조성에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김정철과 김여정은 모두 고영희의 자식이며, 이복누나인 김설송과 김춘송은 여자라는 이유에서 권력 경쟁의 대상이 안 된다는 점 때문이다. 

김정은의 친형인 김정철은 공개적인 대외 활동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북한 고위급 자제 모임인 ‘봉화조’의 수장이며, 지난해 장성택 숙청 당시 호위사령부와 보위부 요원들을 지휘해 장성택의 측근인 리용하와 장수길을 체포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은 지난 3월9일 제1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투표를 하는 장면이 조선중앙TV를 통해 방영되면서 그녀의 공식 호칭이 ‘당 중앙위원회 책임일꾼’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김정일 시대 여동생 김경희가 백두혈통의 디딤돌이 되었듯이 김여정 또한 김정은 시대 백두혈통의 권력 기반을 강화하는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그러나 김정철과 김여정은 모두 김정은의 동복형제로서 그의 권력 기반에 모종의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아직 나이와 경험이 일천한 탓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에는 이르다. 그러나 김정일 시대부터 약 20년 이상 북한 권력의 중심에서 활동했던 김설송은 여러 면에서 이복형제들과 달리 김정은의 통치 행위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010년 9월 제3차 당 대표자대회에서 김정일은 김정은을 후계자로 공식화한 이후 김정은 체제를 뒷받침할 권력 엘리트 기반 또한 재정비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군부의 리영호와 당의 장성택·김경희 부부였다. 이때 김정일은 중앙당 내에서 경험이 많은 김설송에게 향후 김정은 시대 북한의 권력 엘리트를 선별해 배치하는 역할을 맡겼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김정일은 장성택에게 실질적인 권력을 맡기기보다는 후견인으로 세워놓는 데 그쳤다. 오히려 자신이 가장 신임하는 김설송으로 하여금 아직 경험이 부족한 동생 김정은의 통치 행위를 보좌하고 김정은을 정점으로 새로운 권력 핵심을 만들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김정은 엘리트 관리 숨은 손은 김설송

김정일의 이 같은 구상은 김정일 사망 이후 북한 권력 엘리트 집단의 변화에서 김설송의 역할을 발견할 수 있다. 2012년 1월 시작된 김정은 정권의 여러 가지 변화 중 가장 특이한 것이 바로 핵심 엘리트의 잦은 변동이다. 첫 번째 사건은 최룡해의 부상이다. 군부 출신이 아닌 최룡해의 부상은 장성택의 도움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이후 북한 권력의 변화를 지켜보면 오히려 장성택을 견제하기 위한 인물로서 최룡해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결과적이지만 장성택의 숙청에 가장 앞장선 이가 바로 최룡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정일 사망 직후 아직 북한 권력 내부 변화에 익숙하지 않았던 김정은이 독자적으로 최룡해에게 장성택과 리영호를 능가하는 권력을 부여했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결국 최룡해의 급부상은 장성택 등을 견제하기 위해 또 다른 백두혈통인 김설송이 기획했다고 본다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두 번째 사건은 장성택 숙청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장성택의 숙청을 주도한 것은 최룡해이며, 조직지도부의 조연준과 국가안전보위부의 김원홍이 이른바 ‘반(反)장성택 연합’의 핵심 세력이다. 그러나 장성택의 숙청과 이후 공식 무대에서 사라진 고모 김경희의 거취는 백두 가문의 운명을 가늠하는 고도의 정치적 판단이 요구되는 중대 사안이다. 오랜 경험을 가진 백두혈통의 계획이 아니면 사실상 불가능하다. 장성택 숙청을 김설송이 주도했다는 주장이 그래서 힘을 얻고 있다. 세 번째 사건은 최룡해의 실각이다. 대신 황병서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 부상했다. 사실 총정치국은 조직지도부의 지도를 받아 군을 통치하는 기구다. 따라서 총정치국장이던 최룡해를 견제하기 위해 조직지도부 군사 담당 제1부부장이 나서는 것은 북한 권력 내부의 속성을 너무나 잘 아는 치밀한 통치 행위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최룡해는 2014년 4월 총정치국장에서 해임되고 황병서가 총정치국장에 올랐다.

김설송은 북한의 권력 핵심부를 움직이는 그림자 권력이다. 2012년 1월 이후 지금까지 김정은은 핵심적인 엘리트 권력들을 숙청 혹은 교체했다. 무엇보다 이목을 끄는 것은 이제 겨우 집권 3년 차인 김정은의 엘리트 관리 능력이 과거 김정일 시대와 비교할 때 손색이 없다는 점이다. 이것은 김정은의 능력이라기보다는 북한 권력에 정통한 누군가가 김정은을 대신해 북한을 움직이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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