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퇴직연금 잘 있나요
  • 조재길│한국경제신문 기자 ()
  • 승인 2014.06.25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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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수익률 떨어져…주기적 리모델링 필수

3년 전 중소기업 부장으로 정년을 맞았던 황 아무개씨(59)는 지금은 경기도 부천의 집 근처에서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다. 월급이 110만원 남짓인 데다 공휴일이 따로 없어 고되지만 이런 자리라도 구한 걸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황씨는 “국민연금 수령액이 매달 50여 만원에 불과한데 퇴직금마저 중간정산으로 다 썼다”며 “좀 여유가 있을 때 노후 준비를 못 한 게 후회스럽다”고 말했다.

6월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흥미로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각국 남성들이 정년퇴직 후에 얼마나 더 일하는지를 따져봤더니 한국의 유효 은퇴 연령(노동시장에서 완전히 배제돼 더는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나이)이 71.1세였다. 멕시코(72.3세)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늦었다. OECD 평균은 64.2세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독 노후 생활을 위한 경제적 대비에 뒤처진다는 의미다.

ⓒ 일러스트 김세중
소득세 낮은 퇴직연금엔 꼭 가입

그렇다면 가장 효율적으로 노후를 준비할 수 있는 방법은 뭘까. ‘연금’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젊을 때 차곡차곡 적립했다가 노후에 월급처럼 찾아 쓸 수 있어서다. 연금의 종류는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 주택연금 등 다양하다. 이 중 퇴직연금은 노후 생활의 마지막 보루인 만큼 더욱 치밀한 계획이 필요하다. 퇴직연금 제도가 시행된 건 2005년이다. 올해로 10년째다. 그런데 가입률이 부진하다. 중소기업 열 곳 가운데 한두 곳(15.4%)만 가입돼 있다. 호주·영국 등 해외와 달리 퇴직연금이 각 기업의 선택 사항이어서 중소기업 근로자들이 상대적으로 노후 준비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퇴직연금이 기존 퇴직금 제도와 가장 다른 특징은 운용 방식이 다양하다는 점이다. 가입자들이 자신의 처지에 따라 맞춤식 노후 설계를 할 수 있다.

기존 제도는 ‘퇴직 전 3개월간 평균 임금×근속연수’로 퇴직금을 결정하는 단순한 구조다. 퇴직 때 한꺼번에 목돈을 받게 된다. 평균 9% 정도인 퇴직소득세를 납부하면 된다. 반면 퇴직연금은 이런 확정급여(DB)형 방식 외에 가입자들이 직접 운용 지시를 내리는 확정기여(DC)형, 직장이 없어도 가입할 수 있는 IRP(개인형 퇴직연금)형 등이 있다. 매년 일정액을 안전한 예금으로 굴리거나 실적 배당형 투자 상품에 넣고 ‘+α’ 수익을 추구할 수 있다.

퇴직연금 가입자가 은퇴할 때는 종전처럼 한꺼번에 목돈을 받거나 평생 연금 방식으로 수령하면 된다. 연금으로 탈 때 저율의 연금소득세(3.3~5.5%)만 내면 된다. 연금을 받을 때마다 세금을 내는 식이어서 ‘과세 이연’(세금 납부 지연) 효과도 볼 수 있다.

지난해 소득세법이 개정돼 DC형 가입자들이 경영 성과급을 추가 적립할 수 있게 된 것도 퇴직연금의 큰 장점이다. 성과급 적립액에 대해선 6~38%인 근로소득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근로자 퇴직급여 보장법 개정으로 지난해 7월부터 DC 및 IRP형의 운용·자산관리 수수료를 기업이 내게 된 점도 가입자 입장에선 호재다. 추가 적립액에 대한 수수료만 가입자가 부담하는 식이다.

기존 퇴직금 제도에 비해 퇴직연금의 장점이 많은 만큼 아직 퇴직연금 제도를 도입하지 않은 기업의 근로자라면 회사 측에 도입을 요청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제도 자체를 잘 몰라서 도입을 미루는 사업장도 꽤 많아서다.

DC형 가입자는 주기적 성과 점검

퇴직연금에 가입돼 있다면 노후 대비의 첫발은 뗀 셈이다. 그런데 이게 전부가 아니다. 저금리가 계속되면서 퇴직연금 수익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어서다. 퇴직연금의 세 종류, 즉 DB형·DC형·IRP형 중에서 DB형은 퇴직 후 받을 급여액이 미리 확정되는 방식이다. 퇴직 땐 평균 임금에 근속연수를 곱해 지급액을 책정한다. 퇴직연금을 굴려 수익이 나면 자신이 다니는 회사가 가져가고 만약 손실을 보더라도 회사가 전액 책임지는 구조다. 퇴직 직전 3개월간의 평균 임금이 퇴직연금 산정 때 가장 중요한 요소다. 다만 DB형을 도입한 회사라도 퇴직연금을 책임지는 재무 담당자라면 평소 수익률 관리를 해야 한다.

문제는 DC형이나 IRP형 가입자다. 외부 금융사의 운용 수익에 따라 퇴직금 적립액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회사의 임금 상승률이 워낙 낮아 스스로 DC형에 가입했거나 회사에서 DC형 가입을 유도했다면 직접 퇴직연금 포트폴리오를 짜야 한다. 편입 상품의 수익률이 쌓여 은퇴 후 생활비의 많고 적음을 좌우하는 식이다. 그런데 요즘 퇴직연금 수익률이 뚝 떨어졌다. 저금리가 계속되면서 금융회사들이 더 이상 과거만큼 치열한 수익률 경쟁에 나서지 않고 있어서다.

퇴직연금 적립금을 가장 많이 운용하는 삼성생명의 원리금 보장 상품 수익률은 올 1분기 0.8%에 불과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1.13%)보다 0.33%포인트 하락했다. 신한은행(0.79%)·우리은행(0.78%)·국민은행(0.77%)·HMC투자증권(0.84%) 등 다른 대형 퇴직연금 사업자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연 환산 이율로 따져 3% 안팎에 불과한 ‘쥐꼬리’ 금리만 주고 있을 뿐이다.

원리금을 보장하지 않는 상품에선 아예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한 곳도 적지 않았다.

DC형 퇴직연금에 가입한 후 사업자(금융회사)를 고를 때 우선적으로 따져봐야 할 부분은 과거 성과다. 수년간 괜찮은 수익률을 기록했던 금융회사가 이 같은 기조를 이어나갈 가능성이 크다. DC형 퇴직연금 사업자 중에서 실적 배당형 성과가 우수한 업권은 증권사다. 주식·채권 등으로 굴려 은행 예금 금리보다 높은 수익을 실현했다. 지난해 실적만 놓고 보면 신영증권이 6.0%로 가장 높았다. 대신증권·우리투자증권·하이투자증권·한국투자증권·교보생명·IBK연금보험·ING생명보험이 한 해 동안 4.1~5.2%를 기록했다.

DC형이나 IRP형 퇴직연금 가입자 입장에서 금융회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다만 근로자가 다니는 회사와 퇴직연금 사업자 계약을 맺고 있어야 한다. 예컨대 A기업 직원이 우리은행의 퇴직연금 관리가 시원치 않다고 생각한다면 국민은행이나 교보생명으로 바꿀 수 있다는 얘기다. 한 기업당 퇴직연금 사업자를 5곳 이상 선정해놓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DC형 퇴직연금의 수익률을 좌우하는 건 삼성생명이나 우리은행과 같은 사업자가 아니다. 이들 금융회사가 추천하는 상품이 관건이다. 은행·보험사·증권사 등 퇴직연금 사업자마다 예금과 같은 원리금 보장 상품과 채권 등 안정형 상품, 주식 등 고위험 상품을 모두 갖고 있다. 선택은 오로지 퇴직연금 가입자의 몫이다. 사업자를 잘 고르는 것보다 각 사업자의 금융상품을 바탕으로 포트폴리오를 제대로 짜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DC형 퇴직연금 가입자는 주기적으로 수익률을 점검해야 한다. 예컨대 특정 펀드의 수익률이 지나치게 떨어졌다면 안정적인 성과를 내온 펀드로 교체하는 식이다. DC형 퇴직연금에서 주식 등 위험 상품을 담을 수 있는 한도는 40%로 제한돼 있다. 나이가 젊다면 위험 상품 비중을 높이고 은퇴가 가깝다면 이 비중을 낮출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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