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비싼 자동차가 100만원짜리 스마트폰보다 못해?
  • 김진령 (jy@sisapress.com)
  • 승인 2014.06.25 13:4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내 자동차업계, 안전 이유로 스마트카 무관심 BMW·벤츠 등은 개발 박차

‘스마트카’라는 말이 그리 어색하지 않게 됐다. IT업계에서는 스마트폰, 스마트TV에 이어 자동차를 차세대 ‘스마트’의 주인공으로 꼽고 있다. 관련 업계도 분주하다.

하지만 미디어에서 ‘스마트카’ ‘무인 자동차’ ‘커넥티드 카’라고 하며 관심을 보이는데도 정작 주변에서 그 실체를 보기가 쉽지 않다. 왜 스마트카는 한국 자동차 소비자들에겐 먼 이야기일까.

스마트카와 관련해 최근 가장 많이 들리는 이야기는 ‘테슬라’다. 인터넷 결제 서비스인 ‘페이팔’을 만들어 큰 부자가 된 엘론 머스크는 미래 교통수단으로 꼽히는 전기차를 만들었다. 그는 단순히 엔진과 변속기 등 구동계만 전기로 바꾼 것이 아니라 운전하는 환경 자체를 새로 꾸몄다. 가장 큰 변화는 잡다한 버튼과 조작계를 없애고 대신 그 자리를 채운 큼직한 디스플레이다.

이 디스플레이는 상시 3G 네트워크로 통신망에 물려 있다. 내비게이션은 구글 지도를 쓰고, 음악은 스트리밍으로 듣는다. 차량 상태는 모두 이 디스플레이에 보기 좋게 표시되고, 스마트폰으로 어디에서든 차량을 제어할 수 있다. 차 안의 태블릿인 셈이다.

(왼쪽)테슬라 내부 ⓒ 시사저널 자료사진, ⓒ 테슬라 모터스 제공
태블릿 달린 모터인가, 모터 달린 태블릿인가

테슬라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테슬라는 차를 만드는 회사가 아니다. 이 회사가 자동차업계에 뛰어들 수 있었던 건 전기차 플랫폼 때문이다. 전기차의 주를 이루는 모터·배터리·전자제어장치는 이미 대중화된 기술이다. 완성도에 차이는 있지만 사려고 하면 어디서든 구입할 수 있는 부품이다. 앞으로 자동차는 점점 더 플랫폼화될 것이다.

차별화할 수 있는 요소는 차 안에서의 경험을 어떻게 바꿀 것이냐의 UX(유저 경험) 관점이다. 전기차의 성능은 현재 시판되는 내연기관 차량에 육박할 것이고, 결과적으로 경험이 소비자의 선택을 가를 가능성이 크다. 그 중심에 IT가 있다.

현재 스마트카에 대한 기술들은 크게 둘로 나눠볼 수 있다. 하나는 자동차업계가 접근하는 IT, 다른 하나는 IT업계가 접근하는 자동차다.

전자의 대표적인 예가 BMW다. BMW는 이 분야에서 상당히 열심히 움직이고 있다. BMW는 차량 내 인포테인먼트 시스템(IVI)과 관련된 기술을 전문으로 다루는 제니비(GENIVI)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데, 이 안에서는 차량에 쓰이는 IT에 필요한 기술을 자유롭게 나누고 여러 기술이 논의된다. 거의 모든 자동차회사와 IT 관련 업체, 차량용 액세서리업체가 모여 기술을 공유하고 있는데 회원사끼리는 오픈소스로 공개된 기술을 조건 없이 나눌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이를 통해 새로운 기술을 더 빨리 차량에 공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BMW는 자체적으로도 자동차 IT에 대해 문을 열고 있다. BMW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인 아이드라이브(iDrive)는 스마트폰을 연결해 운전과 관련된 애플리케이션(앱)을 실행할 수 있도록 제한적으로 시스템을 열어놓았다. 안전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는 기능들에 대해서는 아예 API(응용 프로그램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를 만들어 앱 개발사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과 차량의 일부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놓고 앱 개발사의 참여를 유도한다.

애플은 요즘 자동차 관련 모터쇼에 단골로 얼굴을 내밀고 있다. ‘iOS 인 더 카(iOS in the Car)’ 때문이다. 말 그대로 차 안에서 iOS(애플의 아이폰과 아이팟 터치, 아이패드에 내장돼 있는 모바일 운영체계)를 쓰는 기술을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차량에 직접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에 쓰는 iOS를 설치한 건 아니다. 원래 쓰던 아이폰의 주요 앱 화면을 자동차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 띄워주는 기술이라고 보면 된다.

모든 앱이 그대로 화면에 뜨는 건 아니고 차량에서 안전을 해치지 않고 쓸 수 있는 기능들이 들어간다. 내비게이션·음악·스트리밍·전화 등 눈으로 보는 앱보다 귀로 듣는 쪽의 앱, 그리고 기존 자동차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 있는 기능들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각 역할을 스마트폰에서 처리하고 차량의 디스플레이는 모니터처럼 쓰는 것이다.

벤츠, 차에 앱 설치 허용

어느 쪽이 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 양쪽에서 꽤 부지런히 서로에게 접근하고 있는 것이 현재 상황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메르세데스 벤츠다. 벤츠는 올 초 모터쇼에서 QNX의 운영체계를 올린 IVI 시스템을 발표했다. IVI 시스템은 스마트카의 기술적인 진보를 보여준다. 

벤츠는 앱 설치를 허용했다. 이는 사실 벤츠 IVI에 쓰인 QNX의 운영체계가 안드로이드 앱을 설치할 수 있다는 것과 관련이 있지만 완성차업체가 이를 막으려면 충분히 막을 수 있다. 하지만 벤츠는 이를 적절하게 활용했다. 올 CES2014에 등장했던 벤츠의 CLA45 AMG는 세 가지 내비게이션 앱을 쓸 수 있도록 했다. 노키아의 히어 그리고 아이신 AW, 코텔 등의 지도를 운전자가 직접 고른다. 앱을 설치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자동차 시장이 세계적으로 확장되는데 직접 만드는 지도 혹은 세계적으로 계약한 한두 업체의 지도만으로는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없다. 국내에서 한창 규모를 넓혀가는 수입차 시장에서도 소비자들의 가장 큰 불만은 지도다. 이를 국내 이용자가 T맵이나 아틀란, 맵피 등 입맛에 맞는 앱으로 골라 쓸 수 있도록 하면 업데이트나 비용 문제가 대부분 해결되고 품질도 좋아지게 된다. 이는 꼭 내비게이션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기능으로 확장해볼 수 있다.

이렇게 좋은데 왜 자동차업계, 특히 국내 업체는 앱을 설치하고 스마트폰을 연결하는 데 인색할까. 왜 안드로이드를 활용하려는 노력이 더딜까.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이유는 ‘안전’이다. 자동차에 들어가는 모든 새 기술 도입에서 첫 번째 조건은 안전이다. 당연하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도 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면 채택하지 않는 것이 옳다. 그래서 최신 기술은 검증에 검증을 거듭한다. 보통 업계는 5년을 꼽는다. 지금 자동차에 적용된 기술 대부분은 관련 업체가 5년 전에 개발한 기술이라는 것이다. 그나마 스마트폰 등장 이후 소비자들의 요구 때문에 3년 정도로 줄어들긴 했지만 3개월이면 새 기술이 나오는 IT 문화에 익숙해진 소비자가 3년 전 기술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일반인 사이에선 멸종된 윈도 CE가 자동차업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운영체계라면 말 다한 것 아닌가.

사실 기술 도입 속도는 더 빠르게 할 수도 있다. IVI가 자동차 주행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될까. IVI가 주행과 관련된 자동차 전자제어장치(ECU)를 건드리는 것도 아니다. 차라리 느린 내비게이션 업데이트가 운전자를 위험한 곳으로 이끌 가능성이 훨씬 크다.

BMW 528i에 적용된 애플의 카플레이(왼쪽)와 애플의 카플레이가 적용된 현대 쏘나타. ⓒ 시사저널 자료사진
자동차 제조사가 IT 기술 적용을 보수적으로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주도권과 직결된다. 완성차업체는 자동차에 적용된 모든 기술의 주도권을 자신들이 갖길 원한다. 오디오나 내비게이션뿐 아니라 소모품 액세서리도 마찬가지다. 국내 시장의 절대 강자인 현대·기아차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현대·기아차의 최근 가장 큰 관심은 독일차 수준의 주행 성능과 일본차와 겨룰 만한 가격에 더 쏠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정말 안전 때문에 머뭇거리는 걸까

그렇다 보니 IT 관련 기술은 상대적으로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그 결과는 상대적으로 만족스럽지 못한 수준의 IVI가 장착되고 마케팅 포인트도 되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현대·기아차가 국내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는 새 기술을 빨리 꺼내놓지 않아도 된다. 국산차 소비자 대다수가 새 기술을 접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천만 원 하는 자동차가 100만원짜리 스마트폰보다 IT 면에서 떨어져야 할 이유는 없다. 헤드업 디스플레이(HUD)처럼 국내 기업이 충분히 준비되지 않으면 ‘안전’을 이유로 기술 도입을 법률적으로 제한하는 국내법도 국내 시장을 스마트카 사각지대로 만드는 공범이다.

우스갯소리로 ‘국내 자동차업계에 IT 도입이 늦어지는 이유가 결정권을 갖고 있는 경영자들이 모두 앞자리가 아니라 뒷자리에 앉아 있어 시대가 변하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자동차 그 자체의 기술력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특히 통신망, IT, 서비스 등이 세계에서 최고 수준으로 발달한 우리나라에서 관련 기술을 빠르게 차량에 적용하는 건 상대적으로 쉽다. 삼성과 LG는 꾸준히 자동차와 관련된 기술들을 개발하고 있고 통신사도 네트워크로 차량을 제어하는 기술을 연구 중이다.

빗장을 걸어잠근다고 소비자가 새 기술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스마트폰 시대 초기 아이폰에 대해 국내 시장을 걸어잠갔다가 삼성과 LG가 몇 년 동안 생사의 고비를 헤맨 게 불과 몇 년 전 일이다. 싸서 샀다고 해도 어떤 게 좋은지는 분명히 아는 것이 시장이다. 당장 테슬라가 전기차 혜택을 등에 업고 국내에 들어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를 일이다. 국산차업계는 연비 좋은 디젤 엔진 이슈에 손을 놓고 있다가 안방을 내주고 있기도 하다. 분명한 건 도태되는 속도를 늦출 것인지, 앞서나갈 기회를 잡을 것인지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