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 두둑한 테러단, 용병을 유혹하다
  • 강성운│독일 통신원 ()
  • 승인 2014.06.25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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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테러조직 ISIL, 이라크 30% 장악…수도 바그다드로 진격

유럽의회 선거 개표를 하루 앞둔 지난 5월24일 오후 3시27분. 벨기에 브뤼셀의 유대인 박물관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갑자기 잽싼 몸놀림으로 문을 밀어젖히더니 가방에서 총기를 꺼내 쏘아대기 시작했다.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남자는 침착하게 가방에 다시 총기를 챙겨 넣고 도망쳤다. 이 총격 사건으로 이스라엘에서 온 관광객 두 명과 프랑스인 한 명, 박물관 직원 한 명 등 모두 네 명이 사망했다. 알려지지 않은 범인의 정체와 범행 동기를 두고 로이터통신은 반(反)유대주의자의 소행일 것이라는 추측을 내놓았다. 

사건이 발생한 지 여드레 만인 지난 6월1일, 유대인 박물관 총격 사건의 용의자 메디 네무시가 우연히 검거되었다. 용의자 네무시는 추가 범행을 저지르기 전에 다행히 체포되었지만, 유럽 사회의 걱정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네무시가 2012년 12월부터 1년간 이슬람 무장단체인 ‘누스라 전선’과 극단 수니파 무장단체인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ISIL)’의 일원으로 시리아 내전에 참전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6월14일 ISIL 반군이 티크리트 지역을 점령한 후 포로로 붙잡힌 이라크 정부군 병사들을 끌어내고 있다. ⓒ AP 연합
시리아 내전을 틈타 빠르게 확산 중인 이슬람 극단주의가 유럽에까지 테러의 손길을 뻗치고 있다. 이슬람 극단주의에 경도돼 내전이 벌어지는 시리아로 건너갔다가 무장 테러리스트가 되어 돌아오는 유럽인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네무시는 프랑스 국적자로 2004년부터 무면허 운전, 모욕, 슈퍼마켓 습격 등의 범죄를 저질러 감옥을 들락거렸는데 수감 생활 중에 이슬람 극단주의를 접했다. 그는 2012년 말 출옥 직후 시리아로 건너갔다가 올해 3월  테러리스트가 되어 돌아왔다.

네무시가 체포된 지 하루 뒤인 지난 6월2일, 미국 뉴욕에 소재한 안보 컨설팅업체 사우펀그룹이 발표한 ‘시리아의 외국인 용병’이라는 제목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지금까지 시리아 내전에 뛰어든 외국인 용병은 모두 1만2000명가량인데, 이 중 3000여 명이 유럽·북미·호주·뉴질랜드 등 비(非)이슬람 문화권 국가 출신이다. 이 보고서는 이들 국가가 시리아에서 돌아온 이들 중 극히 일부만을 파악하고 있으며, 그 수는 비록 적을지라도 이슬람 무장단체가 이들과 네트워크를 유지하는 데 성공할 경우 전 세계적으로 지금보다 더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러한 경고가 빈말이 아니라는 것은 최근 뉴스를 보면 알 수 있다. 독일연방경찰청은 6월15일 베를린 테겔 공항에서 ISIL의 일원인 프랑스·알제리 국적의 31세 남성을 체포했다고 발표했다. 시리아 내전에 가담한 이 남성은 총상을 입은 모습을 과시하는 사진을 여러 차례 인터넷에 올리고, 프랑스로 돌아갈 것이라는 메시지를 남겨 당국의 눈에 띄었다. 하루 뒤인 6월16일에는 스페인 경찰청이 마드리드에서 여덟 명의 ISIL 인력 조달책을 검거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관계 당국의 감시망에 포착되는 귀환자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독일의 온라인 뉴스 사이트 ‘슈피겔 온라인’은 2012년 3월 프랑스 툴루즈의 낙하산부대와 유대인 학교 총격 사건을 벌인 모하메드 메라, 이듬해인 2013년 4월 미국 보스턴 마라톤대회에서 폭탄 테러를 자행한 차르나예프 형제, 이번에 총격 사건을 저지른 메디 네무시 등 ‘아마추어’ 테러리스트들에 대해 “이들은 모두 단독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범행을 방지하기가 어렵다”고 분석했다.

관광객으로 갔다가 테러리스트 되기도

더욱 우려되는 것은 이슬람 무장단체에 합류하는 이들의 가파른 증가세다. 지난 4년간 시리아행을 택한 유럽인의 숫자는 과거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 당시 해당 지역으로 건너간 사람 숫자를 다 합친 것보다도 많다. 15~17세 청소년들까지 시리아로 갈 정도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연령이 낮아진 것도 새로운 현상이다. 사우펀그룹 보고서를 작성한 리차드 배렛은 그 배경으로 페이스북·트위터 등 사회관계망 서비스(SNS)를 지목했다. 이슬람 무장단체들이 특히 시리아 내전에 감정적으로 동조하는 청소년층을 집중 타깃으로 삼고 “억압받는 이슬람교도들을 도와달라” “지하드 전사가 되어 이슬람교를 위한 성전에 참여하라”는 메시지를 전송하고 있다는 것이다. 배렛은 “이들은 전쟁 뉴스를 전통적 매체를 통해 얻는 대신 자신들이 직접 선택한 거품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외부의 모든 것으로부터 격리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주변 사람들의 눈에는 평소 시리아나 이슬람교와 개인적으로 연관이 없던 청소년들이 어느 날 갑자기 이슬람교로 개종한 후 ‘지하디스트’가 되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지난 4월 편지 한 장만 남기고 돌연 시리아로 떠난 오스트리아의 두 10대 소녀(시사저널 1281호 ‘10대 소녀들 전사 되어 총을 들다’ 기사 참조)의 가족들 역시 이들의 ‘변신’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시리아로 건너간 유럽 용병들은 다시 현지에서 SNS를 통해 자신들의 활약상을 공유하고 ‘시리아로 넘어오라’고 유혹의 손길을 보낸다. 친밀감을 불러일으키고 신뢰를 얻기 위해 군복 차림에 고양이를 품에 안고 찍은 사진을 올리는 등 ‘이미지 관리’도 철저히 한다. 배렛은 “잔인한 학살 장면이 올라오기도 하지만 용병들은 SNS를 통해 주로 시리아에서는 전우애가 있고 의욕이 충만한 생활을 할 수 있으며 목적이 분명한 활동을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분석했다. 그래서 삶의 목표가 불분명하거나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청소년들이 특히 쉽게 유혹에 넘어간다는 것이다.

시리아 내전에 많은 외국인 용병을 끌어들인 것으로 알려진 ISIL은 최근 이라크에서 파죽지세로 수도 바그다드를 향해 진격하면서 중동 지역의 질서를 뿌리째 뒤흔들고 있다. 수니파를 주축으로 이뤄진 이 무장단체는 지난 6월10일 이라크 제2의 도시 모술을 장악한 데 이어 사담 후세인의 고향인 티크리트 등 정부 관할 지역의 30%를 손아귀에 넣으면서 이라크를 내전 상태로 몰아가는 중이다. 특히 모술에서는 중앙은행을 습격해 미화 4억2500만 달러에 상당하는 현금을 탈취하고 블랙호크 헬기 6대 등 미군이 남겨둔 무기까지 손에 넣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테러 조직”이 되었다. 중동 지역 분석가인 브라운 모시스는 “ISIL은 이 돈으로 1년간 6만명의 무장 전사에게 월 600달러의 월급을 줄 수도 있다”고 사태의 심각성을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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