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공화국 법 위반한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 김원식│미국 통신원 ()
  • 승인 2014.06.25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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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외교 관계자, 시사저널과 단독 통화 미국 시민권자 3명 억류 입장 밝혀

“56세의 제프리 파울은 14년 동안 아내 탄야의 사랑하는 남편이자, 12세·10세·9세인 세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그는 여행을 좋아했고 다른 문화와 새로운 장소를 경험하는 모험을 사랑했습니다. 평양 주재 스웨덴 대사관 측의 지속적인 석방 노력과 어려운 시기에 세계 각지에서 보내준 성원에 감사합니다. 아내 탄야와 그의 아이들은 제프리를 무척 그리워하고 있으며 그가 집으로 돌아오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6월9일 미국 오하이오 주 남서부에 있는 인구 2만명의 소도시 마이애미즈버그 시에서 북한에 억류된 것으로 알려진 제프리 에드워드 파울 가족의 담당 변호사인 팀 테페는 담담하게 짧은 성명을 읽어나갔다. 그는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옆에 조용히 앉아 자리를 지킨 러시아 출신 파울의 부인 탄야와 함께 자리를 떠났다. 해당 성명서와 파울의 가족사진을 기자에게 이메일로 전달한 테페 변호사는 전화 인터뷰에서도 말을 아꼈다. 그는 “북한에 있는 파울 씨의 안위가 걱정돼 그러는 것인가”란 질문에 “성명서 이외에는 다른 어떤 입장도 밝힐 수 없다”고 답변했다.

북한에 최근 억류된 미국인 제프리 에드워드 파울의 변호인 팀 테페(왼쪽)가 6월9일(현지 시간) 미국 오하이오 주 마이애미즈버그에서 파울은 전도가 아니라 관광 목적으로 북한에 간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오른쪽은 파울의 아내 탄야 파울. ⓒ AP 연합
미국 국무부 “누구도 북한 여행하지 말라”

미국 국무부가 지난 5월21일 갑자기 북한 여행 경보를 강화하면서 미국인이 북한에 또 억류된 것 아닌가 하는 소문이 돌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일본 교도통신이 6월5일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북조선(북한)이 5월 중순 무렵, 관광차 방북한 미국인 남성을 출국 직전에 억류했던 사실이 5일 밝혀졌다”고 특종 보도했다. 이에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도 다음 날 “반(反)공화국 적대 행위를 감행한 미국 공민을 억류했다”며 “지난 4월29일 관광객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들어온 미국 공민 제프레이 에드워드 포울레는 체류 기간 관광 목적에 맞지 않게 공화국 법을 위반한 행위를 감행했다”고 보도함으로써 또 한 명의 미국인이 북한에 억류되었다는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이미 2012년 11월 체포돼 1년6개월째 억류 중인 케네스 배(한국명 배준호)씨가 종교 활동을 통한 반공화국 적대 혐의 적용으로 15년형을 선고받고 북한에 억류 중이다. 뒤이어 북한은 지난 4월 미국인 관광객 매튜 토드 밀러가 입국 과정에서 “북한이 발급한 관광증을 찢어버리고 ‘망명을 하겠다’며 고성을 지르는 등 법질서를 위반했다”며 억류 사실을 발표하기도 했다. 따라서 모두 3명의 미국 시민권자가 현재 북한에 억류되는 전무후무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2009년 북한에 억류된 두 여기자의 석방을 위해 클린턴 전 대통령이 직접 북한을 방문해 석방을 성사시킨 바 있다. 하지만 3명의 미국인이 다시 억류된 지금 미국은 진퇴양난에 빠진 모습이다. 6월6일 마리 하프 미국 국무부 부대변인은 기자 브리핑에서 “(이미) 우리는 여행 경보를 내렸다”며 “광범위하게 말한다면, (북한을 방문하는) 여행객의 일원이라면 보호받지 못하며 체포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누구도 북한을 여행하지 말라”고 강력히 권고하고 나섰다. 지금의 상황 악화에 따른 답답함이 그대로 묻어났다.

하지만 무작정 미국 정부가 여행의 자유를 막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만큼 미국에서는 미국 시민권자의 북한 여행이 자유롭게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 동부 뉴저지에서 북한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는 ‘우리투어’의 존 덴출러 울프 책임자(COO)는 “이번에 발생한 추가적인 억류 사태가 북한 여행에 영향을 미치지 않겠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전혀 그럴 가능성은 없다. 여행 수칙만 잘 준수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는 “파울 씨의 경우는 우리 여행사를 통해 북한에 간 것이 아니다”며 “지난 수년 동안 해마다 500~1000명의 미국인을 북한에 보냈지만 아무 문제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4월 우리 여행사를 통했던 밀러 씨의 경우, 북한 도착 즉시 가이드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독자적으로 행동해 그렇게 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그러면 방북 시 구체적으로 무슨 수칙들을 지켜야 하는가”라는 기자의 물음에 그는 “단체 여행 등에서 호텔을 무단으로 이탈한다든지 종교 서적 등을 공공장소에 무단으로 놔두는 행위 등이 포함될 수 있다”고 밝혔다. 아직 파울 씨의 북한 억류 이유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시점에서, 교도통신은 “북한 소식통은 이 남성이 호텔에 성경을 남겨둔 채 출국하려고 했다는 것을 억류 이유로 제시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제프리 에드워드 파울(왼쪽에서 두 번째)의 가족. ⓒ 김원식 제공
미국인 억류 문제 주요 이슈로 등장

하지만 최근 경색된 북·미 관계를 풀기 위해 북한이 이번 억류 사건을 대미 협상용 카드로 활용한다는 추측도 제기되고 있다. 북한이 더욱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일반 관광객을 억류해 미국과 협상할 명분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유엔 주재 북한 대표부 관계자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북한이 대미 협상 명분으로 관광객을 억류한다는 주장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그는 “어느 나라에나 자국에 맞는 법이 있고 그 법은 존중되어야 한다”며 “관광 목적에 맞지 않게 우리 공화국 법을 위반해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그는 “1 년에도 수천 명의 외국인이 아무 문제 없이 북한을 잘 관광하고 있다”며 “이런 의미에서 억류된 사람은 공화국 법을 위반한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북한은 최근 중국인 관광객 유치 등 관광 사업을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북한 입장에서도 이번 억류 사태가 관광 붐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분위기였다.

3명의 자국민이 억류된 상황에서 무작정 앉아서 기다릴 수만도 없는 것이 미국 정부가 처한 상황이다. 하지만 2년 넘게 북·미 간에는 공식 대화 채널이 단절되는 등 관계가 극도로 악화되어 있다. 또한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나 이라크 내전 등으로 인해 한반도 문제가 오바마 행정부에서 뒷전으로 밀려나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워싱턴 지한파들에 의해 계속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지금의 미국 시민 억류 사태가 북·미 대화 재개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될지, 아니면 양국 관계를 더욱 악화시킬지는 가변적이다. 다만, 6자회담이 중단된 상태에서 만약 북·미 간 대화가 진행된다면 북한 내 미국인 억류 문제가 주요 이슈로 등장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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