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표는 날 찍고, 한 표는 ○○○를 찍어라”
  • 양정대│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4.07.02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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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권 경쟁 벌이는 김무성-서청원 ‘1인 2표제’ 치열한 수 싸움

돌고 돌아 결국 정홍원 국무총리가 유임됐다. 정 총리는 두 번이나 쌌던 짐을 다시 풀었고,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은 인사 실패에 따른 책임론에 직면해 있다. 여권의 세 축 가운데, 정부·청와대의 상황은 상처투성이다. 그래서 나머지 한 축인 새누리당의 7·14 전당대회는 더더욱 주목을 받는다. 집권 여당의 차기 대표 등 새 지도부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향후 정국은 180도로 바뀔 수 있는 탓이다.

“당헌·당규에는 선거인단 한 사람이 2명의 후보에게 투표하게 돼 있다. 따라서 2명에게 투표를 하지 않은 표는 무효로 처리해야 마땅하다. 왜 한 명한테만 투표하라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당권 경쟁에 나선 이인제 의원 캠프 핵심 관계자의 불만이다. 비판의 화살은 김무성 의원 측을 향해 있었다. 그는 “김무성 의원 캠프에서 자기들 조직에다 한 명만 찍으라고 이미 오더를 다 내렸다더라. 선거를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새누리당의 차기 지도부 입성 경쟁이 갈수록 뜨거워지는 가운데 ‘1인 2표제’를 둘러싼 신경전도 가열되고 있다. 현행 새누리당의 당규(대표최고위원 및 최고위원 선출 규정)는 ‘투표는 직접 하되 1인 1표 2인 연기명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한 장의 투표용지에서 후보자 2명을 선택하도록 한 것인데, 1순위 표와 2순위 표에는 아무런 가중치가 부여되지 않는다. 전당대회 후보자들 입장에선 어떤 식으로든 선거인단이 행사할 2표 가운데 1표를 가져올 경우 최고위원에 당선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새누리당 당권 경쟁에 나선 이인제·김무성·서청원·홍문종 의원(왼쪽 부터). ⓒ 시사저널 이종현, ⓒ 시사저널 이종현, ⓒ 시사저널 이종현, ⓒ 연합뉴스
“2표 중 1표는 박 대통령 보고 찍을 것”

1인 2표제의 ‘묘미’는 후보자 간 합종연횡을 가능케 함으로써 예상 밖의 결과가 나올 가능성을 열어놓는다는 점이다. 정치적 성향이나 계파 구도와 무관하게 순전히 ‘표’를 의식해 손을 잡는 경우까지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체로 조직 장악력이 강한 국회의원이라도 지역구 내 대의원·책임당원 모두에게 자신이 염두에 둔 후보를 선택하도록 강제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중론이다. 한 영남권 친박계 의원은 “2표 중 1표는 자율에 맡기는 게 일반적”이라고 전했다. 이인제 의원 측이 김무성 의원 캠프를 향해 날을 세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 시점에선 비주류 좌장 격인 김무성 의원이 당권에 가장 근접해 있고, 친박계 맏형인 서청원 의원이 바짝 뒤쫓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당초 ‘3강’을 주장했지만, 이인제 의원 측은 다소 뒤처져 있음을 부인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의원 측은 최소한 김 의원을 지지하는 비주류 측 선거인단의 표 가운데 일부를 가져올 수 있는 가능성이 봉쇄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은 것이다.

차기 당권을 두고 ‘빅매치’를 벌이고 있는 서청원·김무성 두 의원 측의 1인 2표제 관련 전략은 판이하게 다르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서 의원 측은 상대적으로 느긋한 반면 김 의원 측에서는 다소 긴장하는 듯한 기류가 감지된다. 이 같은 분위기에 대해 한 수도권 중진 의원은 “최소한 새누리당 전당대회에 관심을 갖고 있거나 선거인단으로 참여하는 여권 지지층이라면 2표 중 1표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준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단 전당대회 준비 과정에서 친박계와 비주류의 행보에는 적잖은 차이가 있었다. 친박계는 서청원 의원이 출마를 결심한 뒤 내부에서 출마 희망자들 사이에 어느 정도 교통정리가 진행됐다. 당초 출마가 유력해 보였던 김태환 의원이 홍문종 의원과의 사전 협의를 통해 주저앉은 게 단적인 예다. 친박계 여성 의원들 사이에서도 김을동 의원이 출마하는 것으로 사전 조정이 이뤄졌다. 하지만 비주류 측은 현실적으로 사전에 출마 후보들 사이의 협의·조정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전당대회 국면이 본격화하는 상황에서도 서청원·김무성 캠프의 접근법은 다소 차이를 보인다. 서청원 캠프는 사실상 김무성 캠프를 제외한 모든 후보 측과 손을 잡을 태세다. 서 의원의 한 측근은 “전국 어디서든 박 대통령을 보고 찍을 표가 1표는 있다는 사실이 이미 2년 전 전당대회에서 확인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실제 2012년 5월 대선을 앞두고 치러진 전당대회에서 황우여 의원은 박심(朴心)을 등에 업고 압도적 1위를 차지했는데, 당시 유효 투표 3만5000표 가운데 3만27표를 얻었다. 거의 모든 선거인이 2표 중 1표는 황 의원에게 던진 것이다.

이에 비해 김무성 캠프는 신중하다. 전반적인 여론에서 앞서 있고 당내에서도 친박·비주류를 가리지 않고 고른 지지를 받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경우에 따라선 1인 2표제가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여권 내에서 박 대통령의 영향력이 아직은 강한 상황임을 감안하면 다른 비주류 후보는 물론이고 김 의원을 지지하는 선거인단조차 1표는 서 의원 등 친박계 후보로 향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김 의원 측 관계자는 “우리의 취약점을 보완해줄 수 있는 파트너가 있어야 1인 2표제를 적극 활용할 수 있을 텐데 그게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김무성·이인제 전략적 제휴설도 제기

그렇다고 1인 2표제가 친박계에만 마냥 유리할 것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당장 친박계 내부에서조차 서청원 의원과 홍문종 의원 간 엇박자를 예상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국적으로 당원협의회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당시 사무총장이던 홍 의원이 ‘자기 사람’을 심으면서 서 의원과 곳곳에서 충돌했다는 얘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김무성·홍문종 제휴설이 끊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두 사람이 손을 맞잡을 경우 서 의원은 수도권 표 확보 전략에 비상이 걸릴 수밖에 없다.

김무성·이인제 의원이 제휴에 나설지 여부도 관전 포인트다. 전국적으로 일정한 조직 기반을 갖춘 김 의원이 충청권 맹주를 자처하는 이 의원과 손잡으면 서 의원에겐 상당한 부담일 수 있다. 김무성 캠프가 “한 명에게만 투표하라고 한 적 없다”고 손사래를 치는데도 이인제 캠프에서 거듭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두고 “먼저 손을 내민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최근 서청원 캠프와 김무성 캠프는 여론조사 조작 여부를 두고 정면충돌했다. 양측 모두 자신에게 불리한 특정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상대방 캠프의 사주 가능성을 거론하며 날카롭게 맞섰다. ‘진흙탕 싸움’이란 비난이 커지면서 양측의 신경전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지만, 당내에선 “두 사람이 이미 선을 넘었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7·14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친박계는 ‘서청원 대표’와 함께 홍문종·김을동 최고위원을 배출하겠다는 전략이다. 설령 ‘김무성 대표’가 탄생하더라도 지도부 내의 다수를 점하면 충분히 견제가 가능하다고 본다. 반면 김무성 캠프는 당 대표를 차지하는 것 못지않게 친박계 최고위원의 숫자를 최소화하는 데도 역점을 두고 있다. 당내 전략통으로 꼽히는 한 재선 의원은 “1인 2표제를 전략적으로 정교하게 잘 활용하는 쪽이 전당대회 현장에서 결국 웃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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