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사단’, 야권 심장부로 진격하다
  • 차윤주│뉴스1 기자 ()
  • 승인 2014.07.02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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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력 대권 주자로 떠오르며 계보 형성…7·30 재보선 통해 자기 사람 심기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자’에서 ‘장남’으로 신분 상승했다. 2011년 10월26일 서울시장 보궐 선거에서 무소속 후보로 당선되고 민주당에 입당했을 때 당내에서는 “집안에 서자를 들였는데 제사까지 지내줄 태세”라는 말이 나왔다. 박 시장에 대한 기대감을 표현하는 찬사였지만, 아무튼 당시 태생은 서자였다.

그랬던 박 시장이 이제 자기 입으로 새정치민주연합의 어엿한 장남을 자처한다. 박 시장은 6월15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이 자신의 장점을 깎아먹는 것 아닌가”란 질문에 “부모님이 가난해졌다고 슬퍼하기보다 장남이 돈 많이 벌어 집을 중흥하는 길이 있지 않나. 장남이 효도해야 한다”며 ‘장남 효도론’을 꺼내 들었다. 또 “서울시장을 잘해 당 지지도를 반등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6월25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014 오송 국제바이오엑스포’ D-100 성공다짐대회에서 참석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 서울시 제공
기동민 측 “박 시장 특명 받고 광주 내려간다”

6·4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한 이후 바뀐 그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박 시장은 당에 부채가 별로 없다. 2011년 범야권 단일 후보 자격은 치열한 경선을 통해 따냈다. 이번 지방선거에선 같은 당 구청장 후보를 발 벗고 지원해 양천·동작구와 같은 격전지에서 새정치연합 후보들을 당선시켰다. 7·30 재·보궐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이들은 ‘박원순 마케팅’이 한창이다. 당이 박 시장을 업고 다녀야 할 판인데, 박 시장은 기운 집안을 장남이 일으키겠다고 한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56.1%의 득표율로 압승을 거둔 박 시장은 단번에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로 떠올랐다. 박 시장은 선거가 끝난 뒤 슬로건이었던 “오로지 서울, 오로지 시민”을 입에 더 자주 올리지만, 주변에선 조심스레 3년 앞을 내다본다. 차기 대선 출마를 위한 중도 사퇴가 크게 문제가 안 될 것이란 얘기까지 나온다. 이번 지방선거 당선자의 임기는 2018년 6월, 다음 대선은 2017년 12월인데 공직선거법에 따라 선거일부터 남은 임기가 1년이 안 되면 보궐 선거가 없다. 박 시장이 보궐 선거에 따른 책임, 사회적 비용에 대한 부담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박 시장의 약점은 국회의원을 경험하지 않은 탓에 당내 기반이 약하다는 데 있다. 그래서일까. 최근 들어 심심찮게 ‘박원순 조직’이 움직이고 있다는 얘기가 많이 들린다. 이른바 ‘박원순계’가 형성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 박 시장의 핵심 측근 몇몇이 7·30 재보선 출마를 위해 뛰고 있다. 박 시장도 최근 부쩍 ‘공천 혁신’을 주문하고 있다. 재보선 출마 의사를 밝힌 측근에 대한 지원 의사를 물으면 “(당이) 공천 과정을 뭔가 혁신적으로 하지 않겠느냐”고 되묻는 식이다. 지방선거 이후 출입기자단과 가진 첫 번째 간담회 자리였던 6월18일, 기동민 전 정무부시장과 권오중 전 정무수석의 출마 얘기가 나오자 “(공천을 챙길) 그럴 만한 힘은 없다”면서도 “서울(시장 선거)에서 압도적으로 이겼다. 나와 같이 옆에서 일했다고 하면 그건 중요한 강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박 시장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현직 시장이 으레 몇 자리 행사할 수 있는 구청장과 시의원 공천에 일절 관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각 계파 간 이전투구가 최고조였던 2012년 총선 때도 한 발짝 물러나 있었다. 드러내고 자기 사람을 챙기는 일이 드문 박 시장의 스타일을 떠올려보면, 최근의 “공천 혁신” “나와 같이 일한 강점” 운운 자체가 당에 헛기침을 세게 한 것으로 해석된다. 

자타 공인 ‘박원순의 남자’로 통하는 기동민 전 부시장은 호남의 중심 광주를 노린다. 전남 장성 출신으로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나왔고, 성균관대 총학생회장을 거쳐 김대중 정부 시절 청와대 행정관을 지낸 GT(김근태)계 대표적 인사다. 박 시장 캠프 해단식이 끝나자 기 전 부시장 측은 “박 시장 특명을 받고 광주로 내려간다”고 했다. 6월23일 광주 광산 을 공식 출마 선언에선 “박 시장과 함께 새로운 대한민국의 비전을 만들라는 시대적 책무를 가슴에 안고 광주에 복귀한다”고 인연을 한껏 부각했다. 특히 이 지역에는 안철수 새정치연합 공동대표의 측근인 정기남 정책위 부의장도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안 대표 역시 광주에 공을 들이고 있어, 기 전 부시장과 정 부의장의 공천 대결이 ‘빅카드’로 떠오르고 있다.

기동민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 권오중 전 서울시 정무수석, 임종석 서울시 정무부시장 ⓒ 시사저널 이종현·권오중·기동민 제공
GT계 이어 임종석을 ‘486’ 교두보로

여야 모두 거물급이 뛰어든 서울 동작 을에선 ‘범박원순계’로 보는 금태섭 새정치연합 대변인과 강희용 서울시의원이 출격을 준비한다. 금 대변인은 안 대표의 최측근이지만 2011년 보궐 선거에서 박 시장 멘토단으로 합류했었고, 이번 재선 캠프에서 대변인을 맡기도 했다. 동작 을 출마 선언에 앞서 박 시장과 면담하며 연을 과시했다. 경선에서 겨룰 강희용 시의원도 재선 캠프 정책대변인으로 활약하며 박 시장의 신뢰를 얻은 인사다. 서울 서대문 을에 나설 채비를 했던 권오중 전 수석은 6월26일 대법원의 정두언 의원 혐의에 대한 파기환송 결정으로 당분간 절치부심하게 됐다. 2011년 재보선 때부터 박 시장을 근거리에서 보좌한 권 전 수석은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행정관을 지냈고, 옆 동네 우상호 의원(서대문 갑)과 마찬가지로 연세대 총학생회장 출신이다. 이번 7·30 재보선 도전은 좌절됐지만, 아직 의원직 유지가 확정된 것이 아닌 만큼 권 전 수석은 꾸준히 원내 진입 기회를 엿볼 생각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 내부는 단연 ‘박원순 사단’이다.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박원순 2기’를 상징할 수 있는 임종석 정무부시장이다. 서울지역 재선 의원 출신인 임 부시장은 당내 486그룹의 핵심 인사로 일찍이 박원순 후보 캠프 총괄팀장에 임명돼 중용이 예고된 인사다. 당내 기반 확대가 절실한 박 시장과 정체된 486그룹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는 해석이 당장 나왔다. 박 시장으로선 지난 1기 시정 때 GT계(기동민·김원이 등)와 시민사회계에 편중됐던 인맥이 486그룹 중심부로 넓어졌다.

다만 정치적 과실을 즐기는 데 익숙한 486그룹을 향해 박 시장 측과 원래 가까웠던 시민사회계의 곱지 않은 시선도 감지된다. 지난 캠프에서 486그룹과 함께 또 하나의 축을 이뤘던 시민사회 그룹이 ‘공적 과시용 일처리’를 못마땅해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 필요에 의해 486과 손잡았지만 박 시장의 정서적 뿌리는 시민사회 그룹에 더 가깝다는 말도 한다.

1기 시정 때의 1수석(정무)-2특보(정책·미디어) 체제는 이번 2기에서 3수석(정무·정책·미디어) 체제로 개편됐다. 1기 시절 김원이 정무보좌관(정무), 서왕진 비서실장(정책), 문호상 미디어특보(미디어)가 각 수석을 맡아 박원순 2기를 보좌한다. 재선 캠프 준비를 위해 시 정무직 중 가장 먼저 사임했던 천준호 전 기획보좌관은 비서실장으로 돌아왔다. 정무직에 더해 행정직 고위직도 호남 출신이 초강세다. 행정1·2부시장에 내정된 정효성 기획조정실장, 이건기 주택정책실장은 각각 전북 전주와 전남 장성 출신이다. 그 아래 ‘실세’ 자리인 1급 기획조정실장엔 담양이 고향인 류경기 행정국장이 내정됐다. 시 내부에선 ‘호남 편애’ ‘호피아(호남+마피아)’란 말도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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