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콘신 3인방’ 경제 컨트롤타워 접수하다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4.07.02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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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훈·최경환·안종범 당·정·청 포진…같은 시기 유학하며 경제학 박사 취득

“한여름 옷을 한겨울에 입으면 감기에 걸려 죽지 않겠나.” 권력 실세는 역시 달랐다. 말 한마디에 시장이 들썩였다. 관련 당국도 벌써부터 눈치를 보는 분위기다. 말의 힘만으로도 이 정도니 직접 행동에 나서면 그 위세가 어느 정도일지 짐작하게 한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 후보자가 현재의 부동산 정책을 ‘겨울에 여름옷 입고 있는 꼴’로 비유하며 규제 완화 입장을 내놓자, 이는 곧 박근혜정부의 정책 기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최 후보자는 “한여름이 다시 오면 옷을 바꿔 입으면 되는데, 언제 올지 모른다고 옷을 계속 입고 있어서야 되겠느냐”고 반문하며 주택담보대출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과 같은 대출 규제를 손보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 시사저널 포토·구윤성·연합뉴스
집권 여당의 3선 중진인 최 후보자는 자타가 공인하는 친박(친박근혜)계 실세 정치인이다.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후보 비서실장을 지냈고,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에는 1년 동안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맡아 정부 정책을 뒷받침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의 리더십에 의문이 제기될 때마다 새 경제팀 수장 1순위로 거론됐다. 시기가 다소 당겨진 감이 있지만 최 후보자의 내각 진출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최 후보자의 역할이 단순히 경제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 친박계 인사는 “경제라는 게 사회·문화·교육·환경·교통 등 모든 분야와 상당 부분 겹친다. 책임총리가 물 건너가면서 경제부총리의 역할이 내각 전반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총리 후보자가 잇따라 낙마하면서 결국 정홍원 총리가 유임돼 그 가능성이 더 커졌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 시사저널 포토·시사저널 박은숙·연합뉴스
원조 ‘친박’ 유승민도 위스콘신 대학 출신

최경환 후보자로서는 양쪽 어깨에 날개까지 달았다. 청와대에서는 안종범 경제수석이 자리를 꿰찼고, 당에서는 강석훈 의원이 정책위 부의장을 맡았다. 최 후보자와 안 수석 그리고 강 의원은 공통점이 많다. 친박계 내 대표적 경제통이자 미국에서 동문수학해 절친한 사이다. 이들은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 위스콘신 대학에서 유학하며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당·정·청(여당·정부·청와대) 경제 컨트롤타워가 ‘위스콘신 3인방’으로 채워진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치권 안팎에서는 ‘위스콘신 전성시대’라는 말이 나돈다. 당초 친박계에서 위스콘신 정책 라인이 부각된 데는 최 후보자와 함께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의 역할이 컸다. 유 의원은 대구 중구에서 13~14대 재선 의원을 지낸 유수호 전 의원의 차남이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그는 위스콘신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직후인 1987년 12월부터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일했다. 그러다가 2000년 2월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 추천으로 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 소장을 맡으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유 의원이 정치적으로 주목을 받은 것은 17대 국회에 입성한 이듬해인 2005년 1월 박근혜 대표 비서실장을 맡으면서다. 2007년 대선 경선 때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정책 메시지 총괄단장을 지내며 ‘원조 친박’으로 불렸다. 하지만 18대 국회가 들어선 후 활동 영역을 달리하면서 친박계 핵심으로부터 서서히 멀어졌다. 2011년 7월 전당대회에서 예상을 깨고 당 대표에 이어 2위를 차지한 이후 행보를 두고도 계파색이 옅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는 사이 친박 주류의 구심 역할은 최 후보자의 몫이 됐다. 연세대 경제학과를 나와 행정고시 22회로 공직에 입문해 경제기획원 등에서 근무한 그도 이회창 총재에게 발탁돼 정계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 상근 경제특보를 지냈고, 2007년 대선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종합상황실장을 맡았다. 당내에서 경제 정책 전문가로 입지를 다진 그는 친박계 인사임에도 이명박 대통령 인수위원회 경제2분과 간사에 이어 지식경제부장관까지 지냈다. 그러면서도 박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두터운 신임을 받아왔다. 현재 위스콘신 대학 한국 총동문회 회장을 맡고 있다.

이번에 청와대에 입성한 안종범 수석도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 정책특보를 지냈다. 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로 세제와 재정 분야 전문가인 그는 2007년 대선 경선 때 세금을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를 바로 세우자는 이른바 ‘줄푸세’ 정책을 마련하는 데 관여했다. 박 대통령의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 출신인 안 수석은 2012년 19대 국회에서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금배지’를 달았다. 그해 대선에서는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실무추진단장으로 정책·공약 개발을 총괄했다. 박근혜정부 경제 정책의 밑그림을 그린 핵심 브레인으로 꼽힌다.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 출신으로 금융 분야 전문가인 강석훈 의원은 2012년 총선에서 서울시 서초 을에 출마해 당선됐다. 그해 대선에서는 안 수석과 함께 국민행복추진위원회에서 정책·공약 개발을 맡았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도 같이 참여했다. 안 수석이 고용복지분과위원, 강 의원이 국정기획조정분과위원을 지냈다. 초선 의원인데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여당 간사까지 맡았다. 현재 위스콘신 대학 한국 총동문회 부회장으로 있다. 안 수석은 유 의원과 같은 대구, 최 후보자는 경북 경산, 강 의원은 경북 봉화가 고향으로 모두 TK(대구·경북) 인사들이다.

박근혜정부에는 이들 외에도 위스콘신 대학 출신이 상당수 포진해 있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장관과 방하남 고용노동부장관이 대표적이다. 행시 25회로 이번 개각에서 유임된 윤 장관은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부산에서 성장했지만 고향은 최경환 후보자와 같은 경북 경산이다. 퇴임을 앞두고 있는 방 장관은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남 완도가 고향인 그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고용복지분과 전문위원을 지냈다.

김재홍 산업통산자원부 1차관, 정현옥 고용노동부 차관, 정연만 환경부 차관도 위스콘신 출신이다. 행시 26회인 김재홍 차관은 행정학 석사, 행시 28회인 정현옥 차관은 노사관계학 석사, 행시 26회인 정연만 차관은 공공정책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김재홍 차관은 대구, 정현옥 차관은 서울, 정연만 차관은 경남 진주가 고향이다.

경제 관료들 위스콘신 인맥 두터워

최종구 금융감독원 수석부위원장, 김영민 특허청장, 백운찬 관세청장도 위스콘신 대학을 나왔다. 행시 25회 동기인 최 수석부위원장과 김 청장은 각각 공공정책학과 정책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최 수석부위원장은 강원도 강릉, 김 청장은 경북 상주 출신이다. 행시 24회인 백 청장도 공공정책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경남 하동이 고향이다.

위스콘신 대학 출신 고위 관료가 많은 이유는 공무원들이 학위를 취득하기에 좋은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학비와 생활비가 미국의 다른 대학에 비해 저렴해 경제적 부담이 덜하다는 강점도 있다. 이로 인해 경제 관료들 사이에서는 한때 위스콘신 대학 붐이 일기도 했다고 한다.  

새누리당 현역 정치인으로는 재선의 정문헌 의원이 정치학 학사, 고려대 교수 출신으로 19대 국회에 비례대표로 입성한 이만우 의원이 경제학 석사, 행시 22회로 울산 북구가 지역구인 박대동 의원이 공공정책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직에서 물러난 인사로는 3선 의원 출신으로 박 대통령의 초대 비서실장을 지낸 허태열 전 실장과 금융감독원 장 출신으로 이명박 정부에서 기획재정부장관을 지낸 윤증현 전 장관이 있다. 허 전 실장이 공공정책학, 윤 전 장관이 공공정책·행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위스콘신 대학 한국 총동문회 명예회장을 맡고 있는 윤 전 장관은 올해 1월25일 서울 역삼동 GS타워 아모리스홀에서 열린 위스콘신 대학 한국 총동문회 신년회에서 ‘자랑스러운 위스콘신 동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는 최 후보자와 안종범 수석, 강석훈 의원도 참석했다.

ⓒ 시사저널 포토
재계에선 허동수 회장 등 위스콘신 나와

지난 6월4일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경기도교육감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조전혁 전 새누리당 의원은 ‘위스콘 3인방’과 같은 시기에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당선돼 국회에 진출했지만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공천을 받지 못했다. 지난해까지 위스콘신 대학 한국 총동문회 사무총장으로 모임을 주도해왔다. 현재 강 의원과 함께 부회장을 맡고 있다.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정치인으로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3선 중진 김진표 전 의원과 광주 남구가 지역구인 재선의 장병완 의원이 위스콘신에서 공공정책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행시 13회인 김 전 의원은 경제부총리와 교육부총리를 지냈고, 행시 17회인 장 의원은 기획예산처장관을 역임했다. 현재 김 전 의원은 위스콘신 대학 한국 총동문회 명예회장, 장 의원은 고문을 맡고 있다.

재계에서는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이 대표적인 위스콘신 인맥으로 꼽힌다. 연세대 화학공학과를 나와 위스콘신 대학에서 화학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최경환 후보자의 학부와 대학원 선배다. 허 회장은 지난해 1월26일 그랜드하얏트호텔서울 리젠시룸에서 열린 위스콘신 대학 한국 총동문회 신년회에서 ‘자랑스러운 위스콘신 동문상’을 수상했다.

금융계 인사로는 행시 10회로 예금보험공사 사장을 지낸 남궁훈 신한금융지주 사외이사가 공공정책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재정학회 회장을 지낸 손원익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위스콘신 3인방’보다 2년 늦은 1993년에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학계에서는 김용민 포스텍 총장이 전자공학 박사, 박태학 신라대 총장이 양적방법철학 박사,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원장을 역임한 성태제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가 교육측정평가 박사, 한국정보화진흥원 원장을 지낸 김성태 성균관대 국정관리대학원 교수가 정치학 석사, 한국언론학회 차기 학회장으로 선출된 심재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가 매스컴 박사 학위를 받았다.

 

시장 중시 보수학파, 경기 되살릴까 


박근혜 정권 2기 경제팀이 ‘위스콘신 3인방’ 중심으로 짜이면서 이들이 내놓을 정책에 관심이 쏠린다. 일단 위스콘신 대학의 학풍은 정부 개입보다 시장 자율을 강조하는 쪽인 것으로 알려졌다. 성장을 중시하는 등 보수 성향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실제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 후보자는 복지 지출보다는 재정 건전성을, 증세보다는 감세를 강조해왔다. 경제민주화와 관련해 “묻지마 식 입법이 시장에서 부작용을 일으킨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밝히거나, 경기부양책으로 부동산 규제 완화를 끄집어낸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정책 수립 과정에서 전문가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다른 시각으로도 접근해보는 유연함이 필요한데 당·정·청이 학맥으로 뭉쳐 있다 보니 자칫 집단 사고에 갇힐 수 있다는 것이다. 최 후보자가 동문수학한 안종범 경제수석, 강석훈 의원과 의기투합할 경우 사실상 제어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는 지적도 마찬가지다.

당장 부동산 규제 완화에 대한 반론이 제기된다. 가계부채가 1000조원을 넘어선 상황에서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을 상향 조정할 경우 가계는 물론 금융 부실을 촉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기 활성화 측면에서 단기적으로 반짝 효과를 거둘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 경기 폭락을 가져올 수 있다는 설명이다. 금융당국이 그동안 LTV·DTI 해제를 반대한 이유다. 새롭게 출범하는 ‘최경환호’가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면서 침체된 경기를 살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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