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는 마피아 은신처가 될 수 없다
  • 강성운│독일 통신원 ()
  • 승인 2014.07.02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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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전면전 선언…검은돈 거래 의혹 바티칸 은행 개혁

“마피아 조직원과 같은 방식으로 인생에서 악의 길을 따르는 자들은 신과 교감하지 않는다. 그들은 파문되었다.” 6월21일 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 지역을 방문한 교황 프란치스코는 범죄조직 마피아를 유례없이 단호하게 비판했다. 교황은 이번 방문을 앞두고 이틀 전 거행된 성체 축일 행렬에도 불참하는 등 ‘컨디션 조절’에 힘썼다. 덕분에 기온이 40도에 육박하는 살인적인 더위 속에서도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이번에 교황이 방문한 칼라브리아는 이탈리아의 3대 마피아 조직 중 하나인 은드란게타의 본거지다. 마피아의 본거지에서 교황은 조직을 직접 겨냥하는 발언을 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은드란게타는 악의 찬미, 공익의 경시 그 자체다. 이러한 악에 맞서 싸워야 하며 악을 없애야 한다. 우리는 마피아에 ‘아니오’라고 말해야 한다.” 교황이 이렇듯 강경한 발언을 하게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지난 1월 칼라브리아의 작은 마을 카사노 알리오노에서 세 살배기 유아가 마피아의 손에 희생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코코’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이 어린이는 할아버지인 주세페 야니첼리와 함께 불에 완전히 탄 자동차 안에서 발견됐다. 사건 발생 당시에는 코코의 부모와 할머니 모두 불법 약물 거래 혐의로 감옥에 수감 중이었고, 할아버지 역시 같은 혐의로 가택 연금 상태였다.

지난 3월21일 이탈리아 로마 성 그레고리오 7세 교황 교회에서 열린 마피아 희생자 가족들과의 기도 모임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이를 안아주고 있다. ⓒ EPA연합
3세 어린이 살해한 마피아에 시민들 분노

검찰은 이 사건을 범죄 조직 간에 벌어진 복수극이라고 발표했다. 이탈리아 시민들은 분노했다. 어른들 싸움에 죄 없는 어린아이가 참혹하게 죽었기 때문이다. 수사를 진행한 프랑코 자코만토니오 검사 또한 “어떻게 이렇게 어린아이를 살해할 수 있나? 오랫동안 수사관 생활을 하며 맡은 사건 중 가장 야만적인 사건”이라고 말하며 마피아를 강력히 비판했다. 이 사건은 그동안 공공연하게 ‘뒤’를 부탁하는 등 지역 범죄 조직에 의존해오던 이탈리아인들의 생각에도 조금씩 변화를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교황은 6월21일 오전 코코의 어머니 등 유족과 만났다. “다시는 어린아이가 그런 고통을 받아선 안 된다.” 교황의 말 한마디는 마피아를 이대로 둬서는 안 된다는 경각심이 이탈리아 전역에서 공감대를 이루었기에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벌써부터 마피아의 보복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1993년 5월 당시 교황이던 요한 바오로 2세는 시칠리아를 방문해 “마피아는 회개하라”고 설교했는데 두 달 뒤 로마의 바실리카 산 조반니 라테라노 대성당에서 폭탄이 터졌다. 물증은 없었지만 마피아가 보낸 경고장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폭탄이 터지고 두 달이 지난 9월에는 반(反)마피아 운동에 앞장서온 시칠리아의 사제 피노 푸글리시가 자택 앞에서 총격을 당해 사망했다. 이후 요한 바오로 2세는 물론 베네딕토 16세 역시 마피아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을 피했다. 이렇게 이어져온 21년간의 침묵을 프란치스코가 깬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마피아를 신랄하게 비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코코’ 살인 사건이 여전히 화제였던 3월21일에는 로마에서 마피아 범죄 희생자 추모 미사를 집전하며 “마피아의 남녀들이여, 계속 그렇게 살면 지옥에 간다.” “피 묻은 마피아의 돈과 권력은 다른 생에서는 아무런 가치도 없다”고 설교해 화제가 됐다. 이날 미사에는 마피아 범죄 희생자와 가족 지원 운동에 앞장서온 사제 루이지 치요티가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치요티는 3월22일을 마피아 희생자 추모일로 정하고 19년째 이 행사를 주도해왔지만, 지금까지 어느 교황도 그에게 지지를 보낸 적이 없었다. 치요티는 교황에게 마피아의 손에 살해된 또 다른 사제 주세페 디아나의 피 묻은 영대를 건네줬고, 교황은 여기에 입을 맞춘 뒤 목에 걸었다. 마피아 퇴치 의지를 계승하겠다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교황의 이런 행보는 마피아에 타격을 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동안 가톨릭 신앙은 마피아에 대해 면죄부 구실을 해왔다.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반마피아 활동가 로베르토 사비아노는 “교회와의 관련성, 자애롭고 보호해주는 성모 신앙 등은 마피아 ‘패밀리’의 중요한 구조적 요소”라고 분석했다. 마피아는 자신들이 선한 기독교인이라 믿고 있으며, 매주 교회에 가고 거액의 기부금을 내 교인들 사이에서 존경을 받는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점점 마피아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경찰보다 마피아를 먼저 찾게 되며 이런 식으로 지역사회에서 마피아의 영향력은 자연스럽게 커진다. 교황의 마피아 공개 비난은 십자가가 더 이상 마피아의 은신처가 될 수 없음을 뜻한다.

일부 마피아, 교황의 새로운 체제에 반발

마피아 퇴치를 위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넘어야 할 산은 많다. 특히 걸림돌은 다름 아닌 교황청 내부에 있다. 바티칸의 종교 사업 기관(IOR), 즉 ‘바티칸 은행’이 문제다. 지난 1942년 설립된 바티칸 은행은 ‘절대적 은행 비밀’ 원칙을 고수해옴으로써 마피아의 불법 자금이 흘러드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아왔다. 실제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 것은 지난 2010년 9월 에토레 고티 테데스키 전 바티칸 은행 총재가 2300만 유로(약 320억원)의 돈세탁을 시도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부터다. 이 일로 교회가 거센 비난에 직면하자 당시 교황이던 베네딕토 16세는 바티칸 은행 개혁을 약속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불과 1년 반 뒤인 2013년 6월 교황청 회계담당자인 눈치오 스카라노가 현금 2000만 유로(약 312억원)를 스위스로 밀반입하려다 체포되는 일이 벌어진 것만 봐도 그렇다. 베네딕토 16세가 600년 만에 처음으로 생전 교황직을 내려놓는 인물이 된 이유가 실세인 바티칸 은행 개혁에 손을 댔다가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풍문도 흘러나왔다.

베네딕토 16세의 후계자인 프란치스코는 전략을 바꿨다. 지난해 6월 바티칸 은행 개혁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개혁안 중 하나로 ‘바티칸 은행 폐지’를 검토한 것이다. 심상치 않은 개혁 움직임을 감지한 바티칸 은행의 고위 관리자 2명은 지난해 7월 초 사임했지만 교황은 고삐를 더욱 바짝 조였다. 위원회에 개인 비서인 알프레드 수아레브를 보내 개혁안 이행 여부를 직접 보고받았고, 올해 2월에는 특별위원 5명 중 4명을 교체했다. 그 결과 바티칸 은행에 계좌 실명제가 도입됐고, 신용대출제도는 제한됐다. 지난해 10월에는 처음으로 바티칸 은행의 결산 내역이 공개되기도 했다. 바티칸 은행의 돈세탁 혜택을 받던 일부 마피아가 교황의 새로운 체제에 반발하고 있다는 기사가 이탈리아에서 계속 흘러나왔다.

올해 4월7일 바티칸시국은 보도자료를 통해 바티칸 은행을 폐지하지는 않지만 개혁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석 달 가까이 교황의 입에서는 바티칸 개혁과 관련된 말은 나오지 않았다. “마피아를 파문하노라”는 선언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하지만 성직자를 자처하며 연단에 서는 어떤 이들에게 프란치스코 교황의 ‘마피아 파문’ 발언은 심상치 않게 들렸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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