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냄새 나는 세상 만들고 싶어 공부할 뿐”
  • 조철│문화 칼럼니스트 ()
  • 승인 2014.07.02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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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이력 뒤에 숨겨진 민낯 드러낸 조국 교수

트위터에 “226개 기초단체장 선거 결과, 진보 진영의 기초는 여전히 약하다”는 말을 남기고 ‘관악산 학인’은 논문 작업에 힘쓸 것이라면서 하안거에 들어갔다. 57만여 명의 팔로어를 보유한 관악산 학인은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49)의 애칭이다.

조 교수는 시사저널이 해마다 조사해 발표하는 ‘차세대 리더’ 법조 분야에 몇 년 동안 단골로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에는 해당 분야 1위를 차지하며 영향력을 확인시켰다. 조 교수의 영향력은 법조계뿐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강력하다.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단일화에 가교 역할을 자임한 이도 그였다. 국정원 대선·정치 개입 사건이 터졌을 때는 서울대 교수 128명과 함께 국정원 규탄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를 촉구했다.

조 교수가 진보 진영의 아이콘으로 떠오르자 반대 진영에서는 교수직 그만두고 정치나 하라는 비아냥을 퍼부었다. 야권에서 그 의견을 존중(?)한 듯 총선이나 서울시장 선거 등에서 조 교수를 영입 1순위로 지목했다. 조 교수는 출마 요청을 번번이 고사하더니, 그 이유를 말하려는 듯 최근 <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라는 책을 펴냈다.

ⓒ 시사저널 이종현
평생 화두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사회과학서만 내놓던 조 교수가 처음으로 자신의 민얼굴을 드러낸 책을 출간한 것이다. 이 책에는 ‘엄친아’로만 보였던 조 교수가 어쩌다가 만 16세에 서울대 법대에 입학하게 됐는지, 만 26세에 최연소 교수가 될 수 있었는지, 그러나 교수가 되자마자 왜 감옥에 가야 했는지,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대표 진보 지식인으로 활약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세세하게 담겨 있다. 그가 학창 시절부터 이제껏 놓지 않았던 화두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였다고 한다. 돈 냄새보다 사람 냄새 나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 공부한다는 그는 자신이 정치인도, 시민운동가도, 철학자도, 구도자도 아니라고 밝힌다. 그저 그들과 손을 잡고 세상의 변화를 위해 자신의 역할과 소임을 기꺼이 하려는 공부하는 사람, 즉 학인(學人)일 뿐이라는 것이다.

“공부란 자신을 아는 길이다. 자신의 속을 깊이 들여다보며 자신이 무엇에 들뜨고 무엇에 끌리는지, 무엇에 분노하는지 아는 것이 공부의 시작이다. 공부란 이렇게 자신의 꿈과 갈등을 직시하는 주체적인 인간이 세상과 만나는 문이다.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 그리고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공부를 해야 한다. 이 점에서 공부에는 끝이 없다.”

조 교수의 공부 이력을 들춰보면 이렇다. 1965년 부산 구덕산 끝자락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대 법대 최연소 입학(만 16세 11개월), 최연소 울산대 교수 임용(만 26세 11개월) 등의 기록을 갖고 있다. 법대 편집실 ‘Fides’에서 편집위원과 편집장을 지내면서 이른바 ‘모래시계 세대’로서의 고민과 활동을 하며 지식인으로 사는 법을 배웠다.

서울대 법과대학 졸업과 서울대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1992년 울산대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했으나, 학부·대학원 시절의 인연과 활동이 문제가 돼 다음 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덕분에 형사법 전공학자로서 형사 절차의 전 과정을 ‘현장 실습’하는 ‘행운’과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에 의해 양심수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석방 후 미국으로 가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 로스쿨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이후에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과 리즈 대학에서 방문학자로 연구했다.

이 시대 청년들에게 전하는 공부 철학의 정수

이후 동국대를 거쳐 2001년부터 지금까지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서 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조 교수가 신입생에게 꼭 묻는 질문이 있다.

“공부를 잘해서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대법관·검찰총장·변호사·교수 등 선배와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을 것 같은 조용필·김기덕·송강호·김제동 같은 사람 중 누가 더 성공했다고 볼 수 있을까. 또 어떤 쪽이 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었을까.”

이 이야기를 들으면 학생들의 표정은 떨떠름해진다. 그래도 조 교수는 굴하지 않고 매번 묻는다. 학생과 공유하고 싶은 공부 철학의 정수가 여기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 시기까지는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 대학 입학 후에는 안정된 정규직 직장을 가지는 것만이 삶의 목표인 것처럼 말한다. 아이들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소질이 있는지 생각하거나 느껴보지도 못하고 성적과 학점을 관리하고 스펙을 쌓고 각종 자격증을 따느라 여념이 없다.”

조 교수는 많은 청년이 도서관에서, 편의점에서, 사무실에서 스스로의 빛을 바래고 있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학교 공부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주도적으로 삶을 꾸려나가기 벅차 하는 것 그 자체 때문이다. 스펙을 빼고 나면 초라한 인생, 무엇도 아닌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슬픈 일이다. 이런 현실을 개탄하며 공부를 하지 말라는 말은 절대 하지 않는다. 대신 상처받은 영혼을 감싸는 멘토링을 잊지 않는다.

“진짜 힐링은 스펙에 팔아버린 영혼과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이다. 자존감은 자신이 소중한 존재이며 인생의 주인은 바로 나라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신분·지위·재산·학벌 등 사회적 평가 기준에 따라 자신을 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조 교수는 자신이 ‘멘토’라고 불리는 것에도 부담스러워한다. 누가 조금이라도 무언가를 해주리라는 기대감은 별 도움이 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현실의 돌파구는 어디든 있게 마련이며, 돌파구를 찾는 주체는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멘토는 구세주나 만능 해결사가 아니다. 돌아보면 아무리 도와주시고 애써주시는 분이 많았어도 결국 문제 해결의 주체는 자기 자신이었다. 유명인 ‘멘토’가 해주는 위로를 들으러 가는 시간에 실패하더라도 과감히 몸으로 부딪쳐보며 현실의 돌파구를 찾는 것이 실제 문제 해결의 단초가 될 가능성이 더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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