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 좋아하는 13세 소년 ‘인조 인간’
  • 김형자│과학칼럼니스트 ()
  • 승인 2014.07.02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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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링 테스트’에서 심사위원 33%가 ‘진짜 인간’과 구별 못해

“맥주를 좋아하나요?”(질문자)

“나는 나이가 어려서 엄마가 허락하지 않아요. 지난번에 아버지가 술에 취해 들어오셨는데, 어머니의 잔소리가 엄청났어요.”(응답자)

“그런 엄마에 대해 평소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요?”(질문자)

“제 애완동물 기니피그를 싫어해서 정말 불만이에요.”(응답자)

6월7일 영국 런던 왕립협회에서 열린 ‘튜링 테스트’에 참가해 합격한 인공지능(AI) ‘유진 구스트먼’과 컴퓨터의 대화 내용이다. ‘튜링 테스트’는 상대가 컴퓨터인지 사람인지를 모르는 상태에서 심사위원들이 자유 주제로 일정 시간 채팅한 뒤, 대화 상대가 ‘인간’인지 ‘컴퓨터’인지 판정하는 대회다. 컴퓨터를 진짜 사람으로 오인하는 심사위원의 비율이 30% 이상이면 ‘인공지능 컴퓨터’로 판정된다.

‘유진’은 러시아 과학자들이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개발한, 햄버거를 좋아하는 13세 소년의 인공지능을 갖추고 있다. 어려운 질문을 능청스럽게 받아넘긴 유진에 대해 심사위원의 33%가 ‘진짜 소년’으로 오인했다. 컴퓨터 프로그램이 ‘인공지능 판정 시험’인 ‘튜링 테스트’를 통과한 것은 테스트가 만들어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튜링 테스트는 ‘인공지능 연구의 아버지’로 불리는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이 고안했다. 그는 1950년 “컴퓨터의 응답을 인간과 구별할 수 없다면 컴퓨터가 ‘생각’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기계가 통과하려고 도전했지만 그 어떤 것도 통과하지 못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세계 최초의 감정 인식 로봇 페퍼(pepper)와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64년 만에 ‘튜링 테스트’ 관문 뚫은 유진

영국 레딩 대학의 케빈 워릭 교수는 유진의 합격을 두고 “인간의 지능을 완전히 모방해냈다는 점에서 인공지능 연구 역사상 기념비적 사건”이라고 말한다. 연구팀이 ‘유진’을 처음 개발한 건 2001년이었다. 이후 13년간 꾸준히 업그레이드해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게 된 것이다. 합격 소감을 묻는 질문에 ‘유진’은 “특별한 건 없어요. 꽤 쉽게 테스트를 통과했다고 느꼈으니까요”라고 재치있게 답했다.

그렇다면 컴퓨터와의 이런 대화는 어떻게 가능할까. 그 비밀은 인간의 대화처럼 수많은 ‘경우의 수’를 따져 프로그램을 짠 데 있다. 즉 인간의 대화를 모은 방대한 데이터베이스 덕분이다. 인간의 질문에 대한 문장 구조나 문맥을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경우의 수’로 접근했기 때문에 컴퓨터가 질문에 어울리는 답을 끄집어낼 수 있다. ‘키워드(keyword)’ 중심의 과거 프로그램 방식은 인간의 질문을 전체 맥락에서 접근하지 못하고 키워드로만 이해했기 때문에 맥락을 조금만 벗어나도 엉뚱한 답변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정작 인공지능 전문가들 사이에는 ‘튜링 테스트’가 컴퓨터의 인공지능을 정확히 판정할 수 없다는 반론이 많다. 사람의 행동과 뇌는 연관성이 깊은데, ‘유진’의 경우 컴퓨터가 진짜 ‘생각’을 해서 답을 했다기보다는 정교하게 짜인 알고리즘에 따라 결과물을 내놓기 때문에 다르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사고를 흉내 내 답했다고 해도 컴퓨터는 그 말에 대해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독자적으로 자기 판단 능력을 갖춘 컴퓨터’가 아니라는 뜻이다.

일본에서 세계 최초로 감정 읽는 로봇 등장

“손 사장님! 저와 악수하는 장면을 찍어요.”(페퍼)

“좋아.”(손정의 사장)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이 웃지 않아요. 78점.”(페퍼)

“하하하.”(손 사장)

“좋아요, 100점!”(페퍼)

유진과 비슷한 시기에 또 다른 로봇이 세상에 등장했다. 6월5일 일본 소프트뱅크사가 선보인 로봇 ‘페퍼(Pepper)’의 반응이다. 초등학생만 한 몸집의 페퍼는 최초로 사람의 감정을 읽고 반응하는 인공지능 로봇인데 사람의 표정과 음성을 토대로 감정을 인식해 의사소통을 한다. 페퍼의 머리에는 4개의 마이크가 있다. 이 마이크를 통해 소리의 방향을 인식하고, 눈 안쪽의 적외선 거리 센서로 말을 하는 사람과의 거리를 측정할 수 있다. 거리를 측정한 후 사람을 빤히 쳐다보면서 사람의 감정을 이해한다. 이를테면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에게 말했듯 사람이 웃어도 눈은 웃지 않고 입만 웃으면 진짜로 웃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페퍼를 움직이는 핵심 기술은 클라우드와 인공지능이다. 페퍼가 사람의 표정을 인식해 감정을 학습한 결과물은 클라우드 컴퓨터의 감정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다. 이러한 정보들은 가정이나 사무실에 입양된 각 페퍼들에게 다시 전달돼 로봇 스스로 학습을 할 수 있게 한다. 그런 경험을 통해 페퍼들은 더욱 똑똑해진다.

현재 인공지능 연구자들이 추구하는 핵심은 사람처럼 ‘사랑·감정·마음을 지닌 지능 로봇’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의 뇌처럼 학습하고 기억할 수 있는 전자회로가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 뇌의 뉴런을 연결하고 있는 ‘시냅스(synapse)’가 학습이나 기억 등의 기능을 하듯 말이다. 사람의 뇌는 뉴런이라고 불리는 약 1000억개의 신경세포로 이뤄진 복잡한 ‘회로’다. 1개의 뉴런이 1만개의 뉴런과 연결돼 신경정보를 주고받는데, 이렇게 뉴런과 뉴런이 연결되는 구조를 ‘시냅스’라 한다. 1000억개의 뉴런이 1만개의 시냅스를 갖고 있는 셈이니, 1000조개의 시냅스가 뇌 속에 존재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렇게 복잡한 연결망 덕분에 사람의 뇌는 효율적이면서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다.

컴퓨터는 분명 나날이 스마트해지고 있다. 하지만 인간의 위대함은 방대한 자료를 순식간에 훑어서 정답을 도출해내는 능력이 아니라, 바로 그런 질문을 던지는 능력에 있다. 인공지능 전문가들은 뇌의 복잡한 연결망을 파헤쳐 ‘뇌지도’를 그릴 수 없는 한 컴퓨터가 인간처럼 사고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뇌지도’는 뇌 사진 위에 뇌 줄기나 피질, 혈관 등의 위치를 정밀하게 표시해놓은 그림이다. 미국은 뇌의 구조를 샅샅이 밝혀 인간의 뇌지도를 작성하는 ‘브레인 프로젝트’를 현재 진행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뇌가 신경세포의 구조를 바꾸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을 컴퓨터로 모방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컴퓨터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나뉘지만 뇌는 이 둘이 하나고, 신경세포의 연결 구조를 수시로 바꾸며 작동한다. 결국 인간의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해야만 진정한 인공지능을 구현할 수 있는 셈이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현재의 컴퓨터는 쥐의 뇌보다도 못한 수준이지만, 2029년에는 인간 수준으로 알아듣는 인공지능이 개발될 수 있다”고 예측했다. 기계의 한계와 언어의 모호성을 초월해 어의(語義)를 완전히 이해하고 전달할 수 있게 되면, 인공지능은 친구처럼 도란도란 얘기하며 사람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공생의 길을 갈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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