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만은 정윤회에게 파워게임에서 밀렸다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4.07.10 10:2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씨가 박 회장의 인사 개입 차단…비선에서 권력 암투 치열

“좀 창피한 이야기긴 하지만, 솔직히 정윤회씨에 대해 잘 모른다. ‘강남팀’인가 하는 별도의 정무팀을 가동하고 있다는 얘기만 듣고 있는 정도다. 박 대표(박근혜 대통령)에 관계된 모든 인사와 조직을 다 관리하고 있지만, 정씨만은 예외다. 한 번도 본 적도, 대화한 적도 없다.” 18대 대선 경쟁이 치열하던 2012년 11월 당시 박근혜 후보의 조직을 담당했던 캠프의 한 인사는 정윤회씨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2007년 대선 때부터 ‘희망포럼’ 등 박 후보의 조직을 관리해온 핵심 인사였다. 그는 “글쎄, 이정현 (캠프 공보)단장이나 ‘비서진 4인방’ 정도나 (정씨를) 알까, 아마 대부분 다 나와 같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당시 박근혜 후보 캠프는 내부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던 와중에 김무성 전 의원이 총괄본부장으로 전격 영입됐다. 한때 ‘친박 좌장’으로 불렸으나, 이명박 정부 시절 박 후보와 등을 졌던 그가 자중지란에 빠진 캠프를 안정시키기 위해 복귀한 것이다. 당시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과 박 후보 ‘비서 4인방’(고 이춘상·이재만·정호성·안봉근)과의 갈등설도 불거졌다. 하지만 ‘무대’(김무성 대장)로 불리던 김 본부장은 특유의 카리스마로 조직을 장악했다. 박 후보의 절대적 신임을 등에 업고 기세등등했던 4인방이지만, 그들도 ‘무대’는 껄끄러워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2007년 대선 경선 때 ‘무대’가 진행하던 회의 석상에서 4인방 가운데 한 명이 참석자들을 체크하자 “당장 나가라”고 호통을 쳤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박지만 EG 회장(왼쪽)과 박근혜정부의 그림자 권력으로 통하는 정윤회씨 ⓒ뉴스뱅크이미지
박근혜정부 출범 직후 18대 대선 승리를 이끌었던 이른바 ‘개국공신’들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승리에 따른 훈장과 보상을 기대했지만 예상과는 달리 논공행상에서 철저히 제외됐기 때문이다. 깜짝 인사가 이어지면서 박 대통령을 둘러싼 비공식적인 인맥, 즉 ‘비선(秘線)’에 대한 성토가 여권 내에서도 터져나왔다. 비선이 박근혜정부의 인사를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박근혜정부 출범 직후) 비선이 청와대 민정 라인을 포함해 사정기관 쪽에 자기 사람을 심기 위해 엄청나게 물밑 다툼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누구는 이쪽 사람 지분이고, 누구는 저 사람 쪽 인맥’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돌았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자기 사람 심기’ 과정에서 박지만 밀려나

비선 간 혈투에서도 명암이 갈렸다. 가장 핵심적인 비선으로는 ‘만만회’가 지목됐다.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얼마 전 언급한 만만회는 박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EG 회장과 4인방 중 한 명인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 그리고 고 최태민 목사의 사위인 정윤회씨의 이름 뒷글자를 딴 것이라는 전언이다. 여기서 주목되는 이는 단연 정씨와 박 회장으로 상징되는 비선의 권력 경쟁 구도다. 시사저널은 ‘박지만 “정윤회가 날 미행했다”’ 기사(2014년 3월19일자)를 통해 양측 간 첨예한 갈등 관계를 단독 보도한 바 있다.

박지만 회장은 당시 정씨가 미행을 사주했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분노했다고 전해진다. 박 회장과 정씨 사이가 벌어진 가장 큰 이유는 인사 문제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박 회장이 박 대통령 주위에 자기 사람을 천거했으나, 정씨의 반대로 번번이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다. 18대 대선 당시 박 후보 캠프에서 일했던 한 관계자는 “박 회장이 자신의 최측근 ㄱ씨를 들여보내려고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당시 캠프 내부에서는 박 회장을 (대선 레이스에서) 최대 요주의 인물로 바라보는 시각이 많았다. 그래서 ㄱ씨가 중용되지 못했던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때 가장 크게 반대했던 쪽이 정씨 측이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는 대선 승리 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박 대통령의 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청와대에 자기 사람을 들여보냈지만, 박 회장 쪽은 원천봉쇄를 당했다고 한다. 한 여권 고위 관계자는 “박 회장과 가까운 사람들이 청와대 직원으로 임명되는 것을 정씨와 비서진 3인방(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실장, 안봉근 제2부속실장)이 막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이유 등으로) 박 회장뿐 아니라 박 회장과 가까운 사람들의 불만이 적지 않다. 박 회장 쪽과 정씨를 비롯한 비서진 3인방 쪽의 갈등이 심각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박 회장 측은 “대선 이후 오해를 받을까 봐 (박 회장은) 사람들을 잘 안 만나고 있다. 모두 정치권에서 흘러나오는 억측에 불과하다”고 선을 그었다. 청와대 비서진 3인도 본지에 “현 정부 출범 당시 청와대 직원 인사와 관련하여 박 회장과 갈등관계를 만든 사실도 없고, 이후에도 박 회장 측 인사들을 견제한 사실도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결국 박근혜정부를 움직이는 비선은 정씨로 귀결되고 있는 모양새다. 청와대 민정 라인에서 근무했던 한 현직 경찰관은 “(민정 라인에 있을 때) 정씨에 대한 얘기는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다. 정씨가 비서진 3인방 중 이 비서관과 안 실장을 통해 그림자 권력 행세를 한다고 들었다. 현재 청와대에서는 3인방을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이 없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대체 정씨가 누구기에 공식적인 직함이나 조직도 없이 ‘그림자 권력’이란 의혹을 받고 있는 것일까.

시사저널이 단독 보도한 ‘박지만 “정윤회가 나를 미행했다”’ 기사.
“박 대통령, 정씨 얘기만 나오면 대화 중단”

정씨와 박 대통령의 공식적인 관계는, 박 대통령이 1998년 대구 달성군 국회의원 보궐 선거를 통해 정계에 입문할 때부터 시작된다. 정씨는 당시 ‘박근혜 비서실장’ 격이었다. 비서진 4인방이 박 대통령과 인연을 맺도록 연결 고리 역할을 한 사람 역시 정씨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 대선 당시 한 친박계 인사는 “박 후보가 (1998년) 정계에 입문할 때 누구를 알았겠느냐. 특히 보좌진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 후보의 달성 선거를 도운 정윤회씨가 비서진 4인방을 박 후보의 사무실에 넣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그러나 단지 이런 인연만으로 그림자 권력으로 불리는 정씨를 완전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정씨와 박 대통령의 관계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고 최태민 목사다. 정씨는 최 목사의 다섯째 딸인 순실씨의 남편이다. 최 목사의 사위인 것이다. 최 목사는 박 대통령과 친분이 깊은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최 목사는 지난 1974년 박 대통령의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서거하자, 실의에 빠진 박 대통령에게 여러 차례 편지를 보냈다. 이를 계기로 박 대통령과 만남을 가진 최 목사는 ‘대한구국선교단’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는 등 측근으로 자리매김했다. 박 대통령은 최 목사에 대해 공식 석상을 통해서도 수차례 굳은 신뢰를 표현해왔다. 박 대통령은 2007년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대선 예비후보 검증 당시 최 목사에 대한 각종 의혹에 대해 “의혹은 많이 제기됐지만 실체가 없다고 알고 있다”며 최 목사를 두둔하기도 했다. 이런 박 대통령의 굳은 신뢰가 1994년 최 목사의 사망 후, 정씨 부부에게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정씨는 2002년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을 탈당해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했을 때 총재 비서실장을 맡았다. 그러던 중 2004년 박 대통령이 다시 한나라당에 복당해 대표에 오르자 공식 석상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정씨는 이후에도 박 대통령에게 가장 크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로 거론됐다. 2007년 대선 당시에도 정씨의 이름이 회자됐다. 강남팀이 바로 그것이다. 정씨가 비선 조직인 강남팀을 꾸려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작업 등을 해왔다는 것이다. 2012년 총선 때는 정씨가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얘기가 돌았고, 대통령 당선인 시절에는 정씨가 인수위 내에 핫라인을 돌리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올해 초에는 정씨가 영등포 ㅂ건물에 사무실을 내고 공식 활동을 시작한다는 설까지 돌았다.

하지만 어느 하나 확인된 것은 없다. 정씨가 워낙 베일에 가려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정씨는 숨은 실세로 수년 전부터 언론의 주목을 받았지만, 막상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출신지, 출신 학교는 물론 현재 어디에 거주하는지도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정씨와 막역한 사이로 알려진 황 아무개씨는 “예전에 친박계 핵심 인사인 ㅇ씨로부터 정씨를 소개받았다. 정씨는 현재 강원도 평창에서 목장을 하고 있다. 정씨의 고향이 강원도 정선인 것으로 알고 있다. 2012년 4월 총선 때부터 (정씨가) 또 구설에 오르니까 (박 대통령 측에서) 아예 정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씨가 추진했던 평창 목장 사업은 현재 전면 중지된 상태다. 정씨는 2010년부터 평창에 ‘○○말 목장’ 신축 공사를 진행했으나, 2012년 들어 사업을 사실상 접은 것으로 확인됐다. 목장 부지는 현지인들의 텃밭으로 사용되고 있을 뿐, 사실상 폐허와 다름없었다. 정씨의 거주지로 돼 있는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ㅁ빌딩에서도 정씨의 자취는 찾을 수 없었다. 정씨가 지난해까지 운영했다는 경기도 하남시의 한 음식점 역시 지금은 폐업 상태였다. 한 여권 고위 관계자는 “정씨의 얘기가 나온 것이 십 수년 됐다. 그러나 나도 만나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박 대통령에게 정씨의 얘기를 물어볼 수도 없다. 정씨와 관련된 얘기가 나오면, 바로 그 자리에서 대화가 끝나버리기 일쑤였다”고 밝혔다.

정씨는 자신에 대해 돌고 있는 이 모든 얘기들에 대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정씨는 지난 3월24일 시사저널과의 단독 전화 인터뷰를 통해 “(비서진 3인방과) 최근 만난 적도 없고 연락도 안 한다. 일부러 내가 연락을 안 한다. 연락하면 나중에 또 이런저런 얘기가 나올까 봐 아예 끊고 산다. 나는 솔직히 얘기해서 정말 비참하게 살고 있다. 아무것도 안 하고, 하고 싶은 일도 못하고,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내가 움직이면 또 무슨 얘기가 나오니까”라고 심경을 밝히기도 했다.

정씨 “얘기 나올까 봐 아예 끊고 산다”

정씨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름은 박근혜정부의 인사가 있을 때마다 끊임없이 거론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청와대 민정 라인에 들어간 한 검사 출신 인사의 장인이 정씨와 막역한 관계라는 얘기가 돌았다. 정씨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얘기다. 사실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매번 인사 때마다 정씨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고 귀띔했다.

현재 여권 내에서 정씨를 견제할 수 있는 인물로는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첫손에 꼽힌다. ‘원로 7인회’ 중의 한 명인 김 실장이 지난해 8월 청와대에 입성했을 때만 해도, 강력한 카리스마를 앞세워 비서진 3인방을 압도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그러나 김 실장이 ‘문고리 권력’을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가 청와대 안팎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여권의 한 고위 관계자는 “김 실장이 청와대 내에서 비서관들을 생각만큼 확고하게 장악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김 실장과 3인방의 관계 역시 비서실장과 비서관으로서 일사불란한 상하 관계는 아닌 듯하다. VIP(박 대통령)가 김 실장에게 의지하는 것과, 3인방을 믿는 것은 별개로 보인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이와 같은 분위기는 취재 현장에서 만날 수 있는 사정기관 관계자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경찰 정보부서의 한 관계자는 “이런저런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우리 일이다. 그런데 청와대와 관련 있거나 정씨와 관련 있는 정보는 설령 입수한다고 할지라도 보고를 할 수 없는 분위기다. 괜히 잘못 올렸다가 ‘네가 왜 이런 정보를 모으고 다니느냐’는 질책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얘기가 나오면 아예 얘기조차 듣지 않는다”고 말했다.  

 

 


“청와대와 연을 끊은 지 오래됐다 


역대 정권마다 대통령 가족을 중심으로 한 ‘비선’은 존재해 왔다. 그들과 대통령 측근 간의 갈등도 항상 있어왔다. 김영삼 정권에서는 대통령 아들 현철씨와 박관용 청와대 비서실장이 부딪쳤고, 이명박 정권에서는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전 의원과 또 다른 측근인 정두언 의원이 대립하기도 했다. 노무현 정권 때의 이광재 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이나 이명박 정권 때 ‘왕차관’으로 불리던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처럼 대통령의 절대적 신임을 받던 그림자 권력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박근혜 정권에서 ‘그림자 권력’으로 통하는 정윤회씨와는 큰 차이가 있다. 정씨는 말 그대로 민간인 신분으로, 어떠한 직책도 없고, 책임도 지고 있지 않는 인물이다.


그런데 정씨를 단순한 민간인으로 보기엔 그의 행적이 너무도 묘연했다. 시사저널은 수개월 동안 정씨의 행방을 추적해왔다. 그러나 그의 목장이 있다는 강원도 평창, 별장이 있다는 강원도 홍천, 주소지로 돼 있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 등 어디에서도 그의 자취는 찾을 수 없었다. 정씨가 한때 박 대통령의 비서실장으로 정계에 몸담았던 인물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의아한 일이다. 친박 핵심 실세라고 불리는 인물들조차 “오히려 내가 정씨를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말할 정도다. 한 여권 실세는 “역대 정권마다 대통령 문고리 권력의 말로는 비참했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정씨는 절대 자신의 발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랜 취재 끝에 시사저널은 지난 3월 정씨와의 전화 인터뷰에 성공했다. 정씨는 “청와대와 연을 끊은 지 오래됐고 조용히 지내고 있다”며 자신을 둘러싼 모든 의혹에 대해 억울해했다. 다만, 인터뷰를 통해 정씨가 박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EG 회장과의 관계가 무척 소원해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씨는 시사저널이 보도한 ‘박지만 “정윤회가 날 미행했다”’ 기사에 대해 “박 회장 쪽에 내가 직접 연락을 하겠다. 만약 박 회장 쪽에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그러면, 시사저널이 크게 책임져야 할 것”이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나 정씨는 첫 전화통화가 이루어진 며칠 후 “박 회장과 연락이 닿았느냐”는 시사저널의 질문에 “(박 회장이) 나한테 답변이 없고 연락이 없다”고 토로했다. 정씨는 “청와대 쪽하고 일절 연락하는 것 없다. 비서관(3인방)들도 한 번도 만난 적 없고 연락한 적도 없다. 내가 이렇게 사는데,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나”라고 반문했다. 


 
 

▶ 대학생 기사공모전, 제3회 대학언론상에 도전하세요. 여러분에게 등록금을 드립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