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찾아 홀로 미국 국경 넘는 아이들
  • 김원식│미국 통신원 ()
  • 승인 2014.07.10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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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만 밀입국 아동 9만명 추산…인권 강조하는 오바마 정부 딜레마

“아동 밀입국은 긴급한 인도주의적 문제다. 2조원을 들여 임시 주택을 건설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TF팀을 즉시 구성하라.”(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자식들을 미국에 밀입국시키려는 행동은 매우 위험하다. 그리고 ‘자유 통행’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미국 정부는 당신의 자녀들이 미국으로 들어오는 것을 허가하지 않을 것이다.”(제이 존슨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

대통령은 인도주의를 강조했지만 장관은 더 이상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손발이 맞지 않는 발언이다. 이런 엇박자는 미국으로의 아동 밀입국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부모 없이 나 홀로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들어오는 아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2009년 3000명 선에 불과했지만, 2013년 10월부터 올해 5월까지 단 8개월 사이에 무려 5만명에 달하는 아이가 미국으로의 밀입국을 시도하다 미국 국경수비대에 붙잡혔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만 밀입국하려는 아이들의 수는 9만명으로 추산되며 내년에는 14만명이 넘을 것이라는 게 국경수비대의 전망이다.

ⓒ AP연합
이처럼 아동 밀입국이 급증하는 것은 2012년 오바마 정부가 발표한 ‘추방 유예 정책’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미국 국경을 넘어오는 어린이들은 모두 추방된다. 미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멕시코 국적의 어린이들은 국경수비대에 의해 체포되는 즉시 멕시코로 다시 추방된다. 문제는 온두라스·과테말라·엘살바도르 같은 중앙아메리카 국가에서 부모나 보호자 없이 홀로 멕시코를 통해 밀입국하려는 아이들이다. 이들은 임시수용소에 머무르며 재판을 통해 추방 절차를 밟아 본국으로 보내진다. 그런데 밀입국한 아이가 과거 미국에 일정 기간 거주했거나 미국에 부모가 있는 등 정상을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을 경우 추방을 유예하겠다고 오바마 정부가 발표했다. 이후 중남미 국가에서는 소문이 확산됐다. “일단 밀입국만 하면 미국 정부가 구제해줄 것”이라는 희망 섞인 이야기가 근거 없이 퍼졌고, 지독한 가난과 불안한 국내 정세에 시달리던 부모들은 앞 다퉈 자녀들을 미국으로 보내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아이가 추방 유예 조치를 받아 미국에 정착한다면 자신들도 뒤이어 건너갈 수 있다는 부모의 욕심이 작동했다.

미국에 아주 작은 연고라도 있다면 일단 아이에게 연락처와 휴대전화를 건넨 뒤 부모는 무작정 자녀를 멕시코로 보낸다. 아이들이 들어가려는 미국 땅은 주로 텍사스다. 멕시코와 광활하게 국경을 맞대고 있는 곳이라 다른 지역보다 좀 더 수월해서다.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밀입국한 아이들을 수용하는 시설은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미국 전역에 공식적으로 설치된 100여 개의 보호시설은 초만원이다. 텍사스 주 브라운스빌과 애리조나 주 노갈레스 등에 마련된 임시보호소는 아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철망 사이 바닥에 간이 매트리스 하나만 깔고 알루미늄 포일처럼 생긴 담요를 덮고 자는 등 환경도 열악하다. 급기야 미국 정부는 텍사스 주 샌안토니오의 랙랜드 공군기지, 캘리포니아 주 벤추라 카운티의 해군기지, 오클라호마의 실 요새 등 군사시설까지 동원해 임시 수용하고 있지만,  아이들의 수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에 가면 쫓겨나지 않는다”며 등 떠밀어

빵과 자유를 위해 들어오려 하지만 아이들의 밀입국 성공 확률은 낮다. 절반 정도는 미국 국경 근처도 가지 못한다. 과테말라에서 밀입국한 일시아 히메네즈는 멕시코 국경을 넘어 미국에 밀입국했다. 그는 운 좋게도 추방 유예 조치를 받아 지금은 미국공립학교에 다니고 있다. 히메네즈는 밀입국을 시도하면서 두 달 동안 사막을 걸어야 했다. 야생동물과 독거미를 만나 죽을 뻔했고, 며칠 동안 굶기도 했다. 함께 밀입국을 시도했던 아이는 28명이었다. 그중 절반은 국경을 보기도 전에 죽거나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다. 히메네즈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어떻게 해서 살아남았는지 모르겠다. 뛰고, 붙잡히고, 탈출하고 그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고 말했다. 그렇게 도착한 미국에서의 삶, 지금 히메네즈는 모든 것에 만족하고 있다. “집에 거실과 TV가 있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다. 무엇보다도 좋은 교육이 있다.”

하지만 히메네즈의 경우는 매우 드문 사례다. 설혹 밀입국에 성공하더라도 불법 체류자로 머무르는 아이의 대다수가 성적 학대나 기아, 노동 착취 등에 시달리고 있다. 백악관이 직접 나서 “일부 성공 사례에 대한 언론 보도가 아동 밀입국을 부추긴다. 잘된 경우는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고 강조해야 할 판이다. 백악관은 아동 밀입국이 급증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로 중남미의 범죄 조직을 의심하고 있다. 밀수 등 범죄가 쉽도록 밀입국과 관련된 거짓 정보를 중남미 국가에 흘려 국경의 혼란을 유도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군대 동원해서라도 막아라”

수용시설의 과포화 문제는 또 다른 소문을 확대 생산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아이와 여성을 추방하지 않는다는 믿음은 이미 광범위하게 퍼진 상황이다. 여기에 더 이상 수용할 공간이 없자 “미국에 조금이라도 연고가 있는 경우 밀입국자가 바로 연고자에게 인도된다”는 희망 섞인 소문이 돈다. 인권 문제만큼은 민감하게 반응하는 오바마 정부다. 수용소가 부족해지자 수용 환경 개선을 위해 임시 주택 건설을 발표했을 정도다. 오바마 정부의 기본적인 입장은 이렇다. “밀입국한 아이들이 법적인 절차를 밟아 추방될 때까지는 인도주의적인 지원을 다해야 한다.” 반면 공화당 등 보수 세력은 불법 밀입국을 방지할 예산을 먼저 강화하라며 백악관을 압박하고 있다. 가장 크게 골머리를 앓고 있는 텍사스 주정부는 아예 자체적으로 긴급 예산을 편성해 밀입국 조직을 소탕하겠다고 선언한 상황이다. 릭 페리 텍사스 주지사는 “연방정부가 나설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며 매주 130만 달러(약 13억원)를 주 예산에서 긴급 투입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텍사스 등은 아동 밀입국 문제를 안전과 결부시킨다. 마냥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다룰 부분은 아니라는 얘기다. “이들은 범죄자이며 따라서 즉시 추방해야 한다”는 논리다. 실제로도 그런 우려가 있다. 특히 미성년자를 가장한 갱단이 미국에 밀입국할 가능성이 강하게 제기된다. 워싱턴포스트는 국경수비대의 한 관계자 말을 인용해 “갱단 문신을 새긴 미성년자들이 상당수인데 이들의 경우도 나이가 어리면 추방 대신 미국 내의 연고자에게 인도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래서인지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불법 이민자들과 전쟁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하원의원까지 나타났다. ‘아동 밀입국’이라는 소리 없는 전쟁 탓에 미국의 광활한 국경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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