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깬다고 ‘조기 축구’가 ‘브라질 축구’ 되나
  • 서호정│축구 칼럼니스트 ()
  • 승인 2014.07.10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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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월드컵 앞두고 3번이나 감독 바꿔…단기 성적에 급급한 게 문제

귀국하는 대표팀을 공항에서 맞이한 것은 엿사탕 세례였다. 일부 성난 팬은 홍명보 감독을 비난하고 홍 감독 사퇴를 요구했다. 하지만 대한축구협회는 기존 계약 기간인 2015년 AFC 아시안컵까지 홍 감독을 유임한다고 발표했었더랬다. 왜 축구협회는 들끓는 여론과 반대되는 선택을 했을까.

홍명보 감독은 2013년 7월 대표팀 감독직에 올랐다. 브라질월드컵을 불과 11개월 남겨둔 시점이었다. 축구협회는 브라질월드컵을 준비하며 세 차례 감독을 바꿨다. 조광래 감독 1년4개월, 최강희 감독 1년6개월, 그리고 홍명보 감독이 대표팀을 맡았다. 이는 축구협회가 오랜 시간 반복해온 병폐이기도 했다. 역대 월드컵 대표팀 감독 중 4년이라는 준비 기간을 온전히 부여받은 인물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한국 축구 대표팀 선수들이 6월30일 인천공항에서 기념촬영을 위해 대기하던 중 일부 팬이 호박엿 맛 사탕을 던지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계약이라는 원칙과 홍명보라는 자산 지키다

이 비정상적인 과정 안에는 두 개의 집행부가 혼재돼 있다. 최강희 감독을 선임한 것은 전임 조중연 회장. 그리고 2013년 취임한 정몽규 회장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정 회장이 취임한 지 6개월이 지나 최강희 감독이 물러나자 새 집행부는 홍명보를 택했다. 계약 기간은 2015년 1월 아시안컵까지였다. 1년도 남지 않은 월드컵으로 평가하기보단 아시안컵까지 밀어주고 전체적인 성적을 보고 러시아월드컵을 맡길지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뜻이었다.

축구협회는 ‘계약 완수’라는 원칙을 선택했다. 중도에 수차례 감독을 내쳤던 과거의 병폐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허정무 부회장 역시 홍명보 감독의 유임을 발표하며 그 점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선 반론도 만만찮다. 과거 차범근·조광래 감독 등과 비교하며 홍명보에게 특혜를 주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구태와 선을 긋겠다는 정몽규 집행부의 의지로 해석할 수 있다. 제대로 평가를 내리고 책임을 묻기 위해선 약속된 임기를 보장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고 홍명보를 그 출발로 잡았다.

정몽규 회장이 정치적인 인물이었다면 홍 감독을 쳐내는 식으로 책임을 전가했을 수 있다. 지난 20여 년간 축구협회는 그런 방식을 항상 고수했다. 일시적 성적 부진으로 여론이 비판의 날을 세우면 가차 없이 해당 감독을 경질했다. 평가는 없었고 반성도 없었다. 정몽규 회장은 사촌형인 정몽준 명예회장과 같은 현대가의 경영인이지만 두 사람의 분위기와 성향은 딴판이라는 게 협회 내부의 시각이다. 정몽규 회장이 취임 후 보여준 축구협회 정책과 행정은 기초를 튼튼히 하고, 축구를 문화로 확산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홍 감독에겐 2015년 아시안컵이 최대 고비

정몽규 체제의 축구협회는 홍명보라는 개인을 쳐내는 대신 월드컵에서의 실패가 한국 축구가 지닌 구조적 문제이자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임을 인정했다. 전술과 용병술도 문제지만 한국 팀의 기본 스펙은 ‘FIFA 랭킹 56위’로 상징된다. 결국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기보다는 책임을 함께 공유하고 바꾸겠다는 축구협회의 의지 표명이 홍명보 감독 유임인 것이다. 물론 이 선택이 최악의 결과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선 홍명보 감독과 축구협회 차원의 통렬한 반성과 대책이 필요하다. 한국 축구는 월드컵에서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 이유를 확인할 수 있는 분석 자료, 이른바 ‘월드컵 백서’를 단 한 차례도 제대로 만든 적이 없다. 허정무 부회장은 “월드컵 실패를 분석하기 위한 작업에 돌입한 상태”라고 말했다. 축구협회는 빠른 시일 내에 브라질월드컵에서 홍명보호가 실패한 이유를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모두에게 공개해야 한다. 그리고 홍명보 감독은 그 내용을 인정하고 자신의 방식을 어느 정도 수정할 필요가 있다. 지난 성공의 장점은 유지하되, 이번 월드컵 실패가 그에게 준 문제점을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책임지는 모습이다.

내년 1월 호주에서 열리는 아시안컵에서 홍명보 감독과 정몽규 회장은 그들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해야 한다.

 


축구인 3인의 시각  



■ 최순호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지금 여론에 따라 홍명보 감독을 내치고 7개월 후 아시안게임 성적이 안 좋으면 그때 또 감독을 바꾸는 게 옳은 선택은 아닐 것이다. 그동안 국내 감독이 예선 통과 등 중요한 시기에 나쁘지 않은 성과를 냈다. 물론 외국 감독 영입도 장점이 많다. 지도력은 기본이고 글로벌 마인드가 지금 대표팀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표팀 감독이든 프로팀 감독이든 독립성을 많이 요구한다. 다만 권한을 주되 고립되게 해서는 안 된다. 주기적으로 기술위원회나 테크니컬 스터디 그룹(TSG)을 만들어 감독과 경기에 대해 토의할 수 있는 자리가 필요했는데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이것은 성인 대표팀뿐만 아니라 나이별 대표팀 공통의 문제이기도 하다. 대회를 준비하는 감독은 ‘나는 어떻게 하겠다’는 구상을 적어도 협회 핵심부나 TSG에 알리고 대회가 끝난 후 구상과 실행 여부를 비교·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난해 12월과 올봄에 나이별 대표팀 코칭스태프 워크숍이 있었고 이제 그런 시스템을 협회 차원에서 만들어가고 있다. 

지금 우리 대표팀 실력은 2~3명만 유럽 빅리그에서 주전으로 뛰고 있는 정도다. 적어도 구성원 전체가 빅리그에서 뛸 정도의 실력이어야 8강이 가능하다. 그런 실력을 갖춘 선수를 키워내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먼저다. 프로 1·2부, 아마추어 3·4부 등 4개의 디비전 시스템을 만들고 18~21세 사이의 선수를 집중 육성해야 한다. 선수를 한 단계 끌어올려 선수층을 두텁게 만드는 데는 클럽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 

■박종환 전 국가대표 감독

승패를 떠나 이번 월드컵에서 세 경기 중 우리가 주도한 ‘올바른 경기’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 너무 아쉽다. 감독을 자주 바꾸는 것이나 외국 감독 영입론에 찬성하지 않는다. 홍명보가 이번 대회에서 엄청나게 느낀 게 많을 것이다. 생각도 못한 나라가 올라가는 것을 보면 그 팀은 조직과 전술이 아주 뚜렷하다. 감독의 경험이 중요하다.

■이용수 세종대 교수(대한축구협회 미래기획단장)

어떤 말을 해도 논란이 될 수 있어서 조심스럽다. 결과론적으로 말하면 선수들의 체력적인 준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대표팀 구성과 전술적인 선택까지 의견이 많이 엇갈렸다. 앞으로는 대표팀 감독과 기술위원회 등이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김진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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