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식 19금 농담의 제왕 세스 로건
  • 이은선│매거진M 기자 ()
  • 승인 2014.07.10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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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엔 <나쁜 이웃들>, 10월엔 <더 인터뷰>로 연이어 찾아와

지난 5월 미국에선 제작비 2억 달러인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를 끌어내리고 흥행 1위로 올라선 제작비 1800만 달러짜리 영화가 화제가 됐다. 이 영화가 지금까지 전 세계 극장가에서 올린 수입은 2억4000만 달러가 넘는다. 할리우드 루저 코미디계의 대표 주자 세스 로건의 신작 <나쁜 이웃들> 얘기다.

사실 이 영화는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웃기는 작품이라고 꼽기에는 망설여진다. 국내에선 대부분 DVD 시장으로 직행하는 수모를 겪어서 그렇지 그가 이보다 더 작정하고 망가지며 웃겼던 영화는 얼마든지 많다. 대신 <나쁜 이웃들>에서는 어른 남자의 세계에 조금, 아주 조금 더 다가간 세스 로건의 변화가 엿보인다.

ⓒ UPI 코리아 제공
10대부터 천부적 자질 보인 코미디언

신혼 부부 맥(세스 로건)과 켈리(로즈 번)는 갓 태어난 딸과 함께 조용한 주택가로 이사한다. 평화로운 시간도 잠시, 부부의 옆집에 50여 명의 대학생 무리가 이사를 온다. 대학 남학생 집단이자 유서 깊은 파티 클럽 ‘델타 사이’ 멤버들이다. 옆집에서 밤마다 광란의 파티가 열리는 통에 맥의 가족은 잠을 못 이룬다. 부부는 델타 사이 회장 테디(잭 에프론)와 평화롭게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만, 옆집의 소음 데시벨은 높아만 간다. 참다 못한 맥과 켈리 부부는 델타 사이 멤버가 파티를 열지 못하도록 온갖 유치한 훼방을 놓는다. 혈기왕성한 대학생들이 당하고만 있을 리 없다. 테디를 위시한 델타 사이 멤버들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세스 로건은 이 영화를 통해 거의 처음이자 본격적으로 어른의 위치에 선다. <사고 친 후에>(2007년)는 백치 한량 청년에서 덜컥 예비 아빠가 된 후 육아 직전에 해피엔딩을 맞이했고, <우리도 사랑일까>(2011년)에서는 유부남으로 등장했으되 애가 없었다. 예전 같으면 그는 필시 테디나 델타 사이의 주요 멤버로 등장했을 것이다. 세스 로건은 이제 ‘델타 사이’로 대변되는 청년 세대를 부러워만 하거나 얕은 조언을 던지는 동네 형 정도의 위치를 자처한다. 심지어 극 중에서 좋은 부모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기도 한다. 이 영화의 세스 로건을 본다는 건, 언제나 좀 모자란 짓을 일삼으며 웃겨주던 친한 친구가 어른이 되는 것을 지켜보는 감흥이다.

그렇다고 웃음을 포기하면 세스 로건이 아니다. <나쁜 이웃들>의 포인트는 조용히 하라는 사람과 시끄럽게 떠들고 싶은 사람의 유치찬란한 싸움이다. 거창한 의미 같은 게 없다. 가정을 꾸릴 만큼 다 커버렸지만 앞길을 잘 헤쳐나갈 자신이 없는 이와, 어른이 되기 직전의 상황에서 발버둥치는 이의 심경에 소소하게 공감할 수 있는 몇몇 대목이 있을 뿐이다. 나머지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말장난, 성대모사와 댄스 대결 따위로 벌이는 기 싸움, 기상천외한 파티와 이에 비례해 역시 기상천외한 방해 공작 같은 유머로 메워진다. 일단 세스 로건이 출연을 결심한 것 자체가 그의 개인적인 서운함에서 비롯된 일이기도 하다. “아이가 생긴 후 더 이상 예전처럼 놀지 못하는 기혼자의 고충을 다룬 영화가 없더라. 당장 나부터도 그 이유로 아이를 낳지 않는데!”

영화 곳곳에서 작정한 듯 ‘19금 유머’가 튀어나오기도 한다. 섹스나 성기와 관련된 장난스러운 에피소드와 농담이다. <나쁜 녀석들>을 연출한 니콜라스 스톨러는 과거 주드 애파토가 연출한 TV 시리즈 <언디클레어>(2001~03년, Fox)에서 로건과 함께 각본을 담당했던 인물이다. 그와 함께 <나쁜 녀석들>의 시나리오를 다듬은 로건은 “아마도 우리에게는 (‘19금 유머’의 제왕인) 주드 애파토에게 물려받은 유산이 있는 것 같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이른바 미국식 유머라고 하는 이러한 요소 때문에 세스 로건의 영화는 저평가되기도, 열렬한 지지를 받기도 한다.

세스 로건은 단순히 코미디 연기뿐 아니라 제작·기획·각본·연출까지 가능한 만능 재주꾼이다. 그의 뿌리는 스탠드업 코미디다. 어릴 때부터 범상치 않은 말솜씨와 유머를 구사한 아들을 눈여겨본 부모는 로건이 열세 살 되던 해에 한 레즈비언 클럽 무대에 세웠다. 로건은 순식간에 그 일대에서 소문난 10대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됐다. 10대 후반의 로건에게 결정적 계기가 된 작품은 TV 시트콤 <프린스 앤 긱스>(1999~2000년, NBC). 제임스 프랭코, 제이슨 시걸 등이 함께 출연한 이 하이틴 코미디에서 로건 인맥의 절반이 완성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서 로건은 연출과 각본을 담당했던 주드 애파토를 만난다. 로건의 끼를 알아본 애파토는 이후 TV 시리즈 <언디클레어>(2001~03년, Fox)를 시작으로 <사고 친 후에> 등 여러 편의 연출작에서 로건을 공동 각본가 겸 배우로 내세웠다. 요나 힐, 폴 러드 같은 배우도 세스 로건의 든든한 친구들이자 이른바 ‘주드 애파토 사단’의 멤버들이다. 아직도 이들의 활약을 모른다면 주옥같은 코미디인 <슈퍼배드>(2007년), <파인애플 익스프레스>(2008년), <디스 이즈 디 엔드>(2013)를 추천한다. 이들 유머의 정수를 느끼게 될 것이다.

10월 개봉하는 <더 인터뷰>는 김정은까지 조롱

세스 로건은 올해 10월 미국에서 개봉하는 코믹 소동극 <더 인터뷰>에서 단짝 에반 골드버그와 함께 공동 연출가로 나섰다. <디스 이즈 디 엔드>에 이은 두 번째 연출작이다. 또 다른 ‘절친’ 제임스 프랭코와 주연을 겸하는 작품으로, 쇼 프로그램 진행자 데이브(제임스 프랭코)와 프로듀서 아론(세스 로건)의 이야기다. 이들은 자신의 쇼를 즐겨본다는 김정은을 인터뷰하기 위해 평양에 간다. 가만히 놔둬도 불안해 보이는 이들에게 CIA(미국 중앙정보국)가 김정은 암살 지령을 내린다니, 이야기가 산으로 갈 것임은 이미 정해졌다. ‘이 무식한 미국 놈들을 믿지 마십시오!’라는 문구를 호방하게 한글로 새겨넣은 티저 포스터는 웃기겠다는 야심 찬 선언으로 보인다. ‘최고 존엄’을 건드리자 북한은 6월25일 외무성 대변인 성명을 내고 “노골적인 테러 행위이며 전쟁 행위”라고 반발했는데, 정작 세스 로건은 트위터에서 “영화가 재미없다고 나를 죽이겠다는 사람은 있었지만 보기도 전에 죽이겠다는 사람은 처음”이라는 조롱 섞인 맞대응으로 응수했다. 세스 로건이 추구하는 유머에 성역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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