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피아 게이트’, 8월 정치권 덮친다
  • 엄민우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4.07.16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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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업체의 돈은 권력 기관들을 거쳐 다시 업체로 흘러 들어왔다. 이 돈은 권력기관 관리에 쓰였고 그들은 그렇게 강력한 카르텔을 형성했다. 유력 정치인은 ‘보험’으로 관리했고, 관료 출신은 선수로 기용해 활용했다. 그 누구도 패하지 않고 모두가 승자가 되는, 이른바 ‘철피아 먹이사슬’이다.

한때 ‘케빈 베이컨의 6단계 법칙’이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일명 ‘케빈 베이컨 게임’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할리우드 배우 케빈 베이컨을 중심으로 그와 같이 출연한 배우들을 연결하다 보면, 6단계만 거치면 웬만한 할리우드 배우들과 다 연결된다는 것이다.

ⓒ 시사저널 사진자료
‘철피아(철도+마피아)’의 세계에서는 그 단계가 훨씬 간소하다. 굳이 6단계까지 거칠 필요도 없다. 고작 한두 단계씩만 거치면 철도와 관련된 각종 기관과 인사들은 서로 밀접한 관계라는 게 쉽게 확인된다. 문제는 철피아가 서로의 이권에 상호 밀접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라는 것이다. 성격상 이들 사이에는 수천억, 수조 원대 거액이 오간다. 결국 사고가 터졌고, 이는 곧 ‘철피아 게이트’로 번지며 철도업계는 물론 감사원과 정치권까지 덮치고 있다.

시사저널은 철피아 비리 의혹이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훨씬 전인 지난해 11월부터 이 문제에 주목해왔다. 최근까지 철도 사업에서의 업체 선정 과정 비리와 민관 유착 문제를 꾸준히 보도해왔다. 그 과정에서 철도 관련 업체와 공단 및 공사 그리고 정치권 간의 커넥션이 존재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그들이 어떤 식으로 상호 영향력을 행사하며 공생 관계를 이어가는지도 파악했다. 본지는 그동안 접촉했던 철도업계 및 철도시설공단 관계자들과 정치권 및 사정기관 인사들의 증언을 통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철피아의 거대한 먹이사슬 구조를 파헤쳤다. 업체의 돈이 권력기관으로 흘러 들어가고 이 권력기관의 영향으로 다시 업체가 돈을 버는 공생 관계는 복잡하게 뒤엉킨 철로와도 같았다.

커넥션1 공단·공사 고위직 출신 로비 창구로 활용해 사업상 이득 챙겨

현재 철피아 문제와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삼표이앤씨는 한국철도기술연구원과 공동으로 ‘콘크리트 궤도 시스템(PST)’을 개발했다. 원래 외국 업체 것을 사용해왔으나 “국산화해야 한다”는 명분과 함께 국내에선 삼표이앤씨가 독점으로 철도기술연구원과 합작해 개발했다. PST란 쉽게 말해 철로를 따라 부설되는 콘크리트 장치를 말한다.

그런데 코레일 조사 결과, ‘중앙선 지평~구두 간 망미터널’에 부설된 해당 시스템에서 균열이 발생하는 등 문제가 생겼다. 열차 운행의 안전을 위협하는 상황이 터진 것이다. 이를 발견한 코레일은 지난해 5월 철도시설공단 측에 시정 조치를 취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해당 공문 내용을 직접 확인해보니 ‘균열 발생원인 등을 분석해 보강 계획을 밝히고 구조 재검토 및 하자 발생 방지 대책 등에 대해 회신하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러나 철도시설공단 측은 몇 달간 회신을 보내지 않았고 이후 자문회의 등을 통해 ‘문제를 보완해 호남고속철도에 시험 부설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일반 철도상에서 문제가 발견된 제품을 고속철도에 부설한다는 황당한 안을 내놓은 것이다. 당시 자문회의가 속전속결로 열리는 등 문제가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흥미로운 것은 해당 문제를 지적했던 코레일 직원이 공문을 보낸 지 5개월 후인 10월 인사발령을 받고 좌천되다시피 했다는 점이다. 그가 이동한 부서는 신탄진에 있으며 철도업계에서는 한직으로 통하는 곳이다. 기자는 그의 입장을 들어보기 위해 수차례 연락했으나 회신이 없었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철도업계 관계자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의 배후로 삼표이앤씨 부회장인 신 아무개씨를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삼표이앤씨에서 영입한 그는 20년 넘게 철도청에 근무하다 철도청장 자리까지 오르는 등 코레일에 영향력을 행사할 만한 위치에 있는 인물이다. 이 때문에 검찰에서도 그가 삼표이앤씨에 어떤 이권을 주었는지에 대해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논란에 대해 삼표이앤씨 측은 “신씨는 공직에서 오랫동안 떠나 있어 기관에 영향력을 행사할 위치에 있지 않은 사람”이라는 입장을 밝혀온 바 있다. 그러나 철도공사의 한 관계자는 “철도공사 내에서도 전문 분야에 따라 여러 계통이 있는데 신씨는 시설 계통이다. 현직을 떠났어도 함께 일했던 후배들이 있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치”라고 전했다.

삼표이앤씨의 사례는 철도업체가 고위직 영입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를 보여준다. 철도시설공단 및 철도공사 인사들을 식구로 들여 이권을 챙기려 한다는 게 한 철도시설공단 내부 관계자의 말이다. 그는 “심지어 모 공단의 고위직 출신인 한 인사는 자신이 직접 사업체를 운영하며 요즘도 공단 사람들을 만나고 다닌다. 그가 왜 공단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지난 4월 감사원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3년 10월 사이에 퇴직한 철도공단 출신 90명이 민간 업체에 재취업했다.

커넥션2 여·야  의원 가리지 않고 관리 정치권 로비는 가장 기본적인 보험

“철도업체가 정치권에 돈을 줄 이유는 뭔가. 정치인이 직접적으로 사업권을 가진 것도 아닌데”라는 기자의 질문에 철도 관련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한 인사는 “모르는 말씀 마시라”며 손사래를 쳤다. 정치권의 한마디 한마디가 자신들의 이권에 영향을 미친다며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였다.

“철도 사업 규모는 기본적으로 수조 원을 왔다 갔다 한다. 예를 들어 고속철도의 경우 터널 하나를 뚫는 데 드는 돈이 얼마인 줄 아는가? 1000억원이다.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지역구에 철도 관련 사업을 추진할 수 있고, 또 업체 선정 과정에도 어떤 식으로든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즉 정치권의 입김으로 유리한 사업을 따내 수천억 원에 달하는 이익을 챙기고, 그 일부를 다시 정치권에 대주는 공생 형태를 띠고 있다는 것이다.

새누리당 권영모 전 수석부대변인은 AVT사의 고문을 맡으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김광재 전 철도시설공단 이사장 및 AVT사 사람들을 여당 실세 의원들과 연결시켜줬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처럼 아예 정치권 인사를 직접 영입해 그를 로비 창구로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검찰은 영남대 라인으로 연결되는 권 전 대변인과 김 전 이사장의 관계를 중심으로 정치권을 들여다본다는 계획이었으나 김 전 이사장의 자살로 수사 계획을 전면 수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살인교사 혐의를 받고 있는 김형식 서울시의원 역시 AVT사로부터 돈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철도업계 및 기관 사람들은 시의원 신분인 그가 AVT사로부터 돈을 받은 것은 일종의 관리 차원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시의원이라는 자리가 직접적으로 철도 관련 이권에 영향을 미칠 순 없지만, AVT사의 사무실이 그의 지역구인 강서구에 있기 때문에 관리가 필요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김 의원은 현재 AVT사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정치권에 대한 업체의 로비는 김 의원의 경우처럼 일종의 보험 성격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 수년간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몸담았던 한 정치권 인사는 “업체에서 정치권에 로비를 하려는 것은 장기적 관점에서 보험이 되기 때문이다. 영향력이 있는 정치인들을 관리해놓아야 나중에 자신들이 힘들 때 뭔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고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철피아에 대한 검찰 수사가 7월 재보선 이후 정치권으로 옮겨갈 것으로 보여 파장이 예상된다(아래 상자 기사 참조).

지난 5월28일 대전에 있는 한국철도시설공단 압수수색을 끝낸 검찰 관계자들이 압수품을 들고 나오고 있다. ⓒ 연합뉴스

커넥션3 철도공사보다 공단에 집중 포진한 ‘철도고 마피아’

이번 철피아 수사와 관련해 철도고 및 철도대 출신들 역시 주요 수사 선상에 올라 있다. 철도고 및 철도대 출신들이 철도시설공단 내 주요 보직을 차지하고 있고 각 업체 및 기관에도 포진해 있어 이해관계에 따라 유착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얼마 전 AVT사와 관계를 맺으며 유리한 감사 결과를 제공한 혐의로 체포된 감사원 감사관 김씨 역시 철도고 출신인 것으로 밝혀졌다.

철도고 출신은 철도공사보다는 철도시설공단에 많이 포진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철도공사는 철도 운영이 주 업무여서 특별한 전문적 기술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철도와 관련한 사업을 직접 주관하는 권한을 지닌 공단은 철도공사에 비해 철도와 관련한 이권에 개입할 여지가 크다. 1년 예산이 10조원에 달한다.

철도고 및 철도대 출신들은 공단 내부적으로도 요직을 독차지하고 있다고 국회에서 지적을 받아왔다. 지난해 국감 때는 새누리당 이노근 의원이 “철도고·철도대 출신들이 공단을 장악하고 퇴직자 재취업 업체도 지원한다”고 질타했다.

AVT사로부터 뇌물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형식 서울시의원이 살인 청부 혐의로 구속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더 큰 문제는 구속된 감사관 김씨처럼 외부 기관이나 업체에 취업해 철도 관련 납품 및 감사 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철피아 문제를 철도고 및 철도대 출신에만 국한해서 보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도 있다. 철도시설공단의 한 관계자는 “철도고 출신은 이제 명맥이 끊겨 졸업한 사람 중 막내가 40대 후반이다. 영남대 출신 김 전 이사장 때는 권세가 약화되고 오히려 영남대가 득세했었다”고 밝혔다.  


‘철피아 게이트’ 수사로 떨고 있는 여의도  


“수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려던 와중에 갑자기 일이 터졌다.” 철피아 수사를 벌이던 검찰이 김광재 전 철도시설공단 이사장의 자살로 난감해하고 있다. 당초 검찰은 김 전 이사장을 철피아 문제와 관련한 핵심 인물로 지목했다. 그러나 김 전 이사장이 목숨을 끊기 전 ‘정치권으로의 달콤한 악마의 유혹에 끌려 잘못된 길로 갔다. 길의 끝에는 업체의 로비가 기다리고 있더라’는 말을 수첩에 남긴 것이 확인되면서 정치권 연루 가능성은 열려 있는 상태다. 그래서인지 검찰의 칼끝은 정치권을 겨누고 있다.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검찰은 7·30 재보선 전까지 수사를 준비하고 선거가 끝난 이후인 8월부터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현역 새누리당 의원 ㄱ씨에 대한 철피아 연루 혐의점을 포착해 본격적으로 수사를 벌일 채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ㄱ의원은 상임위 배정이 새로 이뤄지기 전 국토교통위원회 소속이었다. 철도업계에 인맥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정치권 일각에서는 “철도업체로부터 받은 돈으로 국회의원 선거를 치렀다”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였다. 이 때문에 새정치민주연합은 ㄱ의원을 철피아의 주요 인물로 보고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밝혀졌다. ㄱ의원의 최측근 인사가 철도시설공단 내 핵심 인물과 결탁해 비자금을 조성, ㄱ의원에게 전달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새정치연합에서는 검찰 수사와 별도로 AVT사와 가까운 관계로 알려진 국토위 소속 새누리당 ㄴ의원, 김 전 이사장과 같은 학교 동문인 새누리당 ㄷ의원에 대해서도 AVT사 및 철도시설공단과의 연루 여부에 대해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TK(대구·경북) 출신으로 김 전 이사장과 가까운 새누리당 ㄹ의원도 의심을 받고 있다. 재보선 이후 대형 ‘철피아 게이트’가 정치권을 덮치게 될지 여의도의 촉각이 곤두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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