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온탕 오가며 ‘간’ 보는 젊은 수령
  • 홍현익│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 승인 2014.07.16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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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신질서 모색기, 김정은의 대외 전략 속내는?

전통적인 한·미·일 남방 3각 진영과 북·중·러 북방 3각 진영 간 대립 구도가 일본인 납치자 문제를 둘러싼 북·일 협력과 정상회담을 통한 한·중 협력 강화로 요동치고 있다. 동북아 국가 간 새로운 합종연횡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듯한 모습이다. 그러나 큰 틀에서 보면, 한·미 동맹, 미·일 동맹, 한·미·일 안보 협력, 북·중 동맹, 북·러 협력, 중·러 전략적 동반자 관계라는 기본 골격은 여전히 건재하다. 한·미 동맹의 전 방위적 연대에 비하면 한·중 협력은 경제 협력과 사안별 대일 견제의 수준을 넘어서기 어렵고, 북·일 관계 재개는 안보리 제재와 미국의 대북 전략 기조 자체를 훼손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다만 이 지역의 질서를 주도해온 미국이 북핵 문제 해결이나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보다 대중(對中) 견제 연대 구축을 우선시하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도전적인 상황이다. 한국의 국익은 북한을 평화적으로 관리해 북핵을 포기시키고 평화체제를 구축하며 한·미 동맹을 강화하면서도 한·중 협력을 유지하는 등 동북아 협력 분위기 속에서 평화통일을 달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은 북한의 핵 보유를 반드시 저지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기보다는 북핵 불인정 원칙만 확인하면서 사실상 북한의 핵 보유를 관망하고 있는 모습이다. 아베 정권의 과거사 왜곡과 독도에 대한 영토적 야욕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집단 자위권 행사를 환영하는 모습 또한 같은 맥락이다.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김일성 주석 사망 20주기인 7월8일 0시 김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다고 로동신문이 보도했다. ⓒ 조선중앙통신
명분 약한 3대 세습 체제 유지가 최우선

북한의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은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명분이 약한 3대 세습 체제 유지를 최우선시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북한판 ‘재스민 혁명’이 일어나지 않도록 경제 회생을 모색하는 한편, 공안 통치를 강화해 반정부 움직임을 사전에 봉쇄하고 있다. 동시에 북한의 경제력이 남한의 40분의 1로 추락했기 때문에 남한의 상대적 번영이 북한 사회에 알려지지 않도록 차단하면서, 체면이 손상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남한의 지원이나 경제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특히 김 위원장은 절대 핵을 포기할 수 없다. 핵이 선군정치의 상징이고 군부의 충성심을 확보하는 수단이며, 주민에게 강성대국의 허상을 보여줘 현실적인 삶의 고통을 덜어줄 뿐 아니라, 저렴한 비용으로 군사 억지력을 확보하고 남한을 위협하면서 미국을 협상으로 끌어들이는 다목적 정책 수단이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에게 핵은 독재 정권 유지의 핵심 수단이라서 그가 핵을 포기하는 결심을 하도록 하려면 그의 목숨을 앗을 수 있는 위협을 보여주거나, 아니면 독재 정권 유지에 상응하는 대가를 주어야 가능한 것이다. 이 때문에 남한과의 관계 정상화나 경협 증진만으로 김 위원장이 핵을 포기하리라는 기대를 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오히려 김 위원장은 핵과 경제 병진 노선을 국가 전략의 요체로 내세우면서 핵 억지력을 지렛대로 삼아 국방비를 절감해 경제 회생에 쓰겠다는 논리를 강조하고 있다. 이는 북한이 핵 개발을 포기하지 않는 한 남북 관계의 획기적인 진전은 불가능하다는 박근혜정부의 대북 정책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노선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올해는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우리 정부가 핵 개발 용인과 체면 유지 두 가지 전제조건을 경시하고 있다는 판단 아래 위협과 대화 제의라는 양면적 대남 전략을 적극적으로 구사해왔다. 김 위원장의 정책 기조를 이해하려면, 그가 30세도 안 되는 어린 나이에 북한 사회에서 별다른 업적을 입증한 적도 없으면서 단지 독재자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3대 세습 정권을 이어받았다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불안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지난해 초 핵실험 이후 한국과 전쟁을 불사하겠다든가 핵무기로 미국을 공격할 수 있다든가 하는 터무니없는 위협을 가한 것이나,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한 것은 이런 틀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일본의 이하라 준이치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과 북한의 송일호 북·일 국교정상화교섭 담당 대사 등이 7월1일 베이징 주중 북한대사관에서 북·일 국장급 회담을 하고 있다. ⓒ EPA 연합
지금처럼 수시로 저강도 도발 일삼을 듯

그런 그가 신년사에서 남북 관계 정상화 의지를 보이고, 비록 한 차례지만 별 대가 없이 이산가족 상봉에도 응한 것은 나름으로 큰 성의를 보였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북한이 기대하던 5·24 조치 해제나 금강산 관광 재개에 응하지 않자 연속적으로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실험을 하는 동향을 보였다. 특히 장성택 처형에 불만을 가진 중국이 북한과 거리 두기에 나서자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하고 한·중으로부터 소외당한 일본 정부에 접근해 납치자 문제 조사 및 송환에 대한 대가로 일본의 대북 독자 제재 해제 등 관계 개선을 모색했다. 또한 7월 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한국을 국빈 방문해 “한반도에서의 핵 개발에 확고히 반대한다”는 한·중 공동의 대북 압박이 실현되자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존재를 과시하는 동시에 인천아시안게임 응원단 파견을 선언하고 상호 비방 및 군사훈련 중단을 제안하는 등 끊임없이 혼란스러운 양면 정책을 구사하고 있다.

현재 김정은은 대외 정책에서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와의 경협은 매우 제한적이고, 납치자 문제를 일본 국민들이 원하는 수준으로 해결해주거나 핵을 포기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일본과의 관계 개선이나 경협에도 한계가 분명히 있다. 또한 대외 교역의 90%를 차지하고 에너지 공급을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으며 식량 부족분의 상당 부분을 충당해주는 중국이 북한의 도발을 더는 용납하지 않을 태세여서 군사 도발을 감행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북한의 핵실험이 2006년과 2009년에 이어, 2013년에 있었기 때문에 핵실험을 올해 안에 감행해야 할 기술적인 이유는 크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한국 정부가 원하는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에 아무 대가 없이 응하자니 남북한 간의 격차가 북한 주민들에게 더 많이 알려지면서  체제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불만이 커질까 걱정이다. 따라서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남북 관계 정상화를 주도하지 않는다면 수시로 지금과 같은 저강도의 도발을 일삼으면서 그럭저럭 핵 능력을 보유하는 길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

어쨌든 8월 교황 방한과 광복절 경축사, 9월 인천아시안게임을 치를 때까지, 8월20일께부터 시작되는 을지 프리덤 가디언 한·미 연합훈련을 제외하고는 한반도 정세가 크게 훼손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위기의 근원적 제거가 아니라 연기에 불과한 것이다. 비록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한반도 안보 위기의 원인을 해소하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면서 ‘대박’의 평화통일을 달성할 기반을 구축하려면 좀 더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대북 정책과 북핵 정책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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