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ENS 1조8000억 사기 대출 사건 외국 탐정회사가 조사한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4.07.16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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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은행 “3000억대 대출금 찾아달라” 의뢰…민츠그룹 “사기 대출에 배후 있다”

결국 외국계 탐정회사가 나서게 됐다. KT그룹 계열사인 KT ENS의 협력업체 사기 대출 사건은 세계적인 탐정회사 민츠(mintz)그룹에서 조사 중인 것으로 시사저널 취재 결과 확인됐다. 사기 대출로 약 3000억원대의 대출금을 회수하지 못하게 된 국내 A은행이 KT ENS를 상대로 대출금 반환 소송을 벌이는 동시에, 이 탐정회사에 조사를 의뢰한 것이다. 수사당국은 이번 사건을 KT ENS 협력업체 사장들의 개인적 대출 사기로 마무리 짓는 분위기다. 배후는 없다는 결론이다. 민츠그룹은 이번 사건에 정·관계 배후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약 6년 동안 1조8000억원이라는 거액을 대출받은 점, 피의자 중 한 명인 전주엽 엔에스쏘울 대표가 해외로 도피할 수 있었던 점 등 의혹이 풀리지 않고 있어서다.

1994년 설립된 민츠그룹은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둔 대형 탐정회사다. 100개국에서 1만건의 조사를 진행하고 있고, 기업 사기 조사가 전문이다. 세계 11개 지사를 두고 있는데 아시아에는 베이징과 홍콩에 지사가 있다.

검·경 수사에선 정·관계 배후 못 밝혀

2월11일 서울지방경찰청 경제범죄수사대 경찰들이 KT 자회사인 KT ENS 협력업체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뒤 증거물을 차량에 싣고 있다. ⓒ 연합뉴스
이 회사의 홍콩지사는 지난 5월 A은행으로부터 사건 조사 의뢰를 받아 사전 조사를 벌였고, 6월 국내에 직원을 파견해 본격적인 조사 활동에 착수했다. 민츠그룹 홍콩지사 관계자는 “KT ENS 협력업체 사기 대출 사건에서 피해를 본 한 은행으로부터 조사 의뢰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A은행 측은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은행 관계자는 “소송을 진행 중인 것은 맞지만, 민츠그룹과 관련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는 게 공식 입장”이라고 밝혔다.

민츠그룹은 어떤 점을 조사하고 있을까. 크게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우선 KT와의 연관성을 찾고 있다. 경찰과 검찰은 이 사건을 KT ENS의 김 아무개 부장과 KT ENS 협력업체 사장들이 공모한 대출 사기 사건으로 마무리했다. 이들이 대출받아 갚지 않은 3000억원도 개인적인 용도로 탕진했다고 밝혔다. 지난 3월 금융감독원이 이 사건을 처음 발표했을 때, KT와 KT ENS는 자신들과 무관한 사건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이후 금감원의 김 아무개 팀장이 범행의 뒤를 봐준 사실이 드러났다. 경찰은 당시 김 팀장의 계좌 등을 조사했지만 증거가 없다고 발표했고 검찰 기소도 하지 않았다. 김 팀장은 현재 금감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KT ENS 협력업체 사장들이 하나은행·농협·국민은행·우리은행 등 16개 금융기관으로부터 2008년 5월부터 올해 1월까지 약 6년에 걸쳐 1조8000억원을 대출받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게 금융 전문가들의 반응이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은행이 대출 사기를 당하려면 은행 내에서만 최소 수십 명의 내부 직원 동조가 있어야 가능하다”며 “이번과 같은 대형 사건에는 은행은 물론 KT ENS나 KT도 관련돼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탐정회사인 민츠그룹도 같은 시각으로 조사 중이다. 이 회사의 조사관은 “KT ENS의 김 부장만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데, 우리는 KT ENS뿐만 아니라 KT 본사에도 조력자가 있는지, 특히 KT 본사의 관리·감독에 과실이 없는지를 집중적으로 확인하고 있다”며 “과거 KT와 중앙티엔씨는 사업 관계였는데, 그 사업이 순수한 것이었는지도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 회사가 조사하는 또 다른 부분은 정·관계 인사의 연루 의혹이다. 특히 범인 중 한 명인 전주엽 엔에스쏘울 대표의 해외 도피에 배후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민츠그룹 관계자는 “서정기 중앙티엔씨 대표와 그 가족이 말레이시아에서 관계사(플러스인트라웨이)를 운영했다는 근거에 따라 그곳을 집중적으로 살피고 있다”고 밝혔다.

서 대표는 2008년 5월 스마트산업협회 2대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여러 정·관계 인물과 관계를 맺었다. 이 시기는 대출 사기를 시작한 시점과 일치한다. 서 대표는 윤종록 미래창조과학부 제2차관을 1대 명예회장으로 초빙했다. 윤 차관은 KT에 오래 몸담아왔고 2007년까지 부사장으로 있었던 인물이다. 민츠그룹은 이 점을 KT와 이번 사건의 연결 고리로 보고 있다.

민츠그룹은 청와대 수석을 지낸 ㄱ씨도 이번 사건과 연루된 것으로 보고 있다. 서 대표는 2008년 230억원을 주고 경기도 시흥시에 임야를 샀다. 시골 임야 구입에 거액이 움직이자 인천지검 안산지청이 자금 흐름을 내사했다. 서 대표는 지인에게 소개받은 ㄱ씨를 움직여 내사를 마무리했다. 그 대가로 서 대표로부터 약정금을 받기로 했지만 차일피일 미루자 ㄱ씨는 2011년 3월 그 임야에 근저당을 설정했고 2013년 2월 해지했다. 이 내용에 대해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사건을 검찰로 송치한 뒤에 알았다고 해명했다.

금감원은 서 대표의 자금 거래 내역을 추적하다가 거액이 ㄱ씨에게 흘러들어간 점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다. 그는 청와대에 들어갈 당시 30억원의 재산을 신고했고 그 가운데 20억원은 현금이었다. 내사를 진행하다 중단한 검사는 ㄱ씨가 검사 시절부터 아는 사이였다.

이런 내용을 중심으로 조사를 벌이고 있는 민츠그룹에 대해 KT는 물론 정부 당국도 쉬쉬하는 분위기다. 만약 이 탐정회사가 배후를 밝히는 단서를 발견하면 금감원은 물론 검찰과 경찰도 체면을 구길 수밖에 없다. 금감원 관계자는 “민츠그룹과 관련된 내용에 대해 아는 바 없다”고 말했다.


경영 정보가 불투명하거나 사기 혐의가 있는 회사를 조사하는 업체가 탐정회사다. 대상 회사의 임직원·퇴직자·운전기사는 물론 자금 출처까지 뒤진다. 탐정회사에서 일하는 ‘탐정’들은 대개 전직 검사, 경찰, 탐정, 컴퓨터 전문가, 회계사, 탐사 전문 기자 출신들이다.

세계적으로 수십 억 달러 규모로 커진 탐정 시장에는 현재 15개 탐정회사가 활동 중이다. 크롤, FTI, 민츠그룹 등이 대표적이다. 2012년 아프가니스탄 최대 민간 은행 카불은행의 직원들이 50억 달러를 해외로 유출했다가 적발된 사건이나 2011년 5조원대의 피라미드 사기 행각을 벌인 미국 버나드 메이도프 사건 등을 파헤치는 데 탐정회사들이 동원됐다.

현재 국내에는 관련법이 없어 정식으로 탐정회사를 설립할 수 없다. 동시에 외국계 탐정회사가 수사 직원을 국내에 파견해 현장을 조사하고 지인 등을 통해 관련 정보를 입수하는 행위를 막을 장치도 없다. 그렇다고 외국계 탐정회사 직원들이 국내에서 활개를 칠 수는 없다. 수사권이 없는 사립 탐정이라서 기업이나 금융기관에 공식적으로 자료를 요청할 수 없는 등 활동에 제한이 있다. 국내에서 민간조사업(사립탐정)이 합법화되고 외국계 탐정회사들이 국내로 들어올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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