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예술 직접 보여주고 얘기하고 싶다”
  • 손가영 인턴기자 (rockyrkdud@gmail.com)
  • 승인 2014.07.16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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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 아프리카예술박물관 노동 착취 사건 5개월 두 예술인은 왜 다시 한국에 돌아왔나

2월10일의 서울 여의도는 유난히 강바람이 거셌다. 추운 날씨에도 국회 앞 새누리당사 주변에는 검은색 피부의 이방인들이 모여들었다. 12명의 아프리카 예술인들은 이날 한국에서 당한 노동 착취와 인종 차별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 내용은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졌고 우리 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다. 문화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던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엽기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이었다.  

고발의 직접적 대상은 경기도 포천 아프리카예술박물관 이사장과 관장이었다. 특히 박물관 이사장이 친박 실세로 통하는 3선의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인 탓에 이는 정치적 쟁점으로 급부상했다. 착취의 내용이 비상식적이란 사실도 사회적 공분을 자아냈다. 백인에게는 친절하면서도 유색 인종에 대해서는 불친절한 우리 사회의 그릇된 인종 차별 문화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난 순간이었다.

사건이 수습되면서 아프리카 예술인들은 한국을 떠났다. 그들의 가슴속에는 한국에 대한 원망과 아쉬움이 가득했을 법하다. 그로부터 5개월이 지났다. 시사저널은 이 사건이 어떻게 수습됐고 지금 상황은 어떤지 궁금했다. 어영부영 마무리됐다면, 지금 이 시간 또 어딘가에서 제2, 제3의 인종차별적  일들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쿨레 칸’의 댄서 엠마누엘(왼쪽)과 연주자 아미두. ⓒ 시사저널 임준선
삶의 새 변곡점이 된 박물관 생활

그런 차원에서 당시 한국을 떠났던 예술노동자들 12명의 지금을 수소문하던 중, 뜻밖의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들 가운데 부르키나파소 출신의 엠마누엘(35)과 아미두(33)가 그 이후 다시 한국에 들어와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당시 박물관의 노동 착취 실태를 적극적으로 알린 당사자였다. 이들은 지금 한국에서 ‘쿨레 칸’이란 이름의 아프리카 예술 밴드 활동을 하고 있다.

두 사람은 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을까. 차별의 기억이 있는 한국을 다시 찾은 데엔 어떤 연유가 있지 않을까. 기자는 7월10일 오후 이들이 활동 중인 ‘에스꼴라 알레그리아’ 사무실이 있는 서울 홍대입구의 한 카페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만나자마자 기자가 던진 첫 질문은 “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결심을 했느냐”였다.

“그 사람들은 우리에게 왜 그랬을까. 박물관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화가 난다. 잊고 싶다.” 엠마누엘은 당시를 회상하며 말문을 열었다. 포천 아프리카예술박물관에서의 노동 착취는 그 정도가 생각보다 고약했다. 박물관은 12명의 아프리카 예술인들에게 월 60여 만원의 임금을 지급했다. 하루 식대로는 4000원을 주었고 휴가는 없었다. 이동을 할 때도 박물관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친구 전화번호를 일일이 보고해야 한다거나 외박은 불가하다는 등의 규칙도 있었다.

박물관은 비행기 티켓 값을 마련해야 한다며 적은 월급에서 돈을 제했고, 계약서에 없는 일을 추가적으로 시켰다. 예술의 꿈을 품고 바다를 건너온 이들이 어린이 체험 활동 보조교사 일까지 도맡게 됐다. 이미 계약서와 다르게 공연 횟수가 더 많아진 상태였는데, 일의 양과 강도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것이다. 가장 분통을 터뜨리게 한 것은 여권 압수였다. 도주 우려 때문이라는 것이 박물관이 제시한 이유였다. 

엠마누엘은 “사람들이 믿든 안 믿든 우리는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 말도 못 하고 본국으로 돌아간다면 우리가 겪은 일에 대한 원망을 떨치지 못했을 것이다. 노동 조건, 인간적 대우 등에서 한국인과 우리를 차별하는 태도가 가장 크게 화났다”고 말했다. 그는 무릎을 다쳐서 공연을 하지 못하는 사람을 인간 전시물처럼 전시실에 세워놓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확실히 포천의 아프리카예술박물관 생활은 엠마누엘과 아미두의 삶에 변곡점이 됐다. 한국 사회가 아프리카 문화를 얼마나 왜곡되게 그리고 있는지를 재확인한 것이다. 12명은 비자가 만료되면서 모두 본국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각자의 삶을 꾸려가고 있었다. 가족의 일을 도맡으면서 예술을 병행하거나, 말리·포르투갈 등지로 재이주를 하면서 일을 지속해나갔다. 엠마누엘과 아미두는 그런 곳으로 한국을 다시 택한 것이다. 두 사람은 3개월 전 한국으로 돌아왔다.

2월27일 국회 정론관에서 귀향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아프리카 예술인들에게 아프리카예술박물관 이사장인 홍문종 의원이 사과하고 있다. ⓒ 뉴시스
“스마트폰은 없지만 음악과 춤이 있어 행복”

“미국은 뉴욕이라고 말하면 다 안다. 아프리카는 그렇게 많은 나라가 있는데, 그냥 다 아프리카라고 한다. 이게 이 대륙의 슬픈 모습인 것 같다.” 이들이 한국에서 흔히 느낀 시선은 차별이었다. 사람들은 아프리카 문화를 제대로 알고 판단하는 게 아니라, 원시적이고 부족 중심적인 전통, 부시맨이나 피그미족 같은 미개한 이미지나 전쟁과 가난을 먼저 떠올렸다. 아미두는 “아프리카 예술은 전시의 대상이지, 누구도 ‘배우려 하지 않는’ 예술인 것 같다”고 말했다. 박물관의 차별 행위도 아프리카 문화를 얕잡아보는 우월의식에서 나온 것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두 사람이 한국으로 다시 돌아온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박물관과 싸우는 과정에서 만난 조력자들이 가장 큰 원동력이긴 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차별적인 시선을 느낀 경험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아프리카 예술을 공부하는 한국인들을 만나면서 힘을 얻었고, 그러면서 한국이 가진 아프리카에 대한 왜곡된 시선도 알게 됐다. 엠마누엘은 “아프리카 문화를 직접 보여주고 얘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것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아프리카 문화에 대한 정확하고 편견 없는 시선이 만들어지리라고 기대했다.

현재 이들이 한국에서 하고 있는 활동도 그런 바람과 맥락이 닿아 있다. 박물관이 일방적으로 전시한 공연과 달리, 이들은 자신이 진행하는 모든 공연을 직접 기획하고 있다. 엠마누엘과 아미두는 뿌리에 대한 자긍심이 높았다. 부르키나파소는 음악과 춤 문화가 발달한 나라다. 그래서 이들은 음악과 춤을 제2의 언어라 할 정도로 큰 자부심을 보였다. “우리는 한국처럼 스마트폰 같은 기계가 많이 없다. 가난한 나라이긴 하지만, 우리는 음악과 춤이 있기 때문에 가난하지 않다. 항상 행복할 수 있다.”

아프리카 예술인들은 대부분 본국에서 몇 년의 수련 기간을 거치고 많은 콘테스트에서 수상한 경험을 가진 전문 댄서다. 엠마누엘과 아미두도 마찬가지다. 이들도 오랜 아카데미 생활을 거치고 오디션을 통해 한국에 왔다. 이들은 현재 하자작업장학교라는 대안학교에서 교육 워크숍을 맡고, 홍대의 어느 공연장에서 정기적으로 공연을 하고 있다. 최근엔 쿨레 칸에 한국인 멤버가 가입해 3인조가 됐다. “한국에서 쿨레 칸이 할 수 있는 일들을 더 꾸미고, 아프리카 음악을 공부하는 한국인들과 같이 작업하거나 그런 활동을 지원하고 싶다. 그리고 아프리카를 낮게만 보는 시선을 변화시키고 싶다.” 다시 한국에 온 엠마누엘과 아미두의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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