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가(家), 차남의 역습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4.07.16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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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문 전 부사장, 형과 동생 상대로 전쟁 선포

“그룹 내의 불법 행위를 바로잡고 진실을 밝히려고 애써왔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지난해 2월 그룹을 떠났지만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자신들의 문제를 나에게 뒤집어씌우려 했다. 모든 불법 행위를 바로잡고 정리하기 위해 고소를 결정했다.”

최근 효성 계열사 두 곳의 경영진을 검찰에 고소한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변호사)의 말이다.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차남인 조 전 부사장은 지난 6월10일께 트리니티에셋매니지먼트(이하 트리니티)와 (주)신동진의 최 아무개 대표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횡령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트리니티와 신동진이 부실 계열사에 자금을 대고 지분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100억원 안팎의 손실을 입었다는 것이 고소 내용의 요지다. 조 전 부사장은 7월10일 “그동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음해와 모욕을 (그룹 측으로부터) 당했다”며 “내가 주주로 있는 회사 자금이 투명하지 않게 집행되는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고소가 불가피했다”고 측근을 통해 밝혔다.

(왼쪽부터)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차남), 조현준 효성 사장(장남), 조현상 효성 부사장(삼남) ⓒ 연합뉴스·시사저널 자료
효성그룹 측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그룹의 한 관계자는 “적법한 경영 판단에 따라 이뤄진 계열사의 정상적인 투자 활동이었다. 향후 검찰 조사 과정에서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 소명될 것”이라며 “조 전 부사장은 두 회사의 등기이사로서 경영 전반에 참여했다. 누구보다 경영 상황을 자세히 알고 있다. 퇴직하고 나서 몸담고 있던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계속하는 것은 불순한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효성그룹 측은 오히려 “지난해 계열사 가처분 소송에서도 당사가 대부분 승소했다. 고소 이면에 다른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고 의심하기도 했다.

효성그룹 측 “차남이 불순한 의도로 고소”

이에 대해 조 전 부사장은 “등기이사로 경영에 참여했다는 주장은 말이 안 된다”고 맞서고 있다. 그는 “등기이사로 이름만 있었고 실제 경영은 조현준(조석래 회장의 장남)·조현상(삼남) 본인들이 독단적으로 처리했다. 경영진이 나와 어떠한 경영 정보를 공유한 적도 없고, 보고를 받은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자신은 경영에서 완전히 배제됐고 불법 사실도 장부 열람을 통해 알게 됐다는 것이다.

조 전 부사장은 지난해 7월 말 효성토요타·더클래스효성·트리니티·신동진 등 4개 계열사를 상대로 회계 장부 열람 가처분을 신청했다. 법원은 “조 전 부사장이 해당 회사 발행 주식 총수의 100분의 3 이상을 보유하고 있고 회계장부 열람·등사 청구의 이유도 상당하다”며 신청 일부를 받아들였다. 지난해 3월부터 올 1월까지의 회계장부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문제를 발견했고, 회사 경영진을 고소하게 됐다는 것이 조 전 부사장 측의 설명이다.

조 전 부사장은 현재 추가 고소도 검토 중이다. 그는 “트리니티나 신동진의 경우 이사회 자체가 없었다”며 “이사회 회의록에 내 도장이 찍혀 있다면 허위 날인된 막도장이다. 이에 대해서는 추가로 법적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재계 일각에서는 조 전 부사장과 형제들이 “갈 데까지 간 것 아니겠느냐”고 말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아버지인 조석래 회장과 형인 조현준 사장이 현재 조세 포탈 등의 혐의로 검찰에 동반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형과 동생을 상대로 고소장을 제출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효성가 차남의 반란’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특히 트리니티와 신동진은 효성그룹의 부동산 매매 및 임대 회사다. 효성가 장남인 조현준 사장과 삼남인 조현상 부사장이 대주주다. 조 사장과 조 부사장은 각각 트리니티와 신동진의 지분 80%를 보유하고 있다. 피고발인은 트리트니와 신동진 등 두 계열사의 대표인 최 아무개씨지만 실제 타깃은 최대주주인 조현준 사장과 조현상 부사장이기 때문에 검찰 수사 결과가 주목되고 있다. 

조현문 전 부사장의 주변 인사들은 이번 고소가 “예정된 수순”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는 지난해 2월 “변호사로 새로운 인생을 살겠다”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보유하고 있던 효성 지분 대부분(6.84%)을 제3자에게 매각했다. 효성 오너 일가의 지분율은 33.24%에서 26.06%로 떨어졌다. 지배주주 약화 이슈가 시장에 불거지면서 효성 주가는 1만원 이상 하락했다. 조 전 부사장은 올 1월 자신과 아들 명의의 나머지 효성 주식 13만938주(0.37%)도 팔아치웠다.

이 과정에서 양측은 적지 않은 신경전을 벌였다. 조 전 부사장은 지난해 6월 트리니티와 신동진을 상대로 이사 변경 등기 절차 이행 청구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냈다. 2012년 3월과 6월 트리니티와 신동진의 등기이사직에서 사임했지만 1년 넘게 이사 변경 등기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올 2월에는 효성캐피탈의 ‘도명 대출’ 의혹도 제기했다. 도명 대출이란 다른 사람의 이름을 도용해 대출을 받는 것이다. 효성캐피탈은 조 전 부사장 명의로 지난해 11월까지 50억원을 효성그룹 총수 일가에 대출해줬다. 정작 본인은 이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언론에 폭로하면서 그룹 측과 대립각을 세웠다.

효성그룹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조 전 부사장은 지난해 4월 두미종합개발 보유 지분(49.2%) 전량을 서울 용산의 서울드림교회에 기부했다. 두미종합개발은 당시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골프장(웰링턴C.C.)을 개발하고 있었다. 올 초 개장했으며, 효성 계열사인 노틸러스효성·효성굿스프링스·효성캐피탈 등이 이 골프장의 회원권을 대거 보유하고 있다. 효성 측은 조 전 부사장의 기부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해 12월 주주총회에서 두미종합개발 지분을 무상 감자한 뒤 100% 자회사로 만들어버렸다. 이에 따라 서울드림교회와 효성그룹은 주주총회 결의 무효 소송을 벌이기도 했다.

세칭 증권가 찌라시(정보지)를 통해 조 전 부사장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효성이 국세청 세무조사와 검찰 수사를 받도록 비리를 제보한 곳이 조 전 부사장 측이라는 내용이 유포됐다. 조 전 부사장이나 가족 심지어 측근들의 사생활까지 가감 없이 시중에 나돌았다. 조 전 부사장은 2월 말 자신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한 사람을 찾아달라며 서울 마포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했다. 이 과정에서 효성그룹 임원이 최근 조 전 부사장 측을 비방하는 허위 내용을 정보지 등에 유포한 혐의로 검찰에 기소되기도 했다.

효성가 장남과 삼남에게 불똥 튈지 주목

조 전 부사장 측은 증권가에 유포된 각종 소문의 진원지로 효성그룹을 지목하고 있다. 한 측근은 “형제간 갈등은 내부 사정을 모르고 하는 얘기다. 피해자는 조 전 부사장”이라고 말했다. 조 전 부사장도 7월10일 “한쪽에서는 나의 진의를 왜곡하고 음해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불법 행위로 나를 얽매려 했다”며 “정당하게 독립해서 바르게 새 출발하는 나를 방해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조석래 회장은 오해를 풀기 위해 여러 차례 조 전 부사장 집을 찾았다. 하지만 아들을 만나지 못하고 발길을 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조 전 부사장이 효성 지분을 팔아 수천억 원의 시세 차익을 냈고, 이 돈으로 두 형제에게 반격을 가할 M&A를 시도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돈다. 이와 관련해서도 조 전 부사장 측은 “세금을 떼고 나면 실제 손에 쥐는 돈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나마 그룹에서 주식 매입가를 정확히 밝히지 않아 국세청에 세금을 선납하고 나중에 환급받기로 했다. M&A를 시도할 자금도 안 되며, 그럴 이유도 없다”고 강조했다.


2013년 12월18일 조세포탈과 배임·횡령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이 서울 서초동 법원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 시사저널 구윤성
효성그룹을 둘러싼 악재는 형제간의 불협화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박근혜정부가 출범하자 효성그룹은 국세청으로부터 대대적인 세무조사를 받았다. 조사 과정에서 1조원대에 이르는 분식회계를 통해 법인세를 탈루한 혐의가 드러났다. 조 회장 일가가 1000억원대의 차명 재산을 관리하며 소득세를 탈루한 혐의도 나왔다. 국세청은 지난해 9월 4000억원에 이르는 탈루 세액을 추징하고 조 회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올 초 수천억 원의 조세 포탈 및 회사 돈 배임ㆍ횡령 혐의로 조 회장을 기소했다. 장남인 조현준 사장도 동반 기소됐다. 현재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는 7월9일 효성에 대해 과징금 20억원을 부과하고 대표이사인 조석래 회장과 이상운 부회장 등 2명에게 해임 권고 조치를 내렸다. 증선위는 “효성이 2005년부터 최근까지 재고 자산과 유형 자산을 허위로 계상한 금액이 6500억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말 그대로 ‘사면초가’ 상태다. 재계에서는 3세로의 경영권 승계가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고 예상한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효성가 삼형제는 7%대의 지분을 나눠 가졌다. 장남이 섬유·정보통신 부문, 차남이 중공업 부문, 삼남이 산업 자재 부문을 각각 맡아왔다.

지난해 2월 조 전 부사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나머지 형제들 사이에 지분 매입 경쟁이 벌어졌다. 현재는 조현준 사장과 조현상 부사장이 각각 10.33%와 10.32%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효성 측은 “경영권 방어 차원에서 오너 자제들이 지분을 매입한 것”이라며 승계 구도와 연관 지어 해석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하지만 조 회장이 79세로 고령인 데다, 검찰과 법원을 오가며 건강이 많이 악화됐다. 2010년 담낭암 말기 판정을 받아 절제 수술을 받은 데다 올해 초 전립선암이 발견돼 방사선과 호르몬 치료를 병행하고 있어 조기 승계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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