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전지현, 백두산에 속았다?
  • 모종혁│중국 통신원 ()
  • 승인 2014.07.16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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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바이산 생수’ 광고 모델 논란…백두산 개발에 돈 쏟아붓는 중국

지난 6월 한 달간,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로 한류 스타가 된 김수현과 전지현은 롤러코스터와 같은 행보를 해야 했다. 중국 부동산 재벌 헝다(恒大)가 생수 시장에 진출해 야심 차게 내놓은 백두산 광천수의 광고 모델로 나서면서 일으킨 논란 때문이다.

헝다 광천수의 원산지가 백두산의 중국명인 창바이산(長白山·장백산)으로 된 것이 문제였다. 창바이산이라는 명칭이 동북공정에서 비롯됐고 우리의 한류 스타가 이에 이용됐다는 주장이었다.

예기치 않은 논란이 일자, 6월20일 김수현과 전지현의 소속사는 헝다에 광고 계약 해지를 요청하겠다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촬영이 끝난 CF는 이미 중국 전역에 방송을 타고 있었고, 신문·잡지·디스플레이 광고까지 등장했다. 이 모든 광고를 해지할 경우 두 스타가 치러야 할 손해배상액은 천문학적 수준이었다. 결국 일주일 만에 김수현과 전지현 소속사가 광고 계약을 계속 유지키로 결정하면서 해프닝이 끝났다.

중국 쪽에서 바라본 백두산 천지. 중국은 최근 백두산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 EPA 연합
10여 개 회사 백두산 생수 개발 뛰어들어

이런 해프닝보다 정작 주목해야 할 것은 현재 백두산에서 벌어지는 상황이다. 백두산에서 생수를 개발하는 회사는 헝다뿐만이 아니다. 와하하(蛙哈哈)·눙푸산취안(農夫山泉)·캉스푸(康師傅)·퉁이(統一) 등 중국과 타이완 업체들이 뛰어든 상황이다. 현재 백두산 일대에서 물을 뽑아 올리는 기업은 10여 개에 달한다. 후발 주자인 헝다는 지난해 9월 생수회사를 설립해 백두산에 있던 공장 2곳을 인수했고, 5월에는 영국·프랑스·독일 등 유럽 13개국의 판매상과 생수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최근에는 천지와 가까운 창바이산 자연보호구의 츠난(池南)구에 150억 위안(약 2조4450억원)을 투자해 연간 1500만톤을 생산하는 공장을 착공했다.

중국 기업들이 생수 개발에 적극 나서는 이유는 백두산의 풍부한 수맥과 뛰어난 수질 때문이다. 게다가 압록강·두만강·송화강 등 3개 강의 발원지로 ‘생명의 근원’이라는 이미지를 어필할 수 있다. 여기에 현지 지방정부의 노력도 한몫했다. 지방정부들은 각종 투자 우대 정책을 제시하면서 기업들을 유혹하고 있다.

이런 장점과 유인책으로 한국 및 외국 기업이 백두산으로 모여들고 있다. 6월18일 농심은 옌볜(延邊) 조선족자치구 얼다오바이허(二道白河)에서 백산수 신공장 기공식을 가졌다. 연간 100만톤을 생산할 신공장은 기존 시설의 4배에 달한다. 건설비 2000억원은 농심이 중국에 진출한 이래 단일 사업비로는 최대 규모다. 태국의 CHIA TAI그룹도 100억 위안(약 1조6300억원)을 투자해 창바이 현에 연간 1000만톤의 생수 생산 시설을 건설할 계획이다.

백두산 물을 이용해 벌이는 또 다른 사업은 온천이다. 백두산의 중국 관할 내에는 1년 내내 수온이 일정한 온천이 103곳 있다. 매일 솟아나는 온천수의 총량만 6455톤이다. 지난 4월 ‘옌볜일보’는 “올해 1분기 백두산 일대 온천을 방문한 관광객이 3만명을 넘었고, 하루 평균 400~500명이 찾았다”고 보도했다. 그동안 백두산은 혹독한 추위와 폭설로 인해 매년 4~10월에만 관광객을 맞이했다. 겨울철 관광이 허용된 것은 2007년부터다. 하지만 수많은 기업들이 온천 개발에 뛰어들면서 사정이 바뀌었다. 지린(吉林) 성 정부도 백두산을 ‘지열(地熱)박물관’이라 홍보하면서 다양한 상품을 개발해 겨울 관광을 활성화할 예정이다.

중국의 유명 식품업체인 캉스푸에서 생산하고 있는 백두산 광천수 '톈란수이' ⓒ 연합뉴스
“백두산은 우리 영토” 중국인 늘어

백두산의 모습 자체를 바꾸는 대규모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완다(萬達)그룹이 주도하는 민간 컨소시엄은 2012년 백두산 해발 800m 지점에 230억 위안(약 3조7490억원)을 투자해 창바이산 국제리조트를 개장했다. 이 리조트는 세계적인 호텔 6동, 54홀 규모의 골프장, 43면의 슬로프를 가진 스키장을 구비했다. 2015년 개장이 예정된 워터파크까지 문을 열면 완벽한 사계절 관광지로 발돋움한다. 지난해 5월에는 인디(銀地)투자그룹이 앞으로 8~10년간 창바이 조선족자치현에 120억 위안(약 1조9560억원)을 투자해 스키장·골프장·온천 등을 갖춘 리조트를 건설키로 했다.

끓어오르는 개발 붐에 소림사까지 나섰다. 지난 3월 스융신(釋永信) 소림사 방장은 창바이산관리위원회를 찾아 사찰을 건립하는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했다. 스 방장은 “백두산에 동소림·북관음에 해당하는 사찰을 세워 불교 성지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소림사 측은 조만간 사찰 건립과 관련된 사항을 추진할 계획이다.

중국이 자국 땅을 개발하고 중국 기업이 경제적 이익을 쫓아 백두산에 투자하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이면을 살펴보면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1962년 북한과 중국이 맺은 국경 조약에 따라 백두산 전체의 75%는 중국, 25%는 북한 땅이다. 천지는 45.5%가 중국, 54.5%가 북한 관할이다. 예부터 우리에게 백두산은 민족의 성산이었지만, 중국인들 가운데는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백두산을 찾는 관광객의 대다수는 한국인이었다. 하지만 백두산이 개발되면서 중국인은 백두산이 자국 영토라고 철저히 인지하게 됐다. 2005년 35만명에 불과했던 관광객 수는 2012년 167만명에 달해 377%나 늘어났다. 최근 백두산을 방문하는 관광객의 절대 다수는 중국인이다. 지난해에는 중국의 관광 전문가와 네티즌이 선정한 ‘중국에서 잠재력이 가장 큰 관광지’로 선정됐다.

우리가 창바이산과 동북공정을 연결시켜 한류 스타를 비난하는 사이에 중국은 백두산을 차근차근 개발해왔다. 이제는 그 성과를 선보이며 창바이산 생수를 팔고, 창바이산 리조트로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심지어 중국은 북한 관할의 백두산마저 개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에 반해 우리는 5·24 대북 제재 조치에 막혀 백두산 개발에서 철저히 소외당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전 세계 지도에서 ‘백두산’은 사라지고 ‘창바이산’만 남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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