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00일] 하는 짓 밉지만 ‘안전’은 배워야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4.07.2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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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시운마루호’ 대참사 이후 일본 해상 안전 매뉴얼 구축

초등학교 안에 수영장이 한두 개쯤 있는 것은 기본이다. 심지어 온수풀도 있다. 앙증맞은 수영복을 입은 아이들은 수영모를 쓰고 너나없이 물장구를 즐긴다. 초·중·고교를 배경으로 하는 일본 만화나 드라마를 좋아한다면 일본 학교에는 수영장이 딸려 있다는 사실이 낯설지 않다. 있던 운동장도 사라져가는 한국과 달리 없던 수영장도 생기는 일본이다. 공립 초등학교에서 수영장을 보유한 곳이 90%가 넘는다. 도쿄 도의 경우 초등학교의 98.9%가 수영장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 보니 수영 교육은 자연스레 필수로 따라온다.

시운마루호 사고 해역, 선원 실습생 훈련장

일본 국토 곳곳에 수영장과 수영 교육이 뻗어나간 이유는 이곳이 단지 섬나라라서만은 아니다. 선박 사고의 상흔이 가져다준 유산이다. 일본은 반세기 전 우리네 ‘세월호’와 마치 평행이론처럼 닮은 대참사를 겪었다. 여객선 ‘시운마루호’는 세월호 사고 이후 일본에서 재차 거론되고 있는 배다. 1955년 5월11일 오전 6시56분 일본에서도 가장 위험한 바다 중 하나인 일본 혼슈(本州)와 시코쿠(四國) 사이의 세토(瀨戶) 내해를 운항하고 있던 시운마루호는 짙은 안개 속에서 출발을 강행했다가 일본국유철도의 대형 운반선을 피하지 못한 채 충돌했고, 그 후 5분 만에 전복됐다. 이 사고로 발생한 사망자는 총 168명이었다. 이  중에는 수학여행을 가던 아이치 현의 초등학생과 고치 현 고치 시의 중학생을 포함해 주검으로 돌아온 학생 100명이 포함돼 있었다.

일본 다카마쓰 지역의 세토 내해를 가로지르는 세토대교의 야경. 세토대교는 시운마루호 사고 이후 운항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건설됐다. 작은 사진은 1955년 사고 당시의 시운마루 호. ⓒ 연합뉴스
세토 내해는 혼슈와 시코쿠, 규슈로 둘러싸인 해역이다. 동서로 450㎞에 달하는 길고 좁은 해역이며, 평균 수심은 31m에 불과하다. 조수 간만의 차가 커 어떤 지역은 밀물과 썰물의 차이가 2m가 넘기도 한다. 조류도 매우 강해 강의 급류처럼 흘러가는 곳도 있고, 소용돌이가 발생하는 지점도 있다. 이런 곳을 두 선박 모두가 규정 속도를 초과한 채 레이더만 바라보고 운항하다 결국 충돌했다. 안개로 시야 확보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물론 서로가 다가가고 있음을 미리 알았고 신중하게 접근했지만, 불행히도 두 배는 동시에 같은 쪽으로 꺾으며 충돌했다.

시운마루호 사고로 일본 열도는 충격에 휩싸였다. 이후 일본이 선박 안전 기준을 대폭 강화하고 안전 대책을 다지는 계기가 됐다. 특히 연안을 운항할 때는 선박 교통량이 많고 항로가 겹치는 경우가 많아 동일 항로 위에서 같은 방향으로 변침할 경우 선박이 부딪칠 확률은 높아진다. 시운마루호 역시 그런 경우에 해당했기에, 사고 이후 연안 항로의 상행선과 하행선은 완전히 분리돼 복선 형태로 배가 다니게 됐다. 마치 바다 위에 중앙분리선과 같은 도로 차선을 그어놓은 것처럼.

짙은 안개 속에 출항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정선 권고’를 엄격하게 적용하도록 했다. 보통 정선 권고는 기상 상태가 좋지 않아 시계가 불량할 경우 해상보안청이 항해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하지만 여객이나 화물을 수송하지 못할 경우 업자들의 손해나 승객의 불편이 염려돼 사고 전에는 있으나마나였다.

여객선이 침몰할 경우에 대비해 선박의 복원력을 강화하는 방안도 적용됐다. 사고 이후 일본에서는 복원력과 관련한 규칙이 만들어졌는데, 이를 바탕으로 한 국제적인 규칙이 국제해사기구(IMO)에서 제정됐다. 배끼리 충돌해 선체가 일정 부분 파괴되어도 침몰이나 전복을 피하기 위해 격벽을 증설하는 기준을 마련해 선박의 구조를 강화했다. 현재 연안 이상을 항해하는 일본의 소형 선박은 예외 없이 기관실 앞쪽에 수밀 격벽을 설치해야 한다.

사고 이후 세토 내해는 선원 실습생의 훈련 장소로 탈바꿈했다. 앞서 설명한 대로 좁은 수로로 되어 있고 선박 왕래가 잦으며 어선도 많고 조류의 영향도 크다. 내륙 항해를 총정리하는 데 매우 적합한 해역이 이곳이다. 실습생들은 항로와 항법을 연구하고 세토 내해의 어선과 어법을 조사하며 이곳의 기상과 해상을 익히고 실제 항해까지 수행한다. 일등항해사의 설명을 직접 들으며 진행하는 항로 견학을 통해 내륙 항해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 사고 역시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선원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이처럼 세토 내해와 같은 내륙 항해를 반드시 이수하도록 규정이 바뀌었다.

시운마루호 사고에서는 익사자가 많이 발생했다. 문부성은 시운마루호 사고 발생 이후 학생들의 익사를 막기 위해 각급 학교에 수영장을 설치했고 체육 교육의 하나로 수영 수업을 필수적으로 하고 있다. 주로 여름방학 직전에 수영 강습을 하는데,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이 되면 대부분의 영법을 구사할 수준에 도달한다. 구조·구난 훈련도 주 4시간씩 반드시 하고 있다.

일본, 1960년대 이후 대형 해난 사고 전무

시운마루호 사고 이후 교통부와 해상보안청, 해양·수산 관계자들을 중심으로 해난에 대비할 전문적인 조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결국 사단법인 형태로 1958년 해난방지협회가 설립됐다. 협회는 해난 방지 강습회를 시작으로 활동을 시작하며 전국에 지부를 설치해 비상망을 확보했다. 민첩한 초동 대응을 위해서다. 이런 노력이 더해져 1950년대까지 빈발하던 대형 해난 사고는 1960년대 이후부터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물은 최근의 사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2009년 11월에 발생한 아리아케호 침몰 사고가 좋은 예다. 도쿄를 출발해 오키나와로 향하던 7910톤, 정원 426명의 아리아케호는 여러모로 세월호와 비슷하다. 11월3일 대형 파도에 선체가 기울면서 복원력을 상실해 침몰했는데 승객을 먼저 갑판 위로 피신시킨 선장의 위기관리 능력, 헬기를 이용한 해상보안청의 신속한 구조로 탑승객과 선원 모두가 무사히 구조됐다. 일본 해상 당국은 아리아케호가 실은 화물이 한쪽으로 쏠려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결론짓고 자동차나 컨테이너 등의 결박이 파도에 풀리지 않도록 결박 방식을 개선했다. 부분적인 약점일지라도 바로바로 개선하는 일본이다. 역사 왜곡 등의 문제와는 별개로 안전문화에서만큼은 일본이 더없이 부러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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