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원이 인간을 갖고 논다
  • 허남웅│영화평론가 ()
  • 승인 2014.07.24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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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성 탈출: 반격의 서막> 박스오피스 1위

시기를 예정보다 일주일 앞당긴 변칙 개봉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혹성 탈출: 반격의 서막>(이하 <반격의 서막>)이 그러거나 말거나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는 저력을 과시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터다. 개봉 전 논란이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으로 작용해 영화에 대한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한 점, 막강한 경쟁자로 점쳐지던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가 기대 이하의 만듦새로 관객몰이를 하지 못한 점, 무엇보다 <반격의 서막>이 영화 자체로 완성도가 높다는 점이 그렇다. 

<반격의 서막>은 인간에게 학대당하던 유인원 무리가 이에 반발해 인간 문명을 혼돈에 빠뜨렸던 <혹성 탈출: 진화의 시작>의 10년 후를 배경으로 한다. 유인원들은 시저(앤디 서키스)를 리더로 삼아 뮤어 숲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평화롭게 살아간다. 하지만 멸종한 줄로만 알았던 인간 몇 명이 뮤어 숲에서 발견되면서 유인원들은 동요한다. 한때 인간과 가족을 이뤘던 시저는 유화책을 펴는 것에 반해, 학대당했던 기억을 여전히 잊지 못하는 코바는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태도로 긴장과 갈등을 조장한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전편과 마찬가지로 <반격의 서막>은 유인원과 인간 간의 전쟁을 큰 줄기로 삼지만 유인원 커뮤니티 내의 시저와 코바에게서 비롯된 내적 갈등을 이야기의 발화점으로 삼는다. <진화의 시작>에서 인간 캐릭터를 제치고(?) 시저가 실질적인 주인공으로 등장하면서 <반격의 서막>이 셰익스피어의 희곡 <줄리어스 시저>를 차용하리라는 건 예상된 바였다. 로마 공화정 말기의 장군이자 정치가였던 시저의 막강한 권력에 반발한 카시우스가 시저의 친구인 브루터스를 회유해 암살 계획을 세웠던 것처럼 <반격의 서막>의 코바는 시저의 아들 파란 눈과 손잡고 시저를 제거할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이 영화가 역사적인 인물을 차용하는 건 비단 시저의 경우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 쪽의 구성을 보면, 유인원과의 협력을 모색하는 인물은 말콤(제이슨 클락)이고 그런 아버지를 따라 유인원과 사이좋게 지내려는 아들의 이름은 알렉산더(코디 스밋 맥피)이며 살아남은 인간들을 규합해 유인원과의 전쟁에 대비하는 이는 드레퓌스(게리 올드만)다. 너무 노골적인 작명이 아니냐고. 인류의 역사가 그렇지 않은가. 신뢰를 바탕으로 평화의 시대를 유지하기보다 반목과 질시로 야기된 전쟁의 역사를 지금까지 끌고 온 것이 바로 인간이다.

반목과 질시로 야기된 인간의 전쟁사

3부작으로 구성된 이 시리즈의 결말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1968년 발표된 <혹성 탈출>에서 유인원이 지배하는 정체불명의 행성에 불시착한 테일러(찰턴 헤스턴)는 반 토막 난 자유의 여신상을 발견하고는 지구를 멸망시킨 어리석은 인간들을 탓하며 울부짖었다. 그렇다면 인류는 어떻게 멸망했는가, 유인원은 어떻게 지구의 새로운 주인이 됐는가를 밝히는 것이 <진화의 시작> <반격의 서막> 등 새로운 3부작의 주 내용인 셈이다. 그리고 영화는 그에 대한 근거를 전쟁으로 얼룩진 인류의 역사에서 찾는다.  

애초 <진화의 시작>이 극 중 배경으로 샌프란시스코를 택한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혹성 탈출>이 선을 보였던 1968년 당시 미국 정부의 베트남 전쟁 참전을 반대했던 젊은 세대는 특히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격렬한 저항을 보였다. 미국 서부에 위치한 샌프란시스코는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그 너머로 아시아와 마주 보는 지형에 속하는데 완전무장한 군인들이 이곳 항구에 집결해 베트남으로 이동했다. 그래서 자연으로의 회귀를 주장하며 전쟁을 반대했던 ‘플라워 세대’는 ‘No’를 외치며 모든 폭력에 반대했다. <진화의 시작>은 샌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기성세대와 플라워 세대, 문명 파괴와 자연보호로 대립된 역사를 인간과 유인원으로 치환해 그대로 영화에 이식했다.

그런 맥락에서 <반격의 서막>에 시저를 비롯해 말콤, 알렉산더, 드레퓌스 등의 이름이 등장한 연유를 파악할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세계사의 중요한 지점을 점유한 역사적 인물들이지만 그 배경에는 모두 갈등의 역사가 놓여 있다. 말콤은 폭력을 사용해서라도 흑인의 권리를 쟁취해야 한다며 비폭력을 주장한 마틴 루터 킹과 반목했고, 알렉산더는 젊은 나이에 전쟁으로 페르시아 영토를 정복한 마케도니아의 왕이었다. 드레퓌스는 유대인에 대한 편견으로 간첩 혐의를 받은 일명 ‘드레퓌스 사건’의 장본인이다. 이 때문에 프랑스는 그를 지지하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로 양분돼 오랫동안 국가적인 갈등을 겪기도 했다.

되풀이되는 갈등의 역사 속에서 인류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화합과 평화를 강조했지만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참혹한 전쟁이 일상처럼 벌어지고 있다. 그렇게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이다. 새로운 <혹성 탈출> 시리즈는 바로 이에 착안해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인류의 비극적인 미래를 예감케 한다.

사실 인간과 유인원의 대립이 축을 이루지만 인류의 대립으로 바라봐도 무방하다. 유인원은 또한 인간의 기원이 아니던가. 이번 영화에서 시저와 코바의 갈등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리라. 유인원이 말을 익히고 문명을 건설하지만 그 속에서 생기는 생각 차이 때문에 인간과 전쟁을 벌인다는 영화의 내용은 그대로 인류 기원 이후의 역사인 셈이다. 영화의 중간, 알렉산더는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오랑우탄에게 자신이 보고 있던 찰스 번즈의 그래픽노블 <블랙홀>을 건넨다. 인간과 유인원, 아니 인류는 여전히 전쟁이라는 역사의 ‘블랙홀’에 갇혀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끝은 결국 파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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