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우외환 감사원, 금감원 들쑤시기
  • 엄민우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4.07.30 17:3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보복성 감사” 논란

지난 7월8일 오전, 감사원 별관에서 열린 세월호 침몰 사고 대응 실태 중간감사 발표 기자회견장. 감사 결과를 발표하는 정길영 감사원 제2사무차장은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럴 만도 했다. 당시 김영호 사무총장은 기자들 무리 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사무총장이 직접 기자회견장을 찾아 브리핑을 챙긴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를 놓고 현장에 있던 일부 인사는 “오죽하면 (사무총장이) 그랬겠는가.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감사원의 상황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해석했다. 그 다음 날 김 총장은 국회 세월호 국정조사 기관보고 자리에 참석하기로 돼 있었다.

금감원 “감사원의 보복성 감사” 불만

감사원이 신뢰성을 의심받는 위기에 처했다. 검찰의 ‘철피아(철도+마피아)’ 수사와 관련해 직원이 비리 연루로 구속되는가 하면, 한 국장급 인사는 전날 마신 술이 덜 깬 상태에서 출근길에 음주운전을 하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7월21일 전격 사퇴한 김진선 전 평창동계올림픽대회조직위원장의 ‘사실상 경질’ 배경에 감사원의 표적 감사가 자리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있다. 일각에선 “감사원을 ‘감사’해야 할 판”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감사원은 사정기관 중에서도 특히 ‘청렴함’과 ‘비정치성’을 생명으로 하는 조직이다. 지난해 8월, 임기를 1년 7개월여나 남겨두고 전격 사퇴한 양건 전 감사원장을 둘러싼 내부 갈등과 외압설 이후에도 악재는 계속 이어지는 모양새다.

지난 4월14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에 참석한 황찬현 감사원장(왼쪽)과 김영호 사무총장. ⓒ 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감사원이 다른 감독기관과 힘겨루기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며 논란이 일고 있다. 사사건건 금융감독원(금감원)과 부딪치는 최근의 행보를 두고 나오는 지적이다. 감사원은 이르면 8월에 금감원에 대한 종합감사를 실시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말인 11~12월에 종합감사를 할 예정이었으나, 8~9월께 하기로 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기존보다 3개월가량 앞당겨진 것이다. 불과 3개월 차이지만 저간의 사정을 알면,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연말이 아닌 8~9월에 감사를 할 경우, 금감원에 대한 평가 결과가 내년도 공공기관 예산 편성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금감원 내부에선 불만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금감원이 마지막으로 종합감사를 받았던 것은 2009년으로 5년이나 지났다. 시기적으로는 종합감사를 하는 것 자체에 하등 이상할 게 없다. 그러나 감사 시기를 앞당긴다는 점과, 그동안 ‘동양그룹 사태’ 등으로 따로 ‘특정 감사’를 받았던 만큼 종합감사가 곧바로 이어지는 데는 뭔가 의도가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두 기관이 각을 세우고 있는 와중이어서 감사원의 종합감사가 “보복성 감사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KB금융그룹 임영록 회장 징계 건에 대한 충돌이 일종의 신호탄이 됐다는 것이다. 금감원과 금융위는 고객 정보 유출과 관련해 임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에게 중징계를 내리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런데 갑자기 감사원이 두 기관에 “국민카드가 국민은행에서 분사할 때 국민은행 고객 정보를 가져간 것은 규정 위반이라는 유권해석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금감원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임 회장에 대한 중징계 심의를 강행한 것이다. 이에 대해 감사원은 상당한 불쾌감을 가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금감원의 ‘반항’은 오래가지 못했다. 금감원이 그대로 중징계를 추진하려고 하자, 감사원은 지난 7월3일 금감원의 조영제 부원장과 박세춘 부원장보를 직접 호출해 임 회장을 중징계한 연유에 대해 추궁한 것으로 전해진다.

임 회장 징계를 놓고 벌어진 감사원과 금감원의 충돌에 대해 금융권과 정치권 안팎에서는 각종 설이 난무했다. ‘경제통’으로 알려진 현 정권의 실세 ㄱ씨와 임 회장의 ‘특별한 인연’이 작용해 임 회장 중징계 방침을 틀어지게 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ㄱ씨와 임 회장은 2010년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을 자문하는 한 기구에서 민간위원으로서 함께 일한 인연이 있다.

임 회장 징계와 관련해 금감원 임원을 호출한 데 이어 감사원은 “‘동양그룹 사태’는 금융 당국의 고질적 업무 태만이 원인”이라며 금감원 금융투자검사국장 등 간부 2명에 대해 문책을 요구했다. 동양 사태는 최수현 금감원장에게도 ‘껄끄러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최 원장은 지난해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에서 여야 의원 모두로부터 동양 사태에 대한 책임을 추궁받은 바 있다. 특히 정진석 동양증권 사장과 고등학교 동기라는 배경 때문에 금융권 및 정치권에서는 한때 ‘봐주기 검사’ 의혹도 제기됐다. 즉 동양 사태는 최 원장의 아킬레스건 중 하나인 셈인데, 이번 감사원의 금감원 직원 문책 결정은 동양 사태에 대한 책임을 공식화한 것이다.

지난 1월22일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이 금융회사 고객 정보 유출 사건 재발 방지 종합대책에 관한 브리핑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금감원이 우리와 급이 같나” 감사원 불쾌

그와 접촉했던 인사에 따르면 김영호 사무총장은 지난해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발생했을 때부터 “금융 당국이 발 빠르게 대처하지 못한 점에 문제가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두 기관의 충돌이 ‘감정싸움’이라는 얘기들이 나온다. 그러나 감사원은 이런 논란이 불쾌하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금감원에 대한 감사 시기를 조정해야 하지 않느냐는 논의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8월에 감사를 할 수 있을지 자체도 불투명하고, 구체적 시기를 정한 적도 없다는 것이다. 또 감사원이 대놓고 금감원에 압박을 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감사원은 동양 사태와 관련한 금감원 직원 징계 건에 대해서는 별다른 브리핑 없이 자료 배포만 하는 식으로 처리했다. 중요한 사안은 꼭 별관에서 따로 브리핑하는 감사원의 평소 행태로 볼 때 금감원과 감정싸움을 한다는 얘기는 과장된 것이라는 의견도 설득력이 있다.

항간에서는 양 기관 간의 갈등은 감사원이 현재 처한 내우외환에서 벗어나기 위한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고 보고 있다. 감사원 사정에 정통한 국회 법사위 소속 한 관계자는 “감사원은 금감원과 파워게임을 한다는 것에 대해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른바 ‘급’이 안 맞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금감원 관련 문제는, 감사원 내부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행보로 보는 게 맞다. 파워게임 논란 자체가 감사원엔 손해”라고 전했다.

사실 감사원이 피감기관인 금감원과 파워게임을 하는 것처럼 비치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의전 서열이나 기관의 위상으로 볼 때 금감원과 힘겨루기를 한다는 모양새 자체가 감사원엔 자존심 상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조직 위상이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감사원으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감사에 대해서도 뒷말이 무성하다.

 

선장 바뀌어도 표류하는 ‘감사원호’ 


지난 6월26일은 감사원에 뼈아픈 날이다. 이날은 황찬현 원장 체제의 감사원이 그동안 야심 차게 준비해온 ‘감사원 발전 방안’을 발표하기로 한 날이다. 그동안 황 원장이 강조해온 ‘신뢰받는 감사원’이 발표되려는 순간이었다. 브리핑 장소도 주요 이슈를 발표할 때 사용하는 2별관으로 잡았다.

그날 오전 뜻밖의 사건이 터졌다. 계속되는 총리 낙마에 결국 청와대가 정홍원 총리 유임 결정을 내린 것이다. 뉴스는 그 소식으로 도배됐고, 결국 감사원의 야심작 발표는 ‘정홍원 재활용’  뉴스에 묻히고 말았다. 이에 대해 감사원의 한 관계자는 “법원 일 처리 방식으로 업무를 진행하려다가 생긴 문제”라는 불만을 토로했다. 판사 출신인 황 원장의 스타일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황찬현 원장은 전임자인 양건 전 원장과는 정반대 스타일이다. 양 전 원장이 적극적으로 나서 진두지휘하고 돌발적 발언도 마다않는 ‘행동파’였다면, 황 원장은 좀체 앞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점잔을 빼는 ‘샌님 스타일’이다.

청와대가 직접 임명하는 원장과 달리 내부 사정에 정통한 사무총장이 실권을 갖고 움직이는 게 감사원이라는 조직의 특성이지만, 특히나 ‘점잖은’ 원장 탓에 김영호 사무총장이 전면에 나설 때가 많다. 지난 7월9일 국회에서 열린 ‘세월호 국조특위’ 때도 김 총장이 참석했는데, 해당 자리는 원장이 참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국회 법사위 소속의 한 관계자는 “보통 기관보고 등을 할 때 총장은 누군지 신경 안 쓰고 원장에 집중한다. 그동안 여러 원장 체제를 경험해봤지만 요즘처럼 사무총장이 부각되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황 원장과 김 사무총장의 관계는 겉으론 나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오히려 원장을 대신해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김 총장이 황 원장에게 의지가 되고 있다는 전언이다. 지난해 김 총장이 양건 전 원장과 사사건건 부딪치는 모습을 보였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양 전 원장이 물러나고 황 원장이 취임하던 당시 감사원은 4대강 감사와 관련해 기관의 위신이 땅에 떨어져 있던 상황이었다. 황 원장은 취임사에서만 신뢰라는 단어를 11번이나 사용했다. 그러나 취임한 지 약 8개월이 돼가지만, 감사원의 위상은 별반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황 원장이 강조하는 ‘신뢰받는 감사원’이 되기 위해서는 내부 청소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제3회 시사저널 대학언론상 참가]  [시사저널 페이스북]  [시사저널 트위터]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