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언, 서로 못 잡길 은근히 바랐다?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4.07.31 11:3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검·경 수사 공조 안 돼…공 뺏길까 정보 차단하며 견제

이쯤 되면 한 편의 ‘코미디’라고밖에 할 수 없다. 지난 6월12일 전남 순천에서 발견된 변사체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으로 밝혀지면서 유 전 회장을 쫓던 검·경은 ‘닭 쫓던 개’ 신세로 전락했고, 세월호 참사의 모든 책임을 유 전 회장에게 전가하려는 듯했던 박근혜정부는 웃지 못할 촌극의 주인공이 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의 근본 원인을 유병언 일가로 지목했다. 정부의 부실한 초동 대처가 참사를 키우는 원인이 됐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들끓는 상황에서 유 전 회장은 박근혜정부의 피난처였다.

대통령 한마디에 군까지 동원

최고 권력자의 말 한마디에 유 전 회장의 검거를 위해 말 그대로 모든 수단이 동원됐다. 유 전 회장의 변사체가 발견된 6월 중순께로 돌아가보자. 6월10일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회의석상에서 “지금 유병언 검거를 위해서 검·경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이렇게 못 잡고 있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검거 방식을 재점검하고 다른 추가적인 방법은 없는지, 모든 수단과 방법을 검토해서 반드시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김진태 검찰총장, 이성한 경찰청장 ⓒ 연합뉴스
대통령의 불호령에 형사사범을 검거하는 데 군(軍)까지 동원됐다. 육·해·공군이 모두 나서 유 전 회장의 밀항에 대비해 해안 감시를 강화했다. 검찰은 긴급 유관 기관 회의를 열어 범정부적인 협력을 요청했고 안전행정부는 검거를 지원하기 위해 전국 시·군·구에서 임시반상회를 열었다. 임시반상회가 열린 것은 2009년 신종플루 때와 2010년 연평도 포격 직후 민간인 대피 훈련 때뿐으로, 형사사범을 검거하기 위해 열린 것은 처음이다. 경찰은 1년 동안 쓸 수 있는 전체 신고보상금 예산의 절반인 6억원을 유병언 부자에게 걸었고, 법원은 통상 일주일인 구속영장의 유효 기간을 두 달로 대폭 늘렸다. 대한민국이 마치 유 전 회장과 전쟁을 벌이는 듯했다. 그러나 이때 이미 유 전 회장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군·검·경은 물론 민간인까지 동원된 대대적인 검거 작전과는 달리 유 전 회장에게 적용된 혐의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에 불과했다. 유 전 회장이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회장으로 있으면서 청해진해운 등 법인 자금을 횡령·배임하고 조세포탈을 했다는 것이다. 다만 검찰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유 전 회장에게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를 적용할 방침이었다. 이마저도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한 검찰 관계자는 “유 전 회장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과실치사상죄를 적용받는다면, 기업 오너 중에 안 걸릴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느냐. 검찰은 일단 (과실치사상죄로) 기소해놓고, 공은 판결을 내리는 법원으로 넘기면 그만이다. 법원도 정권의 뜻을 무시할 수만은 없을 것이라는 계산이 있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한심한 유병언 수사, 청와대 책임 크다”

대통령의 계속된 재촉은 수사에 결코 도움이 되지 못했다. 검·경 중 어느 한쪽에서 유 전 회장을 검거하게 되면 모든 공을 차지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처음부터 공조를 기대할 수 없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검찰은 유 전 회장과 관련된 고급 정보를 경찰에 제공하지 않았고, 유 전 회장이 도피했던 송치재 별장에 대한 압수수색 당시에도 경찰을 철저히 따돌렸다. 그 결과 송치재 비밀방에 숨어 있던 유 전 회장은 유유히 수사망을 벗어날 수 있었다. 최고 권력자의 조급함이 수사 당국에 그대로 전달됐고, 이로 인해 부실 수사가 이뤄질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이다.

부실 수사 모습은 7월21일에 집약적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유 전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만료되기 하루 전인 이날, 6개월 시한의 구속영장을 재발부받았다. 통상 구속영장 유효 기한이 일주일 정도인 데 반해, 유 전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은 그 전 영장 기한이 2개월이었던 점까지 포함해 매우 이례적인 경우다. 또한 장기 도주자의 경우 기소중지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여기에 임정혁 대검 차장이 직접 브리핑까지 하며 “유병언과 그의 아들을 검거하지 못한 점에 대해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추적에 더욱 총력을 기울여 반드시 검거할 것을 약속드린다”고까지 했다.

그런데 그날 밤 대형 사고가 터졌다. 경찰이 단순 변사 사고로 처리했던 시신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 DNA 분석 결과 유 전 회장으로 밝혀진 것이다. 저녁 8시쯤 국과수의 통보를 받은 경찰은 부리나케 변사체의 지문까지 확인한 후 새벽 1시 무렵 유 전 회장임을 최종 확인했다. 결과적으로 검찰은 ‘망자’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한 셈이 됐고, 경찰은 ‘업은 아이를 찾아다닌’ 꼴이 됐다.

검·경 수뇌부에 대한 책임론이 뒤따랐다. 유 전 회장 수사를 총괄 지휘했던 최재경 인천지검장이 사표를 제출했고, 인천지검 특별수사팀의 부장검사 이상 간부들도 사표를 냈지만 반려됐다. 경찰에서도 줄사표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검·경 최고위층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수사 일선에서는 “억울하다”는 얘기도 들린다. 인천지검 한 관계자는 “애초부터 무리하게 진행된 수사였다. 구속영장을 재발부할 것이 아니라 기소중지를 해서 차분하게 장기전으로 갔어야 했다. 그러나 VIP(박 대통령)가 누차 유 전 회장 검거를 촉구하면서 우리(검찰)도 밀어붙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VIP의 짐을 (유 전 회장에 대한 수사로) 덜어준 것은 검찰이지 않으냐”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의 주범으로 지목했던 유 전 회장이 사망했지만,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은 7월24일 세월호 참사 100일을 맞아 안산 합동분양소에서 서울역 광장까지 도보행진을 벌였다. 장맛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였다. 이들의 주장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 단 하나였다. 그러나 7월21일부터 세월호 특별법 처리를 위해 가동된 7월 임시국회는 여전히 개점휴업 상태다. 여기에 유 전 회장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에 모든 관심이 집중되면서 정작 세월호 참사는 잊혀져가고 있다. 

 

[제3회 시사저널 대학언론상 참가]  [시사저널 페이스북]  [시사저널 트위터]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