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화제분 여직원이 대출 서류 대신 사인”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4.07.31 13:0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원석 대표 법정 증언…하나은행, 460억 수상한 대출

박만송 삼화제분 회장의 부인 정상례씨는 지난 5월 하나은행을 상대로 근저당 말소 소송을 제기했다. 아들인 박원석 삼화제분 대표가 2010년 12월부터 2012년 8월까지 4차례에 걸쳐 460억원 상당을 대출 받는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게 골자다.

정씨는 소장에서 “하나은행이 등기소에 제출한 근저당 설정 신청 서류의 주민등록증 앞면과 뒷면이 다르다”며 “대출 과정에서 박 회장의 인감도장이나 자서(서명)가 위조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7월17일 오후 서울중앙지방법원 동관 561호에서 관련 사건 재판이 열렸다. 이날 재판에는 박원석 대표뿐 아니라 박만송 회장의 차녀 박 아무개씨, 하나은행 대출 담당 김 아무개씨 등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박 대표는 공판에서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기 전까지 자식들의 인감도장을 모두 보관하고 있었다”며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비슷한 도장이 두 개여서 감정 결과가 다른 것이다. 인감 위조는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서울 중구 을지로1가 하나은행 본점 ⓒ 시사저널 구윤성
박 회장 차녀 “서류에 도장 찍은 기억 없다”

하나은행의 대출 담당 직원 김 아무개씨도 “대출 서류의 날인을 받기 위해 강동구 성내동에 위치한 G골프연습장을 방문했다”며 “서류에 자서를 받을 때는 잠시 자리를 비웠지만, 박 회장이 도장을 찍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재판부는 입증 서류를 보강해 추가로 제출할 것을 원고와 피고 측에 요청했다. 실제 대출 주체가 박만송 회장인지, 아니면 박 대표가 인감 등을 위조한 것인지는 재판 결과를 지켜봐야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불똥은 하나은행으로 튀었다. 박 회장이든, 박 대표든 간에 특혜에 가까운 대출을 해준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박 회장 일가는 하나은행에서 460억원을 대출받으면서 서울과 경기도의 부동산을 담보로 제공했다. 박 회장을 비롯해 네 명의 딸이 현재 이 부동산의 지분을 나눠 갖고 있다. 이들이 보증인으로 대출에 참여했고, 하나은행 서류에도 이들 다섯 명의 도장과 자서가 날인돼 있다.

이날 증인으로 참석한 박 회장의 차녀 박 아무개씨는 그러나 “대출 서류에 도장을 찍거나 사인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박 회장이 딸들의 인감도장을 대신 날인했기 때문이다. 대출 서류의 자서는 삼화제분 여직원이 대신했다. 박 대표는 “아버지의 사인은 내가 대신 했고, 누나와 여동생의 사인은 삼화제분 여직원들이 대신 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박만송 회장은 건강 문제로 매년 9월 이후에는 서울에 머무르지 않는다. 하나은행은 9월 이전에 서류를 작성한 후, 은행 금고에 보관해뒀다가 한꺼번에 처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나은행이나 하나금융지주 측은 “직원 개인의 문제”라고 선을 긋고 있다. 지주사의 한 관계자는 “내부 규정상 도장이나 자서를 끝까지 받는 것은 당연하다”며 “(은행) 직원에게 잠깐 나가 있으라고 하고 자서란에 날인한 거 같다. 박 회장이 수년간 정상적으로 거래했기 때문에 자서 확인을 소홀히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5월 소송 직후에 은행 준법지원부 차원에서 조사를 벌였다”며 “아직 소송이 진행 중이다. 법률적 판단에 따라 후속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은행권에서는 시스템 문제를 제기한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은행 대출을 받을 때 본인 확인은 기본 중의 기본”이라며 “일반이라면 과연 그렇게 했겠느냐”고 꼬집었다. 정씨의 변호인도 관련 절차나 시스템 문제를 제기했다. 하나은행 대출 담당 김 아무개씨는 “박만송 회장은 예금만 수백억 원대인 VIP”라며 “대기업 회장의 경우 관행적으로 그런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변했다.

김종준 하나은행장을 포함한 경영진도 일부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김 행장은 최근 금융 당국으로부터 문책경고 상당의 중징계를 받았다. 하나캐피탈 사장 재직 시절 미래저축은행을 부당 지원한 사실이 금융 당국에 적발됐기 때문이다. 문책경고 이상의 중징계를 받은 금융회사 임원은 3~5년간 금융권 재취업이 제한된다. 금융 당국은 제재 내역을 조기 공개하면서 자진 사퇴를 유도했지만 김 행장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김 행장은 측근들에게 “임기가 끝날 때까지 소임을 다하는 것이 도리”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7월17일 박원석 삼화제분 대표(맨 오른쪽)가 모친 정상례씨와의 소송 공판을 마치고 변호사 등과 법원을 나오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사퇴 압박 받는 김종준 행장 입지 흔들

2월 터진 KT ENS 부실 대출 사태로 김 행장의 거취 문제가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KT ENS와 협력업체 직원들은 그동안 허위 매출 채권을 발행하는 방식으로 특수목적법인(SPC)을 통해 1조8000억원 상당을 대출받았다. 이 중 2894억원을 상환하지 않다가 사정기관에 의해 철퇴를 맞았다. 하나은행의 경우 1조926억원을 대출해줬다가 1571억원을 회수하지 못했다. 하나금융의 올해 1분기 순익은 1927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3.1%나 급감했다.

하나은행 대출 심사 과정에서 일부 문제가 금융 당국에 적발됐다. 금감원은 하나은행을 포함한 16개 금융회사 임직원 100명에 대한 징계를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하나은행의 경우 16개 금융회사 중에서 피해액이 가장 많았기 때문에 제재 대상자 또한 50여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김 행장 역시 주의적 경고 정도의 제재를 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지 않아도 퇴진 압력에 시달리던 김 행장의 입지는 더욱 좁아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해 하나금융지주 측은 “금융 당국의 사전 징계 예고서를 아직 받지 못했다. 징계가 내려오면 받아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 의사 결정 과정에 행장은 포함되지도 않았다. 삼화제분 대출의 경우 프로세스에 일부 미진한 부분이 있지만 절차상 문제는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제3회 시사저널 대학언론상 참가]  [시사저널 페이스북]  [시사저널 트위터]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