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총재 팔 비틀어 하는 금리 인하는 안 돼
  • 안동현 |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
  • 승인 2014.07.31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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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LTV·DTI 완화…부동산 시장 거품 일으킬 수도

우여곡절 끝에 2기 내각이 출범했다. 첫 번째 국무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금융과 재정을 비롯해 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써 경제 살리기를 위한 총력전을 펼쳐달라”고 주문한 것은 만시지탄이지만, 실물경제의 위기 탈출에 주목하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아직도 분명히 정의되지 않는 ‘창조경제’ 주창 이후 박근혜정부의 경제정책이 실제 존재하기나 한 것인지에 대해 많은 사람이 의문을 가지고 있던 터였다. 1기 경제팀을 맡았던 현오석 부총리의 경제팀은 ‘무정책이 정책’으로 여겨질 정도로 명확한 방향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구원투수로 등장한 최경환 부총리는 ‘소득 주도 성장론’을 기치로 가계소득 증대를 통한 내수 진작, 기업 이익 재투자, 부동산 대출 규제 완화를 중심으로 강력한 경기부양책 시행을 천명하고 있다.

금리 인하 효과 크지 않을 것

전반적으로 ‘소득 증대를 통해 내수를 진작시켜 경제를 부양하겠다’는 방향성 및 ‘기업 이익의 가계 이전 통로를 확대한다’는 구체적인 정책은 점수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실세 총리의 등판으로 경제 부처의 컨트롤타워 기능도 제고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금리 인하를 비롯해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부동산 금융 규제를 완화하는 정책에 대해서는 우려가 있다.

7월21일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첫 만남을 갖고 있다. ⓒ 연합뉴스

먼저 정책 시행의 첫 번째 조치로 점쳐지고 있는 금리 인하 카드를 보자. 금리 결정 권한은 정부나 경제부총리가 아닌 한국은행에 있다. 금리 인하를 위해선 당연히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한국은행과 충분한 의견 교환과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정부 실세로 평가받고 있는 경제부총리가 한은 총재와 만나기도 전에 언론을 통해 금리 인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독립성을 생명으로 하는 한국은행의 정책 결정권에 대한 압력으로 비칠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실제 금리 인하가 효과를 발휘할 것인가. 여러 견해가 있겠지만 필자는 그 효과가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 금리 인하의 기본적인 목적은 더 많은 자금(유동성)을 공급해 소비와 투자를 증대시키는 것인데 우리나라 경제의 문제는 유동성 부족이 아니다. 실제 현재 2.5% 수준인 기준금리와 이를 기반으로 결정되는 2%대의 예금금리가 높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많지 않다. 물론 대출 금리는 이보다 높지만 금리가 조금 더 낮아진다고 해서 더 많은 대출을 받으려는 기업이나 가계는 많지 않을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은 오히려 유동성 함정에 빠져 있어 금리 인하 카드는 소문에 비해 실물경제에는 효과가 없을 가능성이 크다. 사상 최대 규모인 1000조원이 넘는 가계대출 규모, 500조원을 넘나드는 10대 기업의 사내 유보 등을 고려할 때 금리 인하를 통해 추가로 공급할 수 있는 시장의 유동성은 부동산 투기에 소요되는 일부 자금에 국한될 수도 있다.

경제부총리는 경제의 선순환을 위해 기업이 사내 유보금을 지나치게 많이 보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적정 수준 이상의 유보금은 투자·배당으로 기업 밖으로 공급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삼성전자·현대자동차 등 일부 상위 기업을 제외한 우리나라 기업의 유보율은 생각만큼 높지 않다. 단순히 시장에 유동성을 제공한다고 해서 기업의 투자 의지가 고취될 것인가도 의문이다. 임금을 인상한다거나 배당을 늘리는 게 가처분소득 증대를 통해 소비를 촉진할 것으로 기대되지만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에 지갑을 열지 않는 현재 가계의 소비 행태를 고려하면 그 효과는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내세운 내부 유보자금에 대한 법인세 도입도 효과 면에서는 별 차이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법인세에 대한 이중 과세 논란에도 우리나라에서는 1968년부터 사내 유보금에 대한 과세제도를 유지해온 경험이 있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자기자본 확충에 저해된다는 이유로 2001년 폐지될 때까지 ‘지상 배당소득세’란 명칭으로 배당되지 않은 이익에 대해 주주에게 배당된 것으로 간주해 개인소득세를 부과했던 것이다. 유사한 제도는 일부 국가에서도 시행되고 있으나 그 목적은 투자촉진이 아니라 세금 회피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사내 유보금에 법인세를 부과하는 네거티브 정책도 의미가 있겠지만 임금 인상이나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시 세제 혜택 등 포지티브 정책을 병행한다면 그 효과가 더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 사내 유보가 거의 없는 내수 관련 중견기업과 중소기업 중 유동성이 취약한 일부 기업은 금리 인하로 혜택을 입을 수는 있으나, 경제의 불확실성이 제거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들 기업에 대한 유동성 공급은 한계 기업의 생명력만 연장해주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금리 인하로 인해 가장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가계 부문이다. 금리 인하는 천문학적 가계부채의 디레버리징(deleveraging)에 역행하는 정책이다. 이르면 내년 중반, 아무리 늦어도 내후년 초반이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예측되는데, 여기에 후행해서 한은이 금리를 인상한다고 하더라도 금리 인상까지 남은 기간은 1년 내지 2년밖에 되지 않는다. 금리 인하 카드가 효과를 발휘하기에는 길지 않은 기간이다. 게다가 금리 인하를 통한 가계의 소비 여력 증가도 기대하기 어렵다. 오히려 부동산 규제 완화와 함께 투기 세력의 펀딩 코스트를 낮춰 투기 자금 공급만 늘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더불어 최근 베이비붐 세대 은퇴와 더불어 자영업자 수가 급격히 증가했음에도 내수 부진으로 인해 이들의 생계형 대출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추세를 감안하면 이자 부담 경감보다는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른 임대료 상승이라는 더 직접적인 문제를 초래할 수도 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시 세제 혜택

또 다른 축으로 추진되고 있는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나 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는 실패할 경우 가계대출 문제를 폭발시킬 수 있다. DTI에 비해 특히 LTV 완화는 시스템 리스크와 관련돼 있기 때문에 조심해서 다뤄야 할 주제인데 이미 외국의 신용평가사나 투자은행이 이러한 조치에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반대로 이 정책이 성공해 거래가 활성화되더라도 그동안 잠재돼 있던 투기 심리에 불을 붙여 부동산 가격을 폭등시킬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집 매매 수요가 줄어든 것은 부동산 가격에 대한 부정적 전망으로 대기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일부 아파트의 경우 전세가가 매매가의 70%에 육박한다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만큼 인화성이 높은 사안이고 성공해도 문제, 실패하면 더 큰 문제가 될 양날의 칼이다. 시장의 가격 조정 기능이 상대적으로 낮아 ‘거품과 붕괴’에 취약한 곳이 부동산 시장이다. 물론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인해 소비가 침체되고 중산층이 부실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부동산 시장에 거품을 다시 일으킬 소지가 있는 정책은 또 다른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고 부의 편중 현상을 심화시킬 수 있다.

따라서 현재 시점에서는 금리를 동결하되 기업의 유휴 자금이 가계로 흘러 들어갈 수 있도록 유도해 가계의 소비 여력을 점진적으로 향상시키고, 분배 구조 개선을 통해 계층 간 갈등 구조를 해소하는 것이 급선무다. 경제 활성화를 기치로 내건 2기 내각의 바쁜 마음은 이해되지만, 경제는 서두른다고, 또 의지만 있다고 살아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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