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없으면 희망도 없다”
  • 조철│문화 칼럼니스트 ()
  • 승인 2014.07.31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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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집 <사랑할 것> 펴낸 강상중 일본 세이가쿠인 대학 학장

세월호 참사 유가족의 심정이 어떨지 잘 아는 재일교포가 있다. 재일 한국인 최초로 도쿄 대학 정교수가 돼 주목을 받았던 강상중 교수(64). 정치학자로서 현재 세이가쿠인 대학 학장에 재임 중인 그가 최근 <사랑할 것>이라는 에세이집을 펴냈다. 아사히신문사에서 발행하는 잡지 <아에라(AERA)>에 4년여 연재했던 칼럼을 모은 것인데, 현대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짚어가며 이 시대가 안고 있는 고민과 어려움, 아픔, 과제를 이야기해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강 학장은 1950년 일본 규슈 구마모토 현에서 폐품수집상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으로 건너가 정착한 재일교포 1세다. 그는 그동안 한국 사회의 문제와 재일 한국인이 겪는 차별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행동해왔다. 2011년 3·11 동일본 대지진을 겪은 뒤 <살아야 하는 이유>를 펴내 충격에 빠진 일본인들을 위로하기도 했다.

ⓒ 지식의숲 제공
같은 시대 살아가는 사람을 위한 이야기

강 학장은 신간을 내면서 세월호 참사 등으로 일본 못지않게 충격에 빠진 한국에 위로의 메시지와 대안을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살아야 하는 이유>뿐 아니라 <사랑할 것>에서도 우리 시대 삶의 조건과 삶의 의미에 대해 묻고 고민한다. 특수한 시대적 조건에서 불안한 삶을 살아가는 개인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나와 내 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당신 역시 비슷한 고민을 하고, 비슷한 방법으로 극복해갈 것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인데도 강 학장의 말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것은 그 또한 비극의 중심에서 절규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강 학장은 정신질환을 앓던 아들이 자살했을 때 “비극은 희극보다 위대하다”면서 충격을 이겨냈다. 그가 한 말은 최근 한국이 겪은 일련의 충격적인 상황에도 부합할 듯하다.

“사람은 생사의 갈림길을 헤맬 정도로 마음의 병을 앓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을 빠져나간 지경에 도달하고 세계의 새로운 가치라든가 그때까지와는 다른 인생의 의미 같은 것을 포착할 수 있다.” 고통의 시간을 통과한 뒤에 진정한 삶의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강 학장의 메시지가 한국인에게도 강한 울림을 주는 것은 불안한 시대라는 점에는 국경이 없기 때문이다.

2011년 일본의 사회 시스템이 흔들리고 개인의 삶의 조건이 피폐해가던 와중에 발생한 3·11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2만여 명이 숨지거나 실종됐고 방사능에 대한 공포 등으로 일부 지역은 폐허로 버려둬야 했다. 당시 도쿄 대학 교수였던 강 학장은 과학에 대한 신앙적 숭배를 지적하며, 합리화를 기치로 발전해온 사회 시스템의 한계가 우연적인 자연 현상과 만나 대참사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사회에 만연한 불안과 좌절은 대참사를 계기로 임계점을 넘어버렸고, 사람들은 통제할 수 없는 자연 현상에 대한 두려움과 현재의 삶을 떠받쳐온 토대가 무너졌다는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자신에 대한 불안감, 더 이상의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는 사회, 불신만 키우는 국가. 이것은 비단 일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한국에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있고, 세월호 참사에서 엿볼 수 있듯 다양한 사회 부조리가 판을 치는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강 학장은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제도 정비를 포함해 한국 사회가 전반적으로 달라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는 <사랑할 것>을 통해 스스로의 삶, 내가 속한 사회, 국가에 대한 고민에서 무엇보다 ‘사랑’이 바탕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타인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고 공감함으로써 긍정적으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랑’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 지금 ‘사랑’을 말하는가

강 학장은 한국 사회도 고도 성장이 끝나고 저출산·고령화가 진행되는 사회로 변화하면서 마음 설레는 일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시기를 맞았다고 진단한다. 외환위기 때 광복 이후 처음으로 성장에 대한 자신감을 잃었지만 곧 회복해 세계화 대열에 합류해 국가와 국민 모두 효율과 경쟁, 이익을 추구했다. 점점 높아지는 자살률·이혼율 등 부작용도 심화됐다. 강 학장은 “그것이 재난인 줄 모르고 살아오다가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부조리한 사회의 이면을 들여다보게 된 것이다. 떠들썩하던 분위기는 가라앉고 다들 숙연하게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최근의 이상한 살인 사건을 보면 자살을 생각하면서 현실적으로는 타살을 기도하는 사례가 몇 차례 있었다. ‘죽고 싶으면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말고 혼자 죽어.’ 이런 말밖에 나오지 않는 사회는 분명 병든 사회다. 앞으로 10년 동안 3만명 이상의 자살자가 계속 나온다면 이 사회는 지금보다 더욱 살아갈 가치가 없는 곳이 될 것이다.”

일본을 두고 한 이 말은 한국에도 적용되는 말이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강 학장은 서로에 대한 관심, 즉 ‘사랑’으로 세월호 참사만큼 끔찍한 자살률 1위라는 위기를 극복해야 하지만 그 전에 개인이 이를 극복할 힘을 갖기를 권한다.

“요즘 같은 불확실한 시대 속에서 확실한 것을 찾아낼 수는 없다. 그럴 때 뭔가에 의지해서 선택할지 헤매는 사람에게 ‘어떻게 되겠지’를 추천한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의 처지에 맞게 살아가면서 삶의 경지를 가질 때 비로소 강한 힘을 발휘하는 철학이다. 결국 ‘고민하는 힘’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강 학장은 <살아야 하는 이유>를 펴냈을 때도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기가 죽을 필요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도 괜찮다는 것. 지금이 괴로워 견딜 수 없어도, 시시한 인생이라 생각되어도, 마침내 인생이 끝나는 1초 전까지 좋은 인생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는 것. 특별히 적극적인 일을 할 수 없어도, 특별히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없어도, 지금 거기에 있는 것만으로 당신은 충분히 당신답다”고 젊은이들을 위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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