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위 경영 성공 신화’ 뒤에 가려진 ‘검은 거래’ 의혹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4.08.06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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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철곤 오리온 회장 ‘1조 재산’ 형성 과정 미스터리로 남아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은 국내 재벌가에 ‘사위 경영’을 안착시킨 대표적인 기업인으로 꼽힌다. 미국 조지워싱턴 대학을 나온 뒤 1980년 동양시멘트 자재부 대리로 동양그룹에 발을 들여놓은 담 회장은 창업주인 고 이양구 회장의 차녀 이화경 오리온그룹 부회장과 결혼했다. 검사 출신의 손윗동서인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이 주로 금융 분야를 이끌었다면, 입사 2년 차에 동양제과로 자리를 옮긴 그는 주로 식음료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장인 이양구 회장이 1989년 별세하면서 ‘대권’은 맏사위인 현 회장에게 넘어갔고, 동양제과를 물려받은 담 회장은 2001년 계열 분리에 나서 2003년 오리온그룹을 출범시켰다. 이후 10여 년이 지난 지금 오리온은 자산 규모가 3조원에 가까울 정도로 덩치가 커졌다. 담 회장의 재산 역시 1조원이 넘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 ⓒ 연합뉴스
이재용·정몽준보다 배당금 많이 받아

현재 담 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오리온 주식은 77만626주로 전체의 12.9%에 이른다. 부인 이화경 부회장(86만5204주, 14.5%) 다음으로 많다. 7월31일 종가(주당 94만3000원)를 기준으로 7267억원어치에 해당한다. 배당 수익도 상당하다. 시사저널이 CEO스코어와 함께 국내 100대 그룹 대주주의 지난해 배당액을 조사한 결과 담 회장은 174억원으로 12위에 올랐다.

이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180억원)과 비슷한 수준으로, 삼성그룹 후계자 1순위인 이재용 부회장(156억원)과 현대중공업의 최대주주인 정몽준 전 새누리당 의원(154억원)이 받은 배당금보다 많다. 30여 년 전 맨손으로 동양그룹에 입성한 화교 3세 출신의 청년이 지금은 유력 재벌가의 직계 후손들 부럽지 않은 부를 일군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성공 신화’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지난해 담 회장에게 지급된 배당금 중 150억8800만원은 비상장 법인 계열사인 아이팩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포장재 생산 전문 기업인 아이팩은 매출의 80%를 오리온 계열사에서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담 회장이 최대주주로 지분 53.3%(18만4000주)를 갖고 있고, 나머지 지분 46.7%(16만1000주)는 자회사인 PLI(Prime Link International Investment Limited)가 보유하고 있다. 소재지가 홍콩인 PLI는 아이팩이 지분 100%를 보유한 상호 출자 회사다.

그런데 지난해 아이팩의 사업 실적은 매출액 403억4000여 만원에 영업이익 8억여 원, 순이익 24억8000여 만원이었다. 결과적으로 순이익의 6배가 넘는 배당금을 담 회장 한 명에게 지급한 셈이다. 주식 액면가(5000원) 대비 배당률을 따지면 1640%에 이른다. 오리온그룹 측은 “기존에 축적된 이익 잉여금 한도 내에서 배당한 것”이라며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여전히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적지 않다.

일단 무슨 돈으로 배당을 한 걸까. 이와 관련해 PLI가 100% 지분을 갖고 있는 랑방아이팩(Langfang Ipak Packing)이 지난해 236억여 원을 배당한 사실이 확인됐다. 3월31일 공시된 아이팩의 연결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자산 총액이 20억여 원인 PLI는 지난해 매출액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당기손익이 257억원인 것으로 나와 있다. 아이팩의 손자 회사이자 PLI의 자회사인 랑방아이팩의 지분을 매각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랑방아이팩은 중국에서 아이팩과 같은 역할을 하는 회사다. 현지에서 판매되는 오리온 제품의 포장지를 생산해 납품한다. 오리온의 중국 매출은 2012년에 이미 1조원을 돌파했다. 내년 매출 목표가 1조8000억원이다.

포장재 생산 전문 기업 ‘아이팩’의 경기도 안산시 원시동 사옥 ⓒ 시사저널 박은숙 서울 용산구 문배동 오리온그룹 본사 ⓒ 시사저널 구윤성
중국 알짜 자회사 홍콩 법인 통해 ‘저가 인수’

그런 만큼 랑방아이팩의 매출도 상당하다. 2007년 매출액 167억6000여 만원에 당기순이익 34억600여 만원, 2008년 매출액 230억9000만원에 당기순이익 34억6000여 만원, 2009년 매출액 151억8000여 만원에 당기순이익 29억여 원, 2010년 매출액 200억여 원에 당기순이익 15억여 원 등의 실적을 올렸다.

그런데 PLI가 이 회사를 인수하는 과정에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이는 2011년 불거진 이른바 ‘오리온 비자금’ 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결에서 잘 나타난다. 원래 랑방아이팩(당시 랑방애보포장유한공사)은 2002년 아이팩이 100% 투자해 설립한 중국 자회사였다. 2006년 1만 홍콩달러(약 127만원)에 설립된 PLI는 우량 기업인 이 회사를 저가에 인수한 후 주주 배당금으로 아이팩의 차명 주식을 인수할 계획이었다.

아이팩 북경대표처의 신 아무개 대표가 아이팩의 중국 자회사들로부터 200만 달러를 빼돌려 인수 자금을 조성한 다음 개인적으로 PLI에 빌려주는 형식으로 돈을 제공했다. PLI는 여기에다 현지 금융기관에서 대출받은 20만 달러를 추가해 220만 달러(약 22억원)로 랑방아이팩을 인수했다. 당시 랑방아이팩의 기업 가치 평가액은 순자산 가치 기준으로 53억3000여 만원이었다. 인수 자금 마련부터 순차적으로 지시한 사람이 바로 담 회장이었다.

상황이 이렇다면 지난해 랑방아이팩의 지분이 어디로 매각됐는지도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이팩처럼 담 회장이 지분을 확보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 대표는 중국 법인을 통한 비자금 조성 혐의로 수사 대상에 올랐던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국내로 들어오지 않았고 결국 관련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자금 ‘스포츠토토→아이팩→담 회장’ 의혹

어찌 됐건 담 회장은 자신이 최대주주로 있는 회사가 보유한 자산을 매각한 자금으로 거액의 배당금을 지급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행태는 2011년에도 지적된 바 있다. 아이팩은 당시 담 회장에게 무려 200억5600만원을 배당했다. 주식 액면가 대비 배당률이 2180%에 이르렀다. 이와 관련해 아이팩이 2009년 말 서울 논현동 10층 건물을 스포츠토토에 팔아서 발생한 자금이 담 회장에게 배당금으로 지급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논현동 건물은 장부가액이 225억원이었다. 그런데 실제 매매는 698억원에 이뤄졌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오리온의 자회사인 스포츠토토가 이른바 ‘가격 부풀리기’를 통해 아이팩에 막대한 이익을 안겨줬고, 그 자금이 담 회장 쪽으로 흘러들어간 게 아니냐는 것이다. 오리온그룹 측 해명대로 이익 잉여금을 배당했다고 하더라도 2010년 담 회장이 최대주주로 올라서자마자 2000%대 배당금을 지급한 것에 대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이팩은 담 회장이 2010년 지분을 매입하기 전부터 그의 개인 회사라는 의심을 받아왔다. 당시 아이팩 지분은  PLI가 35.8%, 김 아무개 아이팩 대표가 21%, 동양창업투자가 16.7%, 박 아무개 아이팩 회장이 11.5%를 갖고 있었다. 여기서 김 대표와 박 회장이 보유한 지분이 사실상 담 회장의 차명 주식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오리온 비자금’ 사건 재판 때는 물론 이듬해인 2012년 중순 시작된 ‘스포츠토토 비자금’ 사건 재판 때도 거론됐던 사안이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당시 수사 및 재판 자료에 따르면, 박 회장은 아이팩에 근무하지도 않으면서 형식상 회장 직책을 맡았고 급여 및 퇴직금을 지급한 것처럼 가장해 비자금을 조성했다. 이렇게 만든 38억여 원을 사용한 인물로 담 회장이 지목됐고, 박 회장의 주식 매각 대금도 결국 담 회장의 돈이라고 확인한 증언도 나왔다.

오리온그룹 측 “전혀 사실 아니다”

스포츠토토 비자금 조성에 앞장선 드림네스트도 아이팩과 마찬가지로 담 회장의 개인 회사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드림네스트는 2004년 스포츠토토 대주주이던 한국타이거풀스가 소유한 빌딩을 싸게 매입한 후 비싸게 팔아 이득을 챙긴 것으로 의심받아왔다. 드림네스트는 해당 빌딩을 143억2000만원에 낙찰받아 4월8일 소유권 이전을 했다. 이후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은 6월1일 오리온의 자회사인 오리온프리토레이에 210억6670만원에 매각했다. 빌딩 전체가 아닌 7개 층 가운데 5개 층에 대한 매각이었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왜 오리온이 직접 낙찰받지 않고 드림네스트가 중간에서 이익을 챙길 수 있도록 한 것일까. 드림네스트가 단기 매매를 통해 올린 차익 60억원 중 상당액이 비자금으로 흘러들어갔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당시 오 아무개 오리온프리토레이 대표가 담 회장으로부터 지시를 받아 해당 빌딩 5개 층을 인수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드림네스트의 뒤에는 아이팩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드림네스트가 지불한 낙찰 대금이 아이팩으로부터 조달됐고, 드림네스트에서 근무한 정 아무개씨 급여도 아이팩에서 지급했다고 한다. 김 아무개 아이팩 대표가 담 회장의 자금 관리와 조달 역할을 맡았다고 시인했던 것으로 드러나 드림네스트 역시 담 회장의 지시하에 운영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한때 담 회장의 오른팔로 불렸던 조경민 당시 오리온 전략담당 사장이 담 회장으로부터 드림네스트 설립과 이에 소요되는 비용을 아이팩을 통해 조달하는 것에 대해 허락을 받았다는 증언도 나왔다. 드림네스트는 외형상 조 사장의 형인 조 아무개씨가 전액 출자한 회사로 돼 있다.

빌딩 매각으로 이익을 본 드림네스트는 이 돈으로 LG CNS가 보유한 스포츠토토 주식 150만주 중에서 90만주를 매입한 후 되팔아 차익 53억여 원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드림네스트처럼 조씨가 대표로 있던 다른 회사들도 이에 동참했다고 한다. 디엠피는 30만주를 매입한 후 되팔아 30억여 원의 차익을 얻었고, 이상피앤씨도 30만주를 매입해 18만주를 되팔아 20억여 원의 차익을 얻는 한편 나머지 12만주도 13억여 원의 차익을 얻었다. 이렇게 주식을 매각해 남긴 차익 중 44억여 원을 비자금으로 조성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한편 시사저널은 이와 같은 의혹에 대한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오리온그룹 측에 서면질의서를 보냈다. 오리온 측은 “의혹 제기를 할 수는 있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법원에서 충분히 판단한 사안으로 이미 유·무죄가 확정된 사안이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한 사안에 대해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며 답변을 하지 않았다.

 

“300억 마이너스 통장, 쓰고 나면 비자금으로 메워”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이 독특한 방식으로 비자금을 활용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오리온 주거래 은행에 한도가 300억원인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해 놓고 필요할 때마다 돈을 빼 쓴다는 것이다. 오리온 내부 사정에 대해 잘 아는 한 재계 인사는 “이렇게 빠져나간 돈은 비자금으로 다시 채워진다고 한다”며 “마르지 않는 샘물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담 회장은 지난해 4월 대법원으로부터 300억원대의 회사 돈을 유용한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확정 판결을 받았다. 2011년부터 시작된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비자금이 조성됐고 역시 다양한 방식으로 비자금이 사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마이너스 통장에 대해서는 확인된 게 없었다. 이 주장은 담 회장의 최측근으로부터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오리온 측은 “그런 통장은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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