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 시대
  • 윤길주| 편집국장 ()
  • 승인 2014.08.14 09:4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온통 분노로 들끓고 있습니다. 자식을 군에 보낸 부모는 아들이 구타당하지 않는지 잠을 못 이룹니다. 자식 면회 가서는 옷부터 벗겨보겠다고 합니다. 중·고등학생 딸을 둔 부모는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다 변을 당할까 노심초사입니다. 군대 보냈더니 맞아죽고, 학교 보냈더니 처참하게 살해돼 생매장되는 엽기적인 시대의 풍경입니다.

윤 일병은 부대 전입 후 33일간 매일 선임병들에게 ‘이지메’를 당했습니다. 바닥에 뱉은 가래침을 핥으라 하고, 어머니를 섬에 팔아넘기겠다고 하고, 링거 수액까지 맞혀가며 인간 샌드백을 만들어 때리고 또 때리고…. 윤 일병이 5분마다 살려달라고 애원했다고 하니 그 고초에 가슴이 저려옵니다.

여고 1학년생 윤 아무개양은 또래 학생들에게 살해됐습니다. 윤양은 학교 선후배와 남자친구들에게 납치돼 성매매를 강요당했습니다. 윤양이 숨을 거두자 이들은 시신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인 후 매장했습니다. 발각될까 두려웠던 이들은 시신을 다른 곳으로 가져가 시멘트를 반죽해 뿌리고 돌멩이와 흙으로 덮었습니다.

세월호 참사, 임 아무개 병장 GOP 총기 난사, 포천 고무통 살인 등 충격적인 사건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민을 패닉 상태로 몰아넣은 사건들은 파편적인 것 같지만 맥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후안무치, 잔인함, 비인간성으로 범벅이 된 데서 비롯됐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신경정신과 전문의 이나미 박사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놀부 심보를 부리는 악의 영역에 있는 사람이 어느 시대, 어느 동네나 있었다. 공동체가 살아 있을 때는 주변에서 이들을 말린다. 그래서 행패를 부리더라도 그릇 하나 깨거나 코피를 터뜨리는 정도에서 그친다. 지금은 공동체가 깨졌다. 곁에서 살인이 일어나도 상관하지 않는다. 지하철에서 누가 맞아도 스마트폰 들여다보기 바쁘다.”

어딜 둘러봐도 폭력으로 도배돼 있습니다. 인터넷게임은 누가 더 잔인한지 내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케이블TV ‘미드’에선 사람을 죽이고 나서 주인공들이 키스를 합니다. TV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아무렇지 않게 끔찍한 시체가 나옵니다. 죽음에 대한 경외는 사라져버렸습니다. 청소년이 사이코패스로 양육되는 ‘온실’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인 것입니다. 청소년은 학교에서, 가정에서 강자가 되는 법만 배웁니다. 공부를 못하는 학생은 힘으로라도 ‘일진’이 되려 하고, 이들이 군대에 가면 윤 일병을 때려 숨지게 한 이 병장 같은 괴물이 되는 겁니다. 강자독식 사회 체제가 만든 비극입니다.

요즘 반상회도 카카오톡으로 한다고 합니다. 바쁜 탓도 있지만 이웃 만나기를 꺼리는 이가 많아서라고 합니다. 모두가 스마트폰에 갇혀 사는 세상에서 공동체는 설 자리를 잃었습니다. 육군참모총장을 내친다고, 장관 몇 명 자른다고 엽기적인 사건이 그치진 않습니다. 올해만 벌써 여러 차례 이런 낯익은 광경이 연출됐지만 그걸로 끝입니다. 사건이 날 때마다 모르핀 주사를 놓기보다는 차분하게 공동체에 피가 돌게 하는 작업에 나서야 합니다. 국민적으로 공동체 살리기 운동이라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너무 거칠어져 있습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