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바이벌 스포츠 동호인 50만명 시대, ‘음지’에서 나와 ‘양지’에서 쏘자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4.08.14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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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못 따라가는 법 바꿔야”

‘레저와 범죄의 경계선에 서 있는 서바이벌 게임.’ 지난해 11월1일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 국정감사를 앞두고 당시 민주당 최고위원이던 박혜자 의원이 낸 보도자료 제목이다. 서바이벌 게임이 왜 레저와 범죄의 경계선에 서 있는 걸까. 박 의원은 한 정부 아래서 상반된 제도가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문체부는 서바이벌 게임을 육상레저스포츠 종목으로 정식 지정해 지원을 하면서, 경찰은 서바이벌 동호인들을 모의 총포 소지를 이유로 단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 의원은 “한 정부에서 같은 사안을 두고 이렇게 상반된 입장을 보여서야 되겠느냐”고 질타했다.

장비 업그레이드되면서 급속히 확산

최근 서바이벌 게임을 즐기는 동호인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박혜자 의원은 서바이벌 동호회 회원이 200만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 중에서 50만명 정도가 이른바 마니아로 추산된다. 제주시 전체 인구수가 44만3000여 명인 점을 감안하면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한 야산에서 고지 점령을 두고 치열한 ‘전투’가 펼쳐지고 있을지 모른다. 그만큼 서바이벌 게임의 저변이 확대된 것이다.

ⓒ 사진제공 대한서바이벌스포츠협회
콘텐츠에 목말라 있는 지방자치단체들의 유치 경쟁도 뜨겁다. 전북 완주는 20억원을 들여 밀리터리 테마파크를 조성했고, 경기 가평은 40억원을 투입해 밀리터리 타워를 준비 중이다. 올해 3월 충북 영동은 경기장 조성과 대회 유치를 위한 업무협약을 대한서바이벌스포츠협회와 맺었다. 대규모 행사를 치른 지자체도 여러 곳이다. 대한서바이벌스포츠협회는 몇 년 전부터 한국 밀리터리 서바이벌 페스티벌을 경남 거창에서 개최해오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경기 광주에 위치한 육군 특수전교육단에서 서바이벌 대회가 열렸다. 서바이벌 동호인들과 특전사 대원들이 팀을 이뤄 결전을 펼쳤다. 당시 대회를 주최한 한 인사는 “실전과 다름없는 전투를 펼치기 때문에 현역 군인에게도 좋은 경험이 됐을 것이다. 특히 주어진 미션에 맞춰 전략을 짜야 하기 때문에 군의 전투력 향상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며 “군 수뇌부의 반응이 좋았다”고 전했다. 대한서바이벌스포츠협회는 올가을 이 대회를 한 번 더 개최할 계획이다.

서바이벌 게임 하면 흔히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빨간색 페인트가 대표적이다. 상대편 총에서 날아온 탄환을 맞으면 빨간 물감이 옷에 묻어 ‘전사’ 사실을 알려준다. 서바이벌 게임을 다룬 TV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하는 모습이다. 그러다 보니 서바이벌 게임은 으레 이 빨간색 페인트 총알만 사용하는 줄 아는 이가 많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페인트볼(Paintball)’은 서바이벌 게임의 한 종목이다. 페인트볼 외에도 ‘에어소프트(Airsoft)’ ‘레이저태그(Lasertag)’ ‘IPSC(International Practical Shooting Confederation)’ 등이 있다.

마니아들은 페인트볼보다 에어소프트 종목을 더 선호한다. 실제 총을 복제한 에어소프트건에 흔히 ‘비비탄’이라고 부르는 무게 0.2g가량의 둥근 플라스틱 총알을 사용한다. 총 이외에 군복과 전투화, 눈 보호용 안경(고글) 등 기본 장비만 갖춘다면 100만원 선에서도 출전 준비가 가능하다. 하지만 실전을 방불케 하는 서바이벌 게임의 매력에 빠져들면 각종 장비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방탄복부터 야간 투시경까지 장비 종류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국내 인터넷 쇼핑몰에서 판매되고 있는 적외선 열화상 카메라 중에는 가격이 1500만원을 웃도는 고가 제품도 있다.

업계에서는 서바이벌 게임의 시장 규모가 적게는 1000억원에서 많게는 5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본다. 서바이벌 게임이 주목을 받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시장 규모는 더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서바이벌 게임을 산업적인 측면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는 셈이다. 문제는 현재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는 서바이벌 게임용 총기 등 핵심 제품 대부분이 해외에서 들여온 수입품이라는 점이다. 일본에 이어 타이완 제품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여기에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까지 가세해 시장 다툼이 치열하다. 반면 국내 제품은 찾기조차 쉽지 않다.

현행 총기 기준 맞추면 서바이벌 게임 못해

이런 상황이 발생하게 된 이유가 바로 ‘레저와 범죄의 경계선에 서 있는 서바이벌 게임’의 현실에 있다는 지적이다. 현행 총포·도검·화학류 등 단속법 시행령에 따르면 탄환의 위력이 0.2J(줄)을 초과하면 모의 총기로 규정돼 제조 및 판매 그리고 소지가 금지된다. 이를 어길 시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1J은 약 0.1㎏의 물체를 1m 이동시킬 수 있는 에너지를 말한다.

여기서 법과 현실의 괴리가 생긴다. 탄환이 0.2J의 위력일 때 유효 사거리는 16m 정도밖에 안 되는데, 야외에서 서바이벌 게임을 제대로 즐기려면 35m 이상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정도 거리가 되려면 탄환의 위력이 1J까지 올라가야 한다. 서바이벌 게임 마니아들이 최대 0.2J 규정에 묶여 있는 국내 제품을 외면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본은 0.98J, 독일과 영국은 1.35J, 미국은 주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규제가 없다.

물론 해외 제품도 국내에 들어오려면 같은 기준을 적용받는다. 외형상 공평한 조처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수입 과정에서 0.2J 규정은 지켜진다. 기존 제품의 위력을 낮춰놓으면 된다. 그렇게 통관 과정을 거쳐 국내로 들여온 후 다시 원래 위력으로 개조하면 그만이다. 총포 관리 대상도 아니라 실태 파악 자체가 안 된다. 결국 서바이벌 동호인들이 잠재적인 범죄자로 내몰리게 되는 셈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안전에는 정말 문제가 없는 걸까. 이와 관련해 동호인들 사이에서는 이런 반문이 나온다. ‘야구 방망이는 무기일까요, 무기가 아닐까요?’ 야구장 밖에서야 어떻게 사용될지 모르지만 야구장 안에서만큼은 분명 무기가 아닌 경기 도구다. 서바이벌 게임용 총기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경기에 들어가면 선수들은 방탄복·고글 등 부상에 대비한 장비들을 반드시 착용한다. 또 탄속 측정기를 통해 탄환의 위력을 같게 만든다. 주최 측의 이러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이 선수는 ‘아웃(Out)’ 된다.

동호인들은 경기 도중 발생하는 사고는 거의 없다고 말한다. 문제는 오히려 경기장 밖에서 벌어진다. 총기 관리가 투명하게 이뤄지지 않은 탓에 발생하는 일이다. 처음 수입할 때 0.2J 이하라는 검사필증을 받고 나면 사실상 무방비 상태에 놓인다. 그런 만큼 권한을 주되 책임도 함께 물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구체적으로 총기의 성능 기준은 최소한 1J까지 향상시키되, 총기의 등록과 관리를 철저히 하면 된다. 한마디로 서바이벌 게임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내자는 것이다.

서바이벌 게임은 경제 이득뿐 아니라 교육 목적으로도 활용도가 높다. PC나 스마트폰의 좁은 화면으로 일종의 가상 게임을 즐기고 있는 청소년이 드넓은 자연 속에서 사람들과 호흡을 함께 하며 경기를 펼치는 것은 분명 다를 수밖에 없다. 팀워크가 강조되기 때문에 희생의 숭고함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다. 총에 맞은 선수는 스스로 ‘전사’ 사실을 알려야 한다. 이를 ‘명예 제도(Honor System)’라고 하는데, 만약 총을 맞고도 계속 경기를 진행한 선수는 ‘좀비’로 불리며 경기 출전 정지 등 징계를 받게 된다. 정직은 서바이벌 게임을 지탱하는 한 축이다. 총을 갖고 한다고 해서 단순히 ‘전쟁놀이’로만 치부할 수는 없는 게 바로 서바이벌 게임이다.


ⓒ 시사저널 최준필
김영현 대한서바이벌스포츠협회 회장은 국가대표 감독 출신의 사격인이다. 1983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아시아사격선수권대회에 참가한 여자 대표팀을 이끌었다. 아시아 신기록이 두 개가 나올 정도로 좋은 성적을 올려 체육훈장까지 받았다. 한 해 뒤인 1984년 LA올림픽에서는 명실상부한 사격 국가대표팀 감독에 올랐다. 서른 살이 채 안 되던 때다. 당연히 최연소 감독 타이틀까지 달았다. 1993년부터 대한사격연맹 사무국장을 맡기도 했다. 서바이벌 게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춘천시가 세계레저총회 유치에 성공했을 때다. 당시 레저기본법을 다듬는 과정에서 총포 및 화약 부문에 대해 조언을 한 게 계기가 됐다. 이후 협회를 이끌며 서바이벌 게임 활성화에 매진하고 있다.

 

동호인들은 보통 경기를 어떻게 진행하나.

종목별로 조금씩 다르다. 에어소프트의 경우 그야말로 ‘군사용’이기 때문에 특정 지역이나 건물에서 별다른 규정 없이 아군과 적군으로 나뉘어 바로 전투를 한다. 때로는 ‘캡틴 구출’과 같은 미션이 주어진다. 이런 식으로 유형이 엄청나게 많다. 갖가지 상황에 맞춘 미션이 나올 수 있다. 미션 수행을 위한 작전도 매번 달라진다.

총을 사용하니까 위험하지 않나.

전혀 위험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모든 스포츠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어느 정도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야구도 투수 공에 맞으면 다칠 수 있고, 축구도 상대에 걸려 넘어지면 골절상을 입을 수 있다. 서바이벌의 경우 고글 등 보호 장비를 착용하기 때문에 야구나 축구보다 오히려 더 안전하다.

서바이벌용 총기를 관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현재는 관리 주체가 없다. 누가 무슨 총을 몇 정이나 갖고 있는지 파악이 안 된다. 그래서 총기 등록을 받고 추후 관리를 할 기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100% 다 등록하지는 않겠지만 80~90%는 등록할 것으로 본다. 이런 얘기를 하면 협회가 무슨 이권을 챙기려고 그러는 것 아니냐고 하는데, 그게 의심스러우면 안전행정부장관이나 경찰청장이 지정한 기관에 맡긴다고 명문화하면 되지 않나. 협회는 통제가 아니라 진흥이 목적이다.

총기를 경기장이나 연습장에서만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하는데.

현행법에 따르면 0.2J을 넘지 않는 총이라면 시장통이든 어디든 마음대로 갖고 다닐 수 있다. 이건 잘못됐다. 사격선수도 경기장이나 연습장이 아니면 총을 쏠 수 없다. 제도를 새롭게 정비한 후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처벌하면 된다.

산업적 측면에서 한국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보나.

충분히 있다고 본다. 우리의 강점인 IT를 잘 활용하면 더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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