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뇌하는 ‘인간 이순신’은 바로 ‘나’
  • 이은선│매거진M 기자 ()
  • 승인 2014.08.14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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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가능한 영웅 고증에 공들여 ‘흥행 대첩’

온 나라에 이순신 열풍이 불고 있다. 이 정도면 신드롬이다. 그 중심에 영화 <명량>이 있다. 7월30일 개봉한 이 영화는 연일 한국 영화 역사를 새로 쓰는 중이다.

<명량>은 개봉 첫날에만 68만 관객을 모았다. 한국 영화와 외화를 통틀어 역대 최고 오프닝 스코어다. 개봉 이틀째인 7월31일 오후 1시30분쯤에는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최단 기간 100만 돌파 기록이다. 1일 최다 관객 수 기록도 새로 썼다. 8월2일에는 122만명을 모아 역대 최다 관객 수 기록을 세우더니, 하루 만인 바로 다음 날 125만 관객을 모으며 또 한 번 기록을 경신했다. 개봉 첫 주 주말 이틀간에만 250만명이 들었다. <명량>이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1일 최다 관객 수는 2013년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기록한 91만명, 2011년 <트랜스포머 3>가 기록한 95만명이었다.

이후 관객 수가 100만명씩 증가할 때마다 기록 행진은 이어졌다. 역대 최단 기간 200만, 300만, 400만 돌파 기록을 새로 썼다. 영화계 일각에서는 조심스레 최초 1500만 관객 영화의 탄생을 점치는 분위기다. 추세로 봐선 불가능한 일이 아닐 것 같다. 개봉 7일 만에 600만 관객을 모은 것은 기존 1000만 영화인 <도둑들>(11일), <변호인>(16일), <7번방의 선물>(19일), <광해, 왕이 된 남자>(20일)보다 훨씬 빠른 속도다. 게다가 <명량>은 평일에도 100만명에 달하는 관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8월8일 서울 삼성동 메가박스 코엑스점 티켓 판매 창구에서 의 좌석이 90% 이상의 판매율을 보이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40대 이상 관객이 40% 이상 차지

이처럼 놀라운 흥행 속도가 탄생한 이유 가운데 중·장년층 관객이 기존 1000만 영화보다 빠르게 움직였다는 것이 주목할 만하다. 20~30대가 주도적으로 흥행 흐름을 만들고 중·장년층이 뒤늦게 움직였던 기존 1000만 영화의 흥행 패턴과는 확연히 다른 양상이다. 영화 예매 사이트 맥스무비 통계에 따르면 <명량>의 관객 연령대에서 40대 이상이 40% 이상을 차지한다. 평일 멀티플렉스 상영관 앞에서는 넥타이 부대 관객 행렬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방학을 맞은 자녀와 함께 교육 목적으로 극장을 찾는 이도 적지 않다. 중·장년층 관객에게만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젊은 층의 호응도 좋다. 포털 사이트 관객 평가 점수는 8~9점대를 유지하고 있고, ‘젊은 관객이 더 많이 봐야 하는 영화’ ‘역사에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영화’라는 관객 평이 많다. <명량>의 투자배급사 CJ E&M 관계자는 “모니터 시사 때부터 전 세대에 걸쳐 고른 호평과 높은 평점이 나왔다”고 말했다.

영화를 뜯어보면 흥행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이긴 하다. <명량>은 설계가 비교적 단순한 영화다. 크게 인물 드라마를 다룬 전반부와 해전을 다룬 후반부로 나뉜다. 할애하는 상영 시간 역시 전·후반부가 엇비슷하다. 일단 명량해전을 다룬 장면에는 그간 한국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신선한 시도가 여럿 나타난다.

해전에서 장군이 펼쳤던 지략은 단순한 볼거리가 아닌 그 자체로 하나의 드라마가 된다. 전반부부터 쌓아올렸던 극적 감동이 점점 고조되면서 바다에서 정점을 맞이하도록 설계된 구조다. 실제로 김한민 감독은 드라마와 해전을 굳이 이분법으로 나누고 싶지는 않다고 말한다.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설명하는 데 어차피 그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요소이고 인물이 완성되는 것은 결국 해전”이라는 것이다. 구루지마(류승룡)를 비롯한 왜군 수장이 다소 기능적 역할에 그쳐 아쉽지만 한편으로는 영화 전체의 균형을 위해서는 나쁘지 않은 선택으로 보인다. 이 영화는 어디까지나 이순신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치렀던 전투 가운데 명량해전을 고른 것 역시 좋은 전략이었다. 명량해전은 장군이 열두 척의 배로 왜선을 격파한 극적인 전투였다. 또한 장군이기 이전에 개인의 일생에서도 가장 힘겨워했던 시기다. 이 시기에 이순신은 누명을 쓰고 갖은 고초를 겪다 삼도수군통제사로 급히 재임명됐고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해 슬퍼하면서도 자신을 죽이려던 왕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를 다졌다. 왜군과 싸우며 목숨을 잃은 병사에 대한 죄책감에도 시달렸다. 고통받고 두려워하던 ‘인간 이순신’이다. 강력한 힘을 지닌 영웅이 아니라 수세에 몰리고 곤욕스러운 처지를 돌파하려는 가련한 인물이다. 이 영화에서 관객은 ‘성웅(聖雄)’도 발견하지만 아무도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상황에서도 위기를 돌파하려는 리더의 고뇌를 발견한다. 이순신이 보편적으로 공감 가능한 영웅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영화 제작 현장. ⓒ CJ 엔터테인먼트
배 8척 직접 제작, 왜군 갑옷 일본에서 만들어

모두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건을 정공법으로 그렸다는 것도 <명량>의 탁월한 전략이다. 이 영화는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이들의 이야기인 만큼 극 전반에 흐르는 비장함을 굳이 덜어내지도 않는다. “장수 된 자의 의리는 충을 쫓아야 하고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는 극 중 장군의 말로 대표되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 꼭 필요한 울림을 던진다. <명량>은, 현재는 역사를 기억하고 역사는 현재를 위무하게 하는 영화라는 점에서 관객에게 특별한 감흥을 안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영화 제작 과정에서도 고증에 공을 들였다. 대부분의 촬영은 전라남도 광양의 중마 일반 부두에서 진행됐다. 고개를 들면 이순신대교가 바로 눈앞에 보이는 곳이다. 제작진은 영화를 위해 총 여덟 척의 배를 직접 제작했다. 조선 수군의 전투선인 판옥선을 만들기 위해 조선의 무기 체계를 정리한 <각선도본>을 참고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갑판 아래 노를 젓는 이들이 있는 격군실 또한 기록에 따른 것이다. 촬영은 배의 갑판과 내부 촬영이 가능한 A세트, 물 위에 직접 배를 띄워 촬영하는 B세트로 나뉘어 진행됐다. A세트의 한쪽에서는 거대한 기계장치 짐벌(gimbal)에 배를 올려놓고 촬영이 이어졌다. 상하좌우 이동은 물론이고 회전까지 가능한 장치다. 바다 위에서 배를 띄우고 촬영할 때는 불가능한 인물의 근접 촬영 등에 용이하다. 이렇게 찍은 장면들은 1년간 CG 후반 작업을 거쳐 지금과 같은 버전으로 완성됐다.

극 중 화려함의 극치인 일본군 갑옷은 제작진이 일본 가고시마에서 직접 제작해 가져온 것이다. 갑옷의 안쪽에 덧대는 천은 무조건 ‘교토 비단’으로 하는 등 제작 과정부터 무척 까다로운 일본군 수장의 갑옷은 한 벌에 1000만원을 호가한다. 자세히 보면 조선군의 갑옷 형태도 꽤 독특하다. 그동안 TV 드라마와 영화에서 봤던 비늘 갑옷(가죽 위에 비늘 형태의 얇은 철판을 붙인 것)이 아니라 쇠판을 이어 붙인 찰갑 형태다. 전투 장면이 중요한 영화인 만큼 단단한 찰갑으로 만든 것이다. 제작 과정과 내용 그리고 개봉 이후 반향까지 두루 이야기할 것이 많은 한국 영화의 등장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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