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는 작품으로 보여주면 족하다”
  • 프라하=김세원│가톨릭대 교수 ()
  • 승인 2014.08.14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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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출신 세계적 설치미술가 다비드 체르니 인터뷰

2009년 1월12일 벨기에 브뤼셀의 유럽연합(EU) 이사회 건물 1층 로비. EU 이사회의 순번 의장국을 맡은 체코 정부가 의뢰해 제작한 대형 설치미술품 <엔트로파(Entropa)>의 개막식에 모인 관람객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EU 27개 회원국 지도를 유럽 지도에서 분리해 프라모델(플라스틱 조립 완구) 부품 형태로 만든 이 작품에서 노동조합 시위가 끊이지 않는 프랑스 지도에는 ‘파업’이라고 적힌 빨간색 현수막이 걸렸고, 가톨릭 국가인 폴란드는 감자밭에서 가톨릭 수사들이 동성애 인권운동을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을 세우는 모습을 표현했다. 벨기에는 반쯤 먹힌 프랄린 초콜릿 포장 상자로, 룩셈부르크는 ‘For Sale’이란 간판이 내걸린 작은 금덩어리로 각각 묘사했다.

루마니아 지도는 드라큘라 테마파크로 꾸며졌고, 불가리아는 쭈그리고 앉는 터키식 화장실로 묘사됐다. 발끈한 불가리아 정부는 EU 주재 불가리아 대사를 통해 집행위원회에 작품 철거를 요구하는 한편 불가리아 주재 체코 대사를 소환해 강하게 항의했다.

ⓒ 김세원 제공
‘선동가’ ‘괴짜’ ‘문제아’ 수식어 붙어

곤혹스러워진 체코 외교부는 항의하는 다른 회원국들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유감 성명을 발표했고 <엔트로파>는 불가리아 부분이 천으로 덮인 채로 며칠 뒤 일반에 공개됐다. 

<엔트로파>로 체코 정부를 외교적 곤경에 빠뜨린 장본인은 바로 체코 출신의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다비드 체르니(47)다. ‘선동가’ ‘괴짜’ ‘문제아’라는 수식이 늘 따라붙는 그를 만나러 7월22일 오후 프라하 남쪽 끝, 스미초프 구역의 미트 팩토리(Meet Factory)로 향했다. 도심에서 40여 분을 달린 끝에 분홍색 자동차 두 대가 거꾸로 매달린 녹색 건물 앞에 택시가 멈췄다. 입구 카페를 지키고 있던 펑크 스타일의 종업원에게 체르니를 만나러 왔다고 하니 온통 붉은색으로 칠해진 작은 방으로 안내했다. 각종 매체에 실린 사진에서처럼 그는 더벅머리에 검은색 러닝셔츠와 무릎 부분이 절개된 검은색 작업복 반바지 차림이었다. 세계적으로 공인된 도발적인 예술가에겐 도발적인 질문으로 인터뷰를 시작하는 것이 어울릴 것 같았다.

ⓒ 김세원 제공
당신에 대해 ‘대중을 어떻게 충격에 빠뜨리는지 방법을 아는 사람’이라는 평이 있던데 이 말에 동의하는가. 

동의할 수 없다. 충격이란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민간 항공기를 격추시킨 배후 인물인데도 아무도 그를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 법정에 세우지 않으려는 것이다. 충격은 우리가 엄청난 에너지를 낭비하도록 만든다. 그런데 예술은 그렇지 않다.”  

 당신은 종종 정치적인 견해를 풍자적인 방식으로 작품에 반영해 주목을 받았다. 체코에 민주 정권이 들어선 직후인 1991년 프라하에 있던 소비에트 탱크를 핑크색으로 칠하는 게릴라 아트 퍼포먼스를 벌이면서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1990년엔 체코의 서독 대사관을 통한 동독 주민들의 서방 대탈출 사건을 네 발이 달린 동독 국민차 ‘트라반트’로 형상화한 작품 <쿼바디스>를 발표했다. 작품으로 인해 투옥된 적은 없나.

 ‘벨벳 혁명’ 무렵 나는 젊었고 사회 참여에 적극적이었다. 도심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구속된 적은 있으나 작품으로 인해 투옥된 적은 없다. 벌금형을 받은 적은 있다.

 2005년 당신은 살아 있는 상어를 포름알데히드 수조 속에 넣은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을 패러디해 꽁꽁 묶인 나체의 사담 후세인 인형을 수조에 넣은 <상어>를 발표했다. 지난해 10월에는 가운뎃손가락을 치켜세운 외설적 제스처의 보라색 대형 손 조형물을 카를 다리 근처의 블타바 강 위에 띄워 화제가 됐다. 당시 “손가락이 어느 방향을 가리키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는데 가운뎃손가락은 대통령궁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에 대해 체코 언론은 공산당에 정계복귀의 길을 열어준 밀로스 제만 대통령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명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왜 당신은 정치적인 이슈를 예술 작품에 반영하려고 하는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환경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여름 프라하를 방문했다가 루체르나에 전시 중인 당신의 작품 <말>을 본 이후로 당신을 꼭 만나야겠다고 별러왔다. <말>은 바츨라프 광장에 세워진 성 바츨라프 기마상을 패러디해 바츨라프 성인이 거꾸로 매달린 죽은 말의 배 위에 앉은 모습으로 표현했다. 체코의 수호 성인을 굳이 파격적인 방식으로 표현한 이유가 있는가.

말이 죽었기 때문이다.

말이 죽었다? 감춰진 의미가 있는가.

물론 감춰진 메시지가 있다. 시각예술은 말 그대도 보여지는 예술이다. 예술가는 작품을 통해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보여주면 족하다. 일일이 설명을 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또 다른 작품으로 <매달리기(hanging out)>가 있다. 바지 주머니에 왼손을 찌른 채, 오른손으로는 막대기에 매달려 있는 남자를 표현한 이 작품의 모델이 지그문트 프로이트라고 들었다. 왜 하필 프로이트인가.

누구든, 무엇이든 작품의 소재가 될 수 있다. (21세기 지식인의 역할에 대한 작가의 고민을 담아냈다는 평을 들은 이 작품이 미국 시카고와 미시간의 건물에 설치됐을 때 이를 본 사람들이 실제 사람이 자살을 기도하는 줄 알고 경찰서와 소방서에 신고 전화를 걸어 경찰이 출동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예술가가 되지 않았다면 어떤 직업을 가졌을 것 같나.

언론인이나 비행기 조종사, 영화감독, 영화 관련 분야의 매니저가 됐을지 모른다. 그런데 운동선수나 의사, 군인은 절대로 안 됐을 것 같다. (실제로 체르니는 자가용 비행기를 가지고 있다. 어느 곳에 가고 싶은지를 물었더니 “베트남, 호주, 남태평양의 섬”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당신은 어디서 새로운 작품에 대한 영감을 얻으며, 무엇이 작품 구상에 영향을 미치는가. 

여자친구들 또는 주변의 친구들이다.    

그동안 당신은 주로 높이가 수 m, 무게도 수 톤에 이르는 대형 조형물을 공공장소에 설치하는 ‘공공예술’을 해왔다. 돈이 되고 힘도 덜 드는 ‘사적인 예술’에는 관심이 없나.

글쎄다. 사실 대형 작업만 해온 건 아니다. 소형 작업도 많이 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특정 대형 상업갤러리를 위해 작품 활동을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아트페어에서 내 작품을 보긴 어려울 것이다.

요즘은 어떤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가.

올가을 호주 시드니에서 전시가 있고 같은 시기에 프라하에 40톤짜리 조형물을 설치할 계획이다. 그 밖에 유럽 이곳저곳에서 의뢰받은 소규모 작업들이 있다. 그런데 아직 한국과는 아무것도 없다. 한국에서 전시를 했으면 좋겠다.     

(선문답 같기도 하고 부조리극의 대사 같기도 한 인터뷰가 끝나고 ‘팩토리’를 구경시켜주겠다는 그를 따라나섰다. 3개의 갤러리와 15개의 스튜디오, 일정표에 따라 콘서트홀, 영화관, 연극 극장, 공연장 등으로 그때그때 변신하는 공간들이 콘크리트 건물 전체에 흩어져 있었다. 2001년 체르니와 그의 친구들은 자동차 도로와 철도 사이에 끼어 있던 버려진 공장을 개조해 복합 문화예술 공간을 탄생시켰다. 개별 예술 장르 간의 소통을 촉진하고 예술가와 방문객 간에 직접적인 만남이 이뤄지는 공간을 창조하겠다는 그들의 비전은 2007년 국제 아트-인-레지던스 프로그램을 도입하면서 실현됐다. 작별 인사로 악수를 청하는 상처투성이 손과 오랜 노동으로 다져진 근육질 팔뚝이 그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을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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