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놓치면 내리막길, 할 수 있을 때 하라”
  • 조철│문화 칼럼니스트 ()
  • 승인 2014.08.14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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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미국인 소설가로 주목받는 이창래

이창래 미국 프린스턴 대학 문예창작과 교수(49)가 여름 서점가에서 눈길을 끌고 있다. 그의 다섯 번째 소설 <만조의 바다 위에서>의 한국어판이 갓 출간됐는데, 미국 문단의 대대적인 관심을 받았다는 홍보 문구가 표지를 장식하고 있다. 이 소설과 작가에 대한 찬사가 꽤 화려하다. ‘선전 문구에 속지 말라’고 옆에서 귀띔해도 혹하는 것이 보통 독자다. 그것만 보면 대단한 한국인 작가 한 명이 지금 미국에 살고 있는 셈이다. 그 문구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양쪽 책날개를 장식하며 이 소설을 한껏 띄우고 있다.

<만조의 바다 위에서>는 올해 1월 발표 즉시 뉴욕 타임스에 특집 기사가 실리는 등 미국 문단의 대대적인 관심을 받았다. 이 교수는 세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한 ‘이민자 소설가’다. 2011년에는 그동안 발표한 단 네 편의 장편소설만으로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이민자의 정체성’이라는 주제적 특이성이 아니더라도 아름다우면서도 날카로운 문체, 깊은 통찰력, 인간사에 대한 섬세한 시선, 탄탄한 드라마 등으로 도스토옙스키, 코맥 매카시, 돈 드릴로 등과 비교될 만큼 독자와 미국 문단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은 것이 그 이유다.

ⓒ 알에이치코리아 제공
진실에 다가가려면 담 허물고 틀 깨야

<만조의 바다 위에서>는 가상의 미래 미국 사회를 배경으로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직조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작품의 원제인 ‘On Such a Full Sea’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줄리어스 시저> 제4막 제3장에 나오는 브루터스의 대사 일부분이다.

“인간사에도 조수간만의 차가 있는 법. 밀물을 타면 행운을 붙잡을 수 있지만 놓치면 우리의 인생 항로는 불행의 얕은 여울에 부딪쳐 또 다른 불행을 맞이하게 되겠지. 지금 우린 만조의 바다 위에 떠 있소. 지금 이 조류를 타지 않으면 우리의 시도는 분명 실패하고 말 거요.”

브루터스는 전쟁을 앞두고 자신들의 전력이 최고조에 달해 있음을 안다. 최고조라는 것은 이제 곧 내리막길을 걷게 됨을 의미한다. 그래서 브루터스는 내리막길을 걷기 전에 당장 진격해야 한다고 말한다. ‘전쟁’과 ‘진격’은 <만조의 바다 위에서>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로 많은 것을 암시한다.

소설 속 가상의 미래 미국 사회는 크게 세 지역(차터, B-모어, 자치주)으로 나뉘어 있다. 지역과 지역 사이는 상급 지역인 차터에 사는 사람에 의해 높은 담으로 가로막혔다. 차터 사람은 지역과 지역 사이에 높은 담을 세워 지역과 (무형의) 계급을 구분함으로써 사회에 안정을 부여했다. 차터 사람은 몸에 좋다고 알려진 음식만 먹고 자식에게 과외를 시킨다. 과거 볼티모어라고 불렸던 B-모어의 사람은 과외는 못 시켜도 먹고사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 그들은 차터 사람이 시키는 일을 하고 그 대신 안정을 제공받는다. 모두가 주어진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고 일을 하며 크게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한 직업 정년을 보장받는다. 모두가 똑같은 집에 살고, 예측 가능한 패턴대로 살아간다.

반면 자치주는 거의 무정부 상태로 버려진 옛 도시들이며 황무지에 가깝다. 그곳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타 지역 사람은 알지 못하고 관심도 없다. 서로 닮은 곳은 조금도 없을 것만 같은 이 세 지역 사람들에게도 공통점은 있다. 아직 완전한 치료법은커녕 발병 원인조차 밝혀지지 않은 C-질환을 두려워한다는 것.

이 소설의 주인공 판은 B-모어 지역에 살며 차터 지역에 납품하기 위해 수조에 들어가 물고기를 키우는 17세 중국계 잠수부 소녀다. 어느 날 판의 남자친구 레그는 C-질환에 걸리지 않는 체질로 판명돼 차터 지역으로 불시에 아무런 통보도 없이 잡혀간다. 치료법 개발용으로. 그러나 이러한 일에 익숙한 B-모어 사람은 굳이 레그를 찾으려 하지 않는다. 이에 판은 그의 아이를 임신한 채 그를 찾아 정문 밖 바깥세상으로 나간다. B-모어 사람들에게 안정을 깨뜨리고 정문 밖으로 나가는 행위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그러나 그의 이런 행위는 B-모어 지역에 어떤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이제 몇몇 사람은 연못에 쓰레기를 던지고, 시위를 하고, 머리를 박박 민다. 그리고 이 사회가 맞게 흘러가고 있는 것인지, 자신들이 옳게 살고 있는지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한다. 바깥세상으로 나간 판은 몇 번의 위기, 그리고 몇 번의 아름다운 만남과 함께 자치주에 살고 있는 기이한 사람과 차터에 살고 있는 불행한 사람을 겪으면서 이 세계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가에 대해, 밖으로 나오지 않았으면 결코 알지 못했을 세계의 어떤 진실에 대해 조금씩 깨닫기 시작한다.

판타지면서도 현대 사회 문제점 짚어

<만조의 바다 위에서>는 한 소녀의 환상적이고도 기이한 모험담이지만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메스로 해부하듯 날카롭게 짚어내고 있다. 소설에 드러낸 신계급사회, 정치, 돈, 생명 존중, 음식, 교육 및 진학, 의료, 고용 안정, 고독, 애정 결핍 등의 문제는 현대인이 겪고 있는 삶의 문제와 다름없다. 작품의 배경을 바꾸는 ‘낯설게 하기’를 통해 현대 사회를 있는 그대로 묘사해낸 것이다.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져서 하나의 관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될 수 없는 어떤 진실을 이렇게라도 해야 알아차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전 작품까지 ‘이방인과 그 정체성’에 초점을 맞춰 온 이 교수. 하지만 이번 소설에서는 ‘미국인 중산층 가족의 보편적인 이야기’에 천착해 미국 내에서 작가적 입지를 굳히는 결과를 낳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교수는 예일 대학 영문과와 오리건 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때 월가의 주식분석가로 일하기도 했다. 1995년 첫 소설 <영원한 이방인>을 발간해 미국 문단의 주요 상 6개를 수상했다. 1999년 발표한 두 번째 작품 <제스처 라이프>도 찬사 속에 굵직한 상 3개를 받았는데, 그해 ‘뉴요커’지는 이 교수를 ‘40세 미만의 대표적인 미국 작가 20인’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 2004년 출간된 세 번째 작품 <가족>은 타임지가 선정한 ‘당신이 놓쳤을 수도 있는 훌륭한 책 6권’ 중 하나로 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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