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더 센 놈이 갈수록 자주 습격한다
  • 김형자│과학 칼럼니스트 ()
  • 승인 2014.08.14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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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잇따른 한반도 북상은 약해진 북태평양 고기압 탓

“또 태풍이야? 엊그제 ‘나크리’가 지나간 지 며칠이나 됐다고 또?”

강력한 11호 태풍 할롱 소식에 나크리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가슴부터 철렁 내려앉는다. 7월 초에 발생해 일본 오키나와를 쑥대밭으로 만든 제8호 태풍 너구리, 하순에 발생해 중국을 강타한 10호 태풍 마트모, 우리나라 남해안과 제주도에 기록적인 폭우를 쏟아부은 12호 태풍 나크리, 그 뒤를 이어 차도 뒤집어놓을 수 있는 위력인 초속 51m의 할롱까지, 한 달 사이에 벌써 4개의 태풍이 한반도에 몰아쳤다. 한반도에 태풍 영향이 가장 많은 시기는 8월 하순에서 9월 사이다. 이를 감안하면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때 이른 태풍이 잇따라 발생하는 이유는 뭘까. 

태풍은 생겨난 순서에 따라 1호, 2호, 3호 태풍이라 정한다. 할롱이 나크리보다 하루 앞서 발생했지만 한반도 인근 해상에 더 늦게 도달한 것은, 2000㎞ 이상 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태풍은 발생부터 소멸까지 보통 일주일에서 1개월 정도 걸린다.

ⓒ REUTERS
북태평양 고기압 확장 못해 한반도에 영향

국가태풍센터 통계에 따르면, 보통 태풍은 7월까지 평균 7.6개 정도 발생한다. 올해는 12개로 평년 수준의 1.5배다. 그중 2개의 태풍이 우리나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는데 이 또한 평년보다 많다. 최근 30년(1981~2010년) 동안 한반도에 직접 영향을 미친 태풍은 연간 3개인데 보통 8~9월에 발생한 것들이다. 물론 이는 평균값일 뿐 해마다 다를 수 있다.

기상청은 그 원인을 북태평양 고기압 세력이 약화돼 태풍이 한반도로 진입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태풍의 진로는 북태평양 고기압 가장자리를 따라서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올해는 북태평양 고기압이 충분히 확장하지 못해 예년보다 세력이 약화됐다. 이 때문에 중국이나 타이완 쪽으로 서진해야 할 태풍이 힘이 약해서 아래쪽인 한반도와 일본 쪽으로 방향을 틀어 북진하고 있는 것이다. 북태평양 고기압이 확장하면 태풍은 중국 쪽으로 진행한다.

태풍의 정체는 북태평양 남서 해상에서 발생하는 열대 저기압이다. 중심 최대 풍속이 초속 17m 이상으로, 강한 바람과 비구름을 품은 거대한 공기 덩어리다. 열대 지역에서 저기압이 발생하는 이유는 지구의 자전 때문이다.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 지구의 자전으로 지역에 따라 태양으로부터 받는 열량에 차이가 생긴다. 이렇게 열량의 차이가 생기면 공기 밀도가 달라진다. 열을 적게 받으면 밀도가 높아져 고기압이 형성되고, 열을 많이 받으면 밀도가 낮아져 저기압이 형성된다. 적도 부근은 극지방보다 태양열을 더 많이 받아 저기압이 형성된다. 바람은 항상 고기압에서 저기압으로 불기 때문에 저기압이 형성되면 바람이 불어온다. 이때 불어온 바람은 중심 부근에서 몇 ㎞ 위로 올라간 후 밖으로 나간다. 여기에 지구의 자전으로 회전하는 힘이 가해지면 공기의 소용돌이가 생긴다. 이게 바로 태풍이다.

태풍은 해수 온도가 보통 섭씨 27도 이상이어야 발생한다. 열대 저기압이 뜨거운 해수면으로부터 에너지를 전달받으면서 강해진다. 태풍의 반지름은 가장 작은 경우도 300㎞나 된다. 이 지역에서 혼합층(해양에서 상하층이 잘 혼합되는 층) 깊이를 100m로 가정한 경우, 해수 온도가 1도 상승하면 해당 지역의 해양 에너지는 1.2×1020J(1J은 1N<뉴턴>의 힘으로 물체를 1m 이동시키는 데 필요한 에너지)만큼 상승한다. 이는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약 10만 배에 해당한다. 다행인 것은 증가된 모든 해양 에너지가 태풍에 공급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이 중 일부만이 잠열의 형태로 태풍 에너지로 변환된다.

태풍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바다는 여름에 점점 데워져 9월 초에 온도가 가장 높이 올라간다. 이 때문에 여름 태풍보다 이때쯤 발생하는 가을 태풍의 위력이 대체로 세다. 사상 최악의 슈퍼 태풍은 비이상적으로 더운 북태평양 위에서 한껏 뜨거워진 가을 바다의 에너지를 최대한 흡수했다는 말이다. 미국 합동태풍경보센터는 순간 최대 풍속이 초속 67m, 즉 시속 240㎞ 이상인 열대 저기압을 슈퍼 태풍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태풍의 강도는 중심부의 최대 풍속으로 분류한다. 초속 44m 이상은 ‘매우 강(强)’, 33?44m는 ‘강’, 25?33m는 ‘중(中)’, 17?25m는 ‘약(弱)’으로 나눈다. 초속 15m의 바람이 불면 간판이 떨어질 수 있다. 초속 25m의 바람에는 지붕이나 기왓장이 뜯겨 날아갈 수 있다. 초속 30m면 허술한 집이 무너지고 초속 40m의 강풍이면 사람뿐 아니라 커다란 바위까지 날려버린다. 역대 한반도를 강타한 최악의 태풍으로 꼽히는 태풍 루사는 2002년 당시 초속 50m가 넘는 강풍을 동반해 5조1000억원이 넘는 재산 피해를 낸 바 있다.

북태평양 고기압 세력 약화는 엘니뇨 때문

그렇다면 이번 태풍에 왜 북태평양 고기압이 확장하지 못했을까. 근본적인 원인은 엘니뇨 현상 탓이다. 태풍은 열대 지방의 바다에서 생겨 고위도로 이동하면서 힘이 점차 세진다. 바다로부터 계속 수증기를 공급받기 때문에 강한 바람뿐 아니라 많은 비를 동반한다. 전문가들은 적도보다는 북위 5~25도 사이에서 태풍이 잘 만들어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엘니뇨가 나타나게 되면 대개 북태평양 고기압 세력이 약해져 한반도 쪽으로 힘을 쓰지 못한다. 엘니뇨는 동태평양에 위치한 페루 연안의 바닷물 온도가 평년보다 0.5도 이상 올라가 6개월 정도 지속되는 현상을 말한다. 엘니뇨가 발생하게 되면 일반적으로 페루를 비롯한 남미 국가는 강수량이 늘어나 홍수 피해를 겪게 된다. 최근 인도네시아 보르네오 섬의 산불이 오랫동안 지속돼 많은 피해를 준 것도 엘니뇨 현상에 의한 가뭄 때문이다.

올해 우리나라 마른장마도 결국은 엘니뇨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엘니뇨로 북태평양 고기압이 약해져 장마전선이 중부 지방까지 상승하지 못했다는 것. 태풍 경로도 장마전선의 영향도 북태평양 고기압의 확장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나라 여름 기후에서는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이 80%나 된다. 지각 장마, 마른장마에 이어 때 이른 태풍 러시까지, 엘니뇨의 심술에 한반도의 여름 날씨가 요동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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