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때 고생했지, ○○○ 감사로 가시지”
  • 손가영 인턴기자 ()
  • 승인 2014.08.20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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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정부 공공기관 감사 전수조사…23개 기관 ‘친박 낙하산’

‘낙하산 감사’는 자니 윤에게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상임 감사가 임명된 91개 공공기관 중에서 23개 기관에서 ‘친박 낙하산’ 인사가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박근혜정부가 들어선 시점부터 계속됐다. 시사저널이 304개 공공기관의 상임감사 및 상임감사위원(비상임 감사 제외)의 실태를 조사한 결과다.

전문성 검증과는 거리가 먼 ‘보은 인사’가 줄을 이었다. 지난 대선 선거대책위원회 이력만 가지고도 예금보험공사나 원자력연료주식회사의 감사 자리를 꿰찰 수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외곽 지지 모임에 참여한 이력도 농어촌공사나 주택관리공단 감사 자격이 되기에 충분했다. 어린이집연합회 회장 출신 정치인이 뜬금없이 중소기업 관련 금융기관의 감사로 발탁되기도 했다.

권영상 한국거래소 감사(왼쪽)와 정송학 한국자산관리공사 감사. ⓒ 연합뉴스
금융권 감사 자리도 정치권 인사가 꿰차

지난 7월 선임된 조은숙 한전원자력연료 상임감사는 해당 기관의 경력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 대전광역시 청소년수련원장을 역임한 것이 주요 경력이다. 박 대통령의 지지 모임인 대전희망포럼 공동대표를 역임했고 18대 대선에서 새누리당 대전 선대위 총괄본부장으로 활약했다. 누가 봐도 그 덕에 감사 자리를 차지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지난 5월에는 새누리당 광주남구당원협의회 위원장 출신의 문상옥씨가 한전KDN 상임감사로 선임됐다. 2월에는 광물자원공사 상임감사위원에 18대 대선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공동본부장 출신의 홍표근씨가 선임됐다. 같은 날 새누리당 구로을 당협위원장 출신의 강요식씨가 한국동서발전 상임감사위원으로 임명됐다. 이들 모두 해당 분야에 관한 전문성을 갖고 있지 않다. 전형적인 정치권 낙하산 인사들이라고 할 수 있다.

금융 공공기관 감사 자리도 낙하산 인사가 꿰찼다. 지난 1월 금융 공공기관 3곳의 감사가 임명됐다. 친박연대 출신인 박대해 전 새누리당 의원이 기술신용보증기금의 상임감사 자리를 차지했다. 18대 대선 새누리당 충남도당 선거대책위원장 출신의 문제풍씨는 예금보험공사 상임감사, 광진희망포럼 대표 및 새누리당 광진 갑 당협위원장 출신의 정송학씨는 자산관리공사 상임감사로 각각 임명됐다. 세 상임감사 모두 금융권 이력이 없다는 점에서 ‘보은 인사’라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낙하산 인사는 계속됐다. 상임감사 모집 공고문에는 ‘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가적 능력과 업무·회계의 적법성 검토 능력’을 주요한 자격 요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감사 임명은 이와는 한참 동떨어지게 이뤄진다. 당료 출신, 박 대통령 지지 모임 및 대선 캠프 참여 등 정치적 기여도를 우선한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정부는 공공기관 적폐 해소 및 관피아 척결을 국정 과제로 내놓을 정도로 낙하산 인사 문제를 심각하게 여겼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는 이를 대국민 약속으로 내걸었을 정도다. 그러나 실태를 보면 말뿐이라는 걸 금세 알 수 있다.

낙하산 감사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명확하다. 서로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감사는 기관장을 견제하고 기관 업무를 감시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누구도 쉽게 간섭할 수 없는 위치다. 감사가 ‘권력 2인자’로 불리는 이유다. 또한 감사는 기관장에 비해 업무 책임은 가벼우면서 비슷한 수준의 연봉과 혜택을 누린다. ‘친박 낙하산’으로 분류되는 감사들의 평균 연봉은 약 1억5000여 만원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공공기관이 자신들의 정책 추진에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낙하산 임원은 잘 보이기 위해 자신이 속한 기관의 이익과 상관없이 윗사람 비위 맞추기에 급급한 경우가 많다. 끼리끼리 해먹으며 서로 편하니까 정부의 낙하산 임명 관행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예금보험공사의 문제풍 감사는 낙하산 비판에 대해 “대통령의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뜻을 같이하는 분들이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강변하기도 했다.

방만 경영 감시 기능 마비 우려

낙하산 인사는 공기업 방만 경영의 주요한 원인으로 지목돼 왔다. 낙하산 기관장은 기관 운영의 전문성이 부족할뿐더러 경영 실적을 내기보다 ‘자리 지키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부가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의 일환으로 선정한 38개의 중점 관리 기관 중 9곳에 ‘친박 낙하산’ 감사가 임명된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기관 중 세 번째로 부채가 많다고 평가받는 예금보험공사도 여기에 포함돼 있다. 예금보험공사는 현재 정상화 계획을 이행하는 단계지만 부채 규모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동서발전의 상황도 심각하다. 동서발전은 부품 시험 성적서 위·변조 비리, 경영평가 D등급, 4조원 넘는 부채 등 문제투성이다. 경영 개선과 비리 척결이 최우선 과제인 이런 공공기관에까지 ‘친박 낙하산’ 감사가 내려왔다.

낙하산 감사 임명은 공공기관 방만 경영을 바로잡을 뜻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공을 세웠으니, 나와 친하니 ‘한자리 차지하고 편하게 살아라’라는 의도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그렇지 않고서야 전문성도 없고 능력이 검증되지도 않은 사람을 중요한 공공기관 감사로 내려보낼 이유가 없는 것이다. 낙하산 인사의 궁극적 피해자는 국민이다. 대통령도, 정권 참여자도 아니다. 대한민국 공공기관이 천문학적인 부채에 허덕이고, 결국 혈세를 투입하는 일이 반복되는 데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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