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 홈쇼핑’ 출범, 누군가 손을 썼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4.08.20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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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불가’ 입장 급선회한 미래부…벤처기업협회·중기청 역할설

정부가 새로운 TV홈쇼핑 채널(중소기업 제품·농수산물 전용)을 만든다. 시장에는 이미 중소기업 제품을 판매하는 ‘홈앤쇼핑’과 농수산물을 전담하는 ‘NS홈쇼핑’ 등 6개 홈쇼핑이 있다. 이런 이유로 홈쇼핑 채널 승인권을 쥐고 있는 미래창조과학부는 추가적인 홈쇼핑 출범에 그동안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랬던 미래부가 최근 승인 쪽으로 입장을 급선회하면서 그 배경을 두고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이른바 제7 홈쇼핑 출범은 박근혜 대통령이 8월12일 주재한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확정됐다. 2015년 상반기에 중소기업 제품과 농수산물 판매를 전문으로 하는 홈쇼핑을 만들어 중소기업 판로 확대를 지원한다는 명분이다. 사실 신규 홈쇼핑 얘기는 박 대통령 취임 때부터 나왔다. 지난해 5월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실과 공정거래위원회가 대·중소기업 발전 방안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홈쇼핑을 통한 상생 방안이 대두됐다. 홈쇼핑과 중소기업의 불공정한 갑을 관계를 개선하는 방안이 나왔지만 시장에서는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 무렵 업계에 제7 홈쇼핑 출범 얘기가 돌기 시작했다. 업계 관계자는 “기존에 물류 시스템을 갖춘 우체국이 홈쇼핑 사업을 할 것이라는 얘기가 업계에 파다했다”며 “올해 들어서는 경영난을 겪고 있는 종편 방송사(조선·중앙·동아일보)와 SBS도 수익 구조 개선을 위해 홈쇼핑 사업을 내부적으로 검토한 것으로 안다”고 시장 분위기를 전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운데)는 8월12일 서울 정부청사에서 “중소기업 제품과 농수산물의 판로 확대를 위해 공영 홈쇼핑 채널을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미래부 “반대 아닌 유보 입장이었다” 해명

이미 시장이 포화 상태라는 점과 특정 업체에 사업권을 승인해주면 특혜 시비가 생길 수 있는 점 등을 고려해 미래부는 제7 홈쇼핑 출범에 부정적인 태도를 유지해오다 최근 입장을 뒤집었다. 오용수 미래부 방송산업정책과장은 “홈쇼핑 신설에 반대가 아니라 유보하는 태도였고, 소상공인의 입장을 정부가 모른 척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제7 홈쇼핑이 설립되면 특정 단체가 이익을 볼 것이라는 시각도 대두되고 있다. 중소기업을 위한 홈쇼핑이지만 벤처기업의 판로도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는 남민우 벤처기업협회 회장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2012년 벤처기업협회를 맡은 그는 지난해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 위원장을 겸했다. 위원장은 장관급 자리다. 업계 관계자는 “당시 남 회장 등 벤처기업협회 임원진이 여러 차례 미래부를 방문해 신규 홈쇼핑의 필요성을 설명했고, 이에 대해 미래부는 시기상조라고 했다”고 전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남 위원장이 제7 홈쇼핑 탄생에 모종의 역할을 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이에 대해 벤처기업협회 측은 “우리는 이번 홈쇼핑 출범에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벤처기업이 중소기업 홈쇼핑에 편승한다는 지적이 계속 제기되는 것에 대해 벤처기업협회 관계자는 “벤처기업은 다른 말로 혁신형 중소기업이라고 한다. 따라서 벤처기업은 중소기업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그 후부터 벤처기업협회는 전면에 나서지 않았지만 대신 새누리당, 기획재정부, 언론, 중소기업청 등을 중심으로 홈쇼핑 신설에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됐다. 올해 초 홍문종 의원(당시 새누리당 사무총장)실과 벤처기업협회 등이 주관한 정책토론회가 국회에서 열렸다. 신규 홈쇼핑의 필요성을 공론화하는 자리에 황철주 벤처기업협회 명예회장도 참석했다. 그는 박 대통령이 지난해 초 중소기업청장으로 내정했으나 개인적인 이유로 사의를 표명한 인물이다. 또 2011년 남 회장이 임원으로 있던 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의 이사장이었다. 한정화 중소기업청장도 당시 그 재단의 임원을 지냈다. 결국 세 명은 모두 잘 아는 사이다. 정책토론회에서 중기청과 벤처기업협회는 찬성 의견을 냈지만 미래부 관계자는 신규 홈쇼핑 채널은 검토 대상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벤처기업협회 “홈쇼핑 출범에 역할 없었다”

올해 2월 기재부는 미래부·농림축산식품부·중기청 등 관계 부처 회의에서 지역 특산품 전용 홈쇼핑 채널을 건의했다. 중기청과 농식품부는 찬성했지만 미래부는 반대한다는 뜻을 고수했다. 제7 홈쇼핑 건이 사사건건 미래부의 반대에 부닥치자 전자신문은 3월17일자 1면에 중소기업 제품을 홀대한다는 내용의 기사와 사설을 게재했다. 남 회장이 대표로 있는 회사(다산네트웍스)는 전자신문 지분 19% 이상을 보유한 2대 주주다. 일주일 후 중소기업청장은 기자들을 만나 “중기·창업 제품 신규 홈쇼핑 개설 추진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걸림돌은 여전히 미래부였다. 한정화 중기청장은 4~5월 최문기 당시 미래부장관을 만나 제7 홈쇼핑 신설 필요성을 강조하는 제안서를 건넸다. 시사저널이 단독으로 입수한 이 문건에는 ‘지난해 중소기업이 기존 홈쇼핑에 2780개 제품 판매를 요청했으나 실제 방송된 제품은 4.1%에 불과하다’며 중소기업 제품 판매를 전문으로 하는 홈쇼핑 개설의 필요성이 강조돼 있다. 또 올해 말까지 법을 바꿔서라도 기존 중소기업유통센터를 중소기업유통공사로 개편해 홈쇼핑을 운영한다는 구체적인 방법도 제시했다. 공적자금을 투여해 지분 51% 이상을 확보한 공영 홈쇼핑 설립을 주장한 것이다. 설립 4년 차(2019년)부터 흑자로 돌아선다는 손익 계획표도 붙어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 내용은 이번 정부의 제7 홈쇼핑 출범 발표와 정확히 일치한다”며 “이 제안서대로라면 남민우 벤처기업협회장이 제7 홈쇼핑 설립 이후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라고 말했다.

세계 어느 나라도 정부가 직접 홈쇼핑을 운영하는 사례는 없다. 이미 중소기업 제품과 농수산물 전용 홈쇼핑을 개설했다가 실패한 사례는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 중소기업 살리기 차원에서 홈앤쇼핑이 신설됐다. 중소기업중앙회·중기청·농협중앙회 등이 대주주로 있는 이 홈쇼핑의 출범 조건은 중소기업 제품의 편성 비중을 80% 이상 유지하는 것이었다. 2001년 설립한 우리홈쇼핑(현 롯데홈쇼핑)과 NS홈쇼핑도 각각 중소기업 제품 편성 비중 65% 이상, 농산물 편성 비중 60% 이상을 조건으로 채널 승인을 받았다. 현재 모두 판매 부진 등으로 사실상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황기섭 한국TV홈쇼핑협회 팀장은 “홈앤쇼핑이나 NS홈쇼핑이 제 역할을 하도록 개선할 생각은 하지 않고 새로운 홈쇼핑만 만들려는 것은 과거의 실패를 거듭하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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