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학 ‘랭킹의 노예’가 되다
  • 이규대 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4.08.20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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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학은 특유의 서열 구조로 유명하다. 암묵적으로 통용되는 상·중·하의 분류가 대학 평판을 좌우해왔다. 1990년대 이후부터 대학은 ‘순위 매기기’에 내몰렸다. 1등부터 수십 수백 등까지 일렬종대로 줄이 세워졌다. 각종 정부기관 및 언론사 등에서 실시하는 대학 평가가 사회적 영향력을 급속도로 확대해온 탓이다. 이제 대학 순위는 단순한 ‘평가’ 차원에 국한되지 않는다. 일반 행정은 물론 연구·교육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대학 업무의 모든 분야가 ‘랭킹 관리’에 잠식된 채 랭킹의 노예가 되어가는 우리 대학의 현주소를 들여다봤다.

 

상아탑은 이제 없다. 대학은 더 이상 속세와 차별화되는 순수 ‘지성의 요람’이 아니다. 현실에 거리를 두고 진리 탐구에만 전념하는, 전통적인 대학의 모습은 과거의 것이 된 지 오래다. 최근 10여 년간 대학은 그 어떤 사회집단보다도 급격한 변화의 흐름에 휩싸여왔다. 대학은 생산한 지식의 양과 질, 국가 및 사회에 기여한 정도 등을 냉정하게 평가받는 ‘지식 산업체’가 됐다. 시장 논리에서 자유로웠던 고등교육 영역에서도 경쟁력의 가치가 급속도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 일러스트 배중열
이와 관련된 중요한 진실이 있다. 대학 안에선 누구나 알지만 바깥에선 모르는, 교직원 및 교원들에겐 매우 민감한 문제지만 학생 및 학부모에겐 상대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았던 공공연한 비밀이다. 바로 대학 안팎의 순위 매기기, 즉 ‘대학 평가’가 지금 대학의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교육 전문가 및 대학 관계자들은 점차 정교해지며 영향력을 키워온 대학 평가가 최근 10여 년간 대학의 변화를 추동해온 엔진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대학의 진면목을 면밀히 관찰·분석한 이가 있다. 현재 경희대 사회학과 대학원에 재학 중인 전현식씨다. 전씨는 이른바 ‘서울 10위권’으로 거론되는 사립 A대학 기획처에 근무하며 참여·관찰을 진행했다. 2012년 11월부터 2013년 12월까지 14개월간이다. 교직원·교수·학생·평가기관 관계자 등 총 47명을 상대로 심층 인터뷰도 진행했다. 이를 통해 전씨는 대학에서 추진하는 주요 사업 대부분이 대학 랭킹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으며, 모든 교직원이 관심을 갖고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는 공적 사안임을 확인했다. 그 내용을 석사 학위 논문 ‘대학 랭킹 문화: 문화기술지적 탐구’로 엮어냈다.

“현장에서 본 대학 랭킹의 영향력은 내가 이전까지 과연 한국의 대학 교육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었는지 의심이 들 만큼 막대했다.” 1년여의 현장 연구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이다. 전씨와의 인터뷰 및 그의 논문, 이를 근거로 추가 접촉한 대학 관계자 취재 등을 바탕으로 대학의 랭킹 관리 실태, 이로 인한 최근 대학 사회의 변화상을 집중 조명했다.

A대 평가팀 “우리는 대학의 ‘삼성전자’다”

전현식씨가 일한 곳은 A대학 기획처 소속 ‘평가팀’이었다. 말 그대로 대학의 평가 대비 관련 업무를 주도적으로 수행하는 곳이다. 2005년 처음으로 평가 담당자를 둔 팀이 생긴 이후, 2013년에는 총 6명의 직원이 일하는 기획처 내 최대 부서로 자리 잡았다. 전씨가 만난 몇몇 학교 관계자는 평가팀을 ‘대학교의 삼성전자’로 불렀다고 한다. 그만큼 대학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곳인 동시에, 그 어느 부서보다도 업무 강도가 세다는 점을 반영한 표현이다. 일각에선 ‘교직원의 무덤’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평가팀이 대응하는 각종 대학 평가의 가짓수는 총 18개에 달했다. 중요한 것은 평가팀만이 평가 업무를 전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실상 학교 안의 모든 행정 부서, 단과대 및 각 학과들이 평가 대비 업무를 지원하고 있었다. 평가팀은 대학 랭킹과 관련된 여러 일들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각 실무 조직과 대학의 지도자들을 이어주는 ‘허브’ 역할을 하는 한편, 이들의 제반 업무를 지원하는 역할을 했다. ‘대학 랭킹’이 논의되는 학내 회의체는 총 12개, 관련 부서는 8개에 달했다. 총장, 부총장, 단과대학장, 학과장, 행정 부서장, 부서 산하 각종 위원회 등이 모두 대학 평가를 의식하고 대응한다는 것이다.

A대학 평가팀은 각종 대학 평가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관리 지표를 갖고 있었다. 교육·연구·재정·국제화 4개 영역에 총 21개 지표를 마련한 후, 이를 각 관계 부서에 ‘관리 대상’으로 할당했다. 예컨대 교무처는 ‘교수당 학생 수’ ‘외국인 전임교원 비율’, 국제교류처는 ‘학위 과정 등록 외국인 학생 비율’ ‘국내 방문 외국인 교환학생 비율’ 등을 담당하는 식이다. 각 부서 실무자들은 격주 단위로 열리는 ‘대학 랭킹 실무위원 TF(태스크포스) 회의’에 참석해 추진 상황을 보고했다. 2주 단위로 주요 평가 지표에 대한 일상적인 관리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회의에서 각 담당자들은 담당하는 지표의 목표 및 현황, 2주 전 현황, 현재 현황, 목표 달성률, 개선율 등을 기록해 제출했다.

평가팀은 TF 회의 외에도 수시로 행정 및 교원 조직과 접촉하며 대학 평가를 준비하는 역할을 했다. 시기별·부서별로 미리 ‘대학 랭킹 대응 사업’을 기획해 ‘주요 사업 일정표’로 정리해 둘 정도로 철저한 평가 대응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대외연구비 유치, 영어 강좌 개설, 외국인 학생 유치 등 추진 사업별로 ‘실행’에는 각 단과대학, ‘지원’에는 각 행정 부서가 책임을 맡도록 돼 있었다.

A대학이 이렇듯 체계적인 평가 대응 시스템을 갖춘 것은 2007년부터였다. 자체적인 ‘대학 랭킹 지표 관리체계’를 구축하면서다. 이때를 전후로 A대학의 랭킹 관리 패러다임은 결정적인 변화를 겪었다고 한다. 그 전만 해도 단기적인 성과 향상에만 집중하며 여러 시행착오를 거쳤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평가팀을 중심으로 항상 주요 지표를 추적 관리하는 한편 학내 주요 기구가 정기적인 회의를 통해 성과를 공유하고 목표 달성을 독려하는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이런 대응은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2000년대 초반 중앙일보 대학 평가 순위에서 10위권 밖에 머물렀던 A대학은 2007년 이후 10위권 안에 진입했다. 2007년 500위권에 머물렀던 QS 세계 대학 랭킹에서도 2013년 200위권에 들었다. 전씨는 이에 대해 “평가팀이 제시하는 지표별 목표치는 대학본부 행정 부서에서 구체적인 계획으로 입안된다. 이후 이는 하위 조직인 대학원·단과대학·학과 등에 전달되고 시행을 하게 된다. 대학본부에서 내려오는 수직적인 행정 계통은 이 대학교가 일사불란하게 대학 랭킹에 대응하고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기초가 됐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2011년부터 상승세가 꺾였다. 순위가 소폭 하락하기 시작하자 학교에 비상이 걸렸다. A대학 총장은 “학과별로 현황을 파악해 순위 하락의 원인을 분석하자”고 제안했다. 그 결과 2012년부터 전 학과를 대상으로 하는 학과 간담회가 매년 한 차례씩 열렸다. 랭킹 관리를 위한 회의체도 추가 신설됐다. 2013년 3월부터는 몇 가지 중점 지표에 대해 학교 전체 실적뿐만 아니라 단과대별 실적을 TF 회의에서 제출받았다.

평가팀 설치 이후 괄목할 만한 순위 상승

마치 기업이 하는 것처럼 상시적으로 성과를 측정하고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전씨는 자신이 만났던 한 교직원의 말을 빌려 이렇게 설명했다. “지금까지 한국 대학들은 학교를 정해진 지침에 따라 일상적으로 운영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제는 이른바 ‘선택과 집중’ 전략을 통해 적극적으로 성과를 내는 것이 중요하게 됐다.” 대학 랭킹은 곧 각 대학의 ‘선택과 집중’ 전략을 위한 도구이자 성적표였다.

A대학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전국 대다수 대학에 ‘평가 대응’은 대학의 미래가 걸린 핵심 사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국립대 및 상위권 사립대는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대학’을 목표로 각종 노력을 기울인다. 하위권 사립대는 취업 등 좀 더 특성화된 역량을 내세워 정부가 주도하는 대학 구조조정에서의 ‘생존’을 목표로 하는 경향이 강하다.

처음부터 대학 평가가 이렇게 큰 영향력을 발휘했던 것은 아니다. 대학 평가가 시작된 1990년대에는 대학 구성원들 사이에서 반발이 심했다. 대학을 상대로 순위를 매긴다는 발상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반응이 많았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일부 대학에서 ‘대학 평가를 거부한다’는 공식 선언을 하는 등 대학 평가의 상업성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돼왔다. 하지만 각 평가기관들이 아랑곳하지 않고 순위를 발표하며 이에 대한 여론의 관심이 확대되면서, 대학들은 오히려 대학 랭킹이 제공할 수 있는 가능성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견고한 서열 구조를 흔들며 자기 대학의 경쟁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전현식씨는 A대학의 교수 및 교직원들로부터 “‘서성한중경외시’(서울 상위권 사립대를 서열 순으로 앞 글자만 딴 것)라는 것이 이것(대학 랭킹) 말고는 달라질 방법이 없다. 있다면 하나라도 제시해보라.” “학교에서 대학 랭킹이 중요한 이슈로 자리 잡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대학 랭킹에 반대하더라도 대학 지도자라면 누구나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등의 말을 접할 수 있었다.

1994년 국내 최초로 대학 평가를 시작한 중앙일보 대학 평가 최근 홈페이지.
“대학은 평가 지표 관리를 최우선해야”

2000년대 중반부터 전국 대학에서 ‘평가 업무’를 조직적으로 관리하는 흐름이 두드러졌다. 전담 부서를 신설하며 평가에 대응한 사업들을 기획하기 시작했다. 2006년에는 전국 4년제 대학 평가 업무 담당 실무자들의 협의체인 ‘전국대학평가협의회’가 설립됐다. 이후 대학 평가의 지표가 더욱 정교해지고 다변화하면서 평가 업무는 더욱 중요해졌다. A대학이 체계적으로 대학 평가에 대응하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한다. 신재영 전국대학평가협의회장은 “2008년 12월부터 대학 정보공시가 의무화되면서, 평가 업무 담당자의 손놀림은 더욱 바빠지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대학과 관련된 수치 자료들이 늘어나면서 이를 관리하는 업무의 양이나 중요성도 늘어났다는 뜻이다.

이로써 숫자 자료로 자기 대학의 뛰어남을 입증해야 하는 ‘순위 경쟁’이 본격화됐다. 성과주의, 기업식 경영 문화가 대학에 깊게 뿌리내린 것이다. “측정할 수 없으면 경영할 수 없다. 대학은 평가 지표 관리를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2011년 12월, 홍승용 대학구조개혁위원장)는 말은 대학 평가를 계기로 변화한 오늘날 대학 사회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발언이었다.

전현식씨는 논문의 결론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나는 많은 회의에서 A대학교 지도자들이 대학 랭킹을 두고 격론을 벌이는 모습을 곧잘 볼 수 있었다. 내가 인터뷰했던 교수와 교직원 사이에서도 의견은 엇갈렸다. 하지만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대학 랭킹의 영향력을 부정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보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람들은 모두 대학 랭킹의 영향력 자체는 부정할 수 없는 사회적 사실로 간주하고 있었다.” 대학 평가는 이미 대학의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된 것이다.

 

대학 평가 ‘획일 기준’ 등 객관성 논란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인정받는 대학 랭킹들은 미국식 연구 중심 대학을 이상적인 모델로 삼아 평가 기준을 마련했다. 한국의 대학 평가도 마찬가지다. 2000년대를 전후로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은 ‘글로벌 대학’ 모델이 대학 평가의 근간을 이룬다. 이 때문에 대학 평가팀 관계자들이 중요하게 꼽는 핵심 관리 지표는 ‘연구’ 그리고 ‘국제화’다. 대학 랭킹에 특히 관심을 기울이는 대학들은 ‘글로벌 무한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세계적인 수준의 대학’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기조를 바탕으로 최근 10여 년간 추진된 각종 기획 사업은 교수 및 학생 사회에 큰 변화를 몰고 왔다. 교수가 해외 논문 실적을 압박받게 된 것, 한국 학생들이 외국인 유학생과 한 강의실에서 영어 강의를 수강하도록 요구받게 된 것 등이 모두 대학 평가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발생한 ‘나비 효과’다.

대학 평가의 객관성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근대 대학의 발상지라 할 수 있는 유럽, 후발 주자인 아시아 각국 등에서도 미국식 연구 중심 대학에 맞춰진 평가 기준에 대해 지속적인 비판이 나왔다. 연구기관이자 교육기관, 나아가 사회의 공적 기관으로서의 대학을 총체적으로 평가하는 지표라기보다는 양적 자료 수집이 쉬운 지표에 의존한다는 점 때문이다.

대학의 획일화를 조장하고 과도한 경쟁을 불러일으킨다는 점, 명문대나 대형 종합대학에 유리하다는 점, 교육의 질은 파악이 불가능하다는 점, 취업률 등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힘든 기초 학문이 도태한다는 점 등이 현행 대학 평가의 부작용으로 자주 거론된다. 반면 일부 대학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대학 랭킹의 긍정적인 부분에 주목하는 반응도 상당수 나온다. 객관적인 수치를 근거로 삼는 만큼, 기존의 서열 구조를 뒤집고 대학의 발전을 이끌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점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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